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강절 설교 제목 : 유대인의 기대와 성도의 기대
■ 대강절 설교 본문 : 사도행전 1: 6-11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사도행전 1:6-11을 대강절 설교 본문으로 할 때의 배경과 진행지침
예수님이 공생애 전체를 통틀어 가르치고 알려 주신 내용은 ‘하나님 나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열망하고 기다리던 희망의 핵심 역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문제는 이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선민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들어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삼으실 것이라는 이 선민 의식은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 어디에도 이런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민족에 의해 침략 당했고, 나라를 잃었으며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그리고 로마에 의해 식민지의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런 비극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소위 ‘메시아 대망’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즉, 언젠가 하나님이 직접 인간 세계 속으로 들어오셔서 자신들을 모든 압제에서 구원하고 그들이 꿈꾸어 온 열방의 빛을 실현시킬 것이라는 기대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철저히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전혀 다른 성격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전파하셨습니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영토나 왕국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통치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철저히 비정치적이며 사랑에 기초한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사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그가 민중의 정치적인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제자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어긋난 기대가 본문의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우리 믿는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령을 받아 그 힘으로 사랑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것과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땅 끝까지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과 기대 위에 그 존재의 이유를 가집니다.
대강절의 최대 화두는 기다림과 도래입니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기다림으로 시작하여 기다림의 자세로서의 참회와 자기 보기, 공의를 위한 헌신, 영적 준비 등의 주제를 연속으로 설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느 설교든 마찬가지이지만 대강절 설교 역시 회중을 대화의 파트너로 상정해야 합니다. 지나친 교리적 접근은 자칫 설교를 독백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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