본문 바로가기
나의 공부/10 사무엘 하 주석및해설

사무엘 하 3장, 다윗의 집이 강하여 가더라 - 구조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해설

by OTFreak 2022. 9. 16.
반응형

사무엘 하 3장은 다윗의 대적인 이스보셋이 기울어져 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 중에 이스보셋의 편에 있던 아브넬이 다윗의 편으로 투항하였다가 요압에게 살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왕위가 점차 성취되고 있습니다. 사무엘 하 3장의 구조와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그리고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3장의 구조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해설
다윗의 집이 강하여 가더라

 

 

사무엘 하 3장의 구조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해설

 

 

사무엘 하 3장의 구조와 개요

 

1절-5절, 점점 강성해지는 다윗의 집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될수록 사울의 집은 약해지는 반면,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6절-21절, 이스보셋을 배반한 아브넬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배반합니다. 아브넬이 이스라엘의 실세였는데, 이스보셋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자 아브넬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하며 이스보셋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다윗에게 투항하고 아브넬은 다윗을 찾아가야 언약을 맺었습니다.

 

22절-39절, 요압의 분노

아브넬이 다윗과 언약을 맺고 돌아가는데, 요압은 다윗에게 아브넬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압은 동생 아사헬의 일 때문에 아브넬을 은밀하게 살해합니다. 이 사실을 들은 다윗은 진심으로 애도하게 됩니다. 다윗의 진심 어린 애도를 목격한 백성들은 요압이 아브넬을 죽였음을 알게 됩니다.

 

 

사무엘 하 3장의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1절-5절, 주님의 나라가 승리합니다

아브넬이 이끄는 이스보셋의 부하들과 요압이 이끄는 다윗의 부하들이 전투를 벌였다가 요압의 부하들이 승리를 거둡니다. 그리고 두 집안 사이에는 계속해서 전쟁이 벌어지는데, 그 결과는 "다윗의 집이 점점 강해져 가고 사울의 집이 점점 약해져 간다"였습니다. 다윗의 집은 하나님께서 세워 가시는 왕국이며 이스보셋의 집은 하나님께 저항하는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 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보다 내가 누구 편에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우리는 최후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6절-21절, 그리스도인이 믿을 자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 위에 앉혔던 아브넬은, 이스보셋이 자신의 잘못을 꾸짖자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로 망명해 버립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면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을 우리를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도 내 편 되신 하나님만을 붙들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2절-39절, 분노를 다스리십시오

다윗이 아브넬을 돌려보냈다는 소식에 요압은 분노합니다. 그리고 아브넬을 비난하며 그가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요압은 몰래 아브넬을 살해하고 맙니다. 요압이 이처럼 아브넬을 끝까지 추격하여 죽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동생인 아사헬 때문입니다. 아사헬이 아브넬의 뒤를 쫓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형제를 잃은 요압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아브넬을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노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 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게 됩니다. 가인 역시 분노 때문에 동생을 죽였던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사무엘 하 3장의 해설과 주석

 

1절,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저자는 이스보셋의 권세가 쇠하고 다윗의 권세가 흥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다윗과 이스보셋의 대립을 다윗 가와 사울 가의 대립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조적 묘사는 이스보셋의 쇠퇴와 다윗의 흥왕이 보다 근원적인 데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의도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저자는 점점 더해가는 이스보셋의 쇠퇴는 바로 사울 왕의 교만한 죄의 결과이며(삼상 13:8-14, 15:10-31), 다윗 왕의 점진적인 흥왕은 사울 왕의 핍박 속에서 인내한 다윗의 신앙의 결과(삼상 20:1-16) 임을 보여 주기 위해 이 두 이름을 대조시킨 것입니다.

 

12절,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때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창 9, 17장), 또는 개인들 사이에(창 25:28; 31:44) 언약을 맺는 것은 공동체에서 기본적인 신앙 행위입니다. 언약(covenant)은 오늘날 계약(contract)이 의미하는 것과는 다른데, 상대방이 각각 그 조항들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을 완화시켜 주는 성스러운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세상을 떠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더불어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언약을 맺었었습니다(삼상 18:3; 20:8; 23:18). 요나단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뒤에 남는 자식은 누구든 돌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여기서 언약은 이스보셋이 다스리는 북왕국의 실세 아브넬과 남왕국 왕 다윗 사이에 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브넬이 사울 왕을 잘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윗이 그를 모질게 꾸짖은 적이 있는 데다(삼상 26:15-16), 아브넬이 다윗의 조카 아사혤을 죽이기까지 했으므로(2:23),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14절-16절, 그의 남편이 그와 함께 오되 울며

다시 한번 다윗이 여자에 약하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대합니다(삼상 25장). 다윗이 미갈을 여자로 대하면서 승리한 자신의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돌보았는지, 아니면 그녀를 전리품으로 소유하면서 자신의 힘과 생식 능력을 보여 주려는 정치적인 책략일 뿐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 경우에는 아브넬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동맹을 맺도록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관심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그가 미갈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발디엘이 가슴 아프게 울부짖는 것과 비교할 때 새로운 왕을 그다지 호의적으로 묘사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20절,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한 나라의 실권자를 위해 잔치를 베푼 것은 단순히 즐긴다는 의미보다는 쌍방 간의 언약을 확증한다는 의미(창 26:28-31, 31:53-55)를 가집니다. 따라서 다윗이 아브넬을 위해 잔치를 배설한 것은 (1) 아브넬이 제시한 언약이 기만(欺瞞)이 아니었음을 그가 믿었고, (2) 이와 같은 움직임을 그가 자기와의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27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누가 옳은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아브넬과 성스러운 의무인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요압이 왕의 약속을 존중해 아브넬을 보호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혈연적인 면에서 볼 때 다윗은 조카의 죽음을 복수해야 할 우선되는 의무를 저버린 것이었습니다. 요압은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살인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동해보복법(Lex Talionis, 눈에는 눈, 레 24:20)을 굳게 지킨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29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다윗이 자신의 신복인 요압을 이토록 저주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명 요압이 저지른 죄 때문이었는데, 그 죄의 내역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요압의 행위는 정당한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사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아브넬보다 아사헬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2:21, 22). (2) 아무리 정당한 복수라 할지라도 복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레 19:18, 눅 6:27, 롬 12: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복수했습니다. (3) 요압은 이 일과 관련하여 왕인 다윗과 전혀 의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곧 국정(國政)의 최고 책임자인 다윗을 무시한 처사로서, 일종의 반역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무엇보다도 요압은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5:1-5, 삼상 16:28, 29)을 얼마 동안 지연시켰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죄의 내역으로 보아 다윗이 자신의 신하 요압을 저주한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니라 아주 공의로운 처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할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