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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52 데살로니가전서 주석및해설

데살로니가전서 2장, 바울의 면류관 - 구조 매일성경 새벽설교주제 해설

by OTFreak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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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유모의 자세와 아버지의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돌봤다고 말합니다. 핍박 중에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으며, 이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신의 면류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구조와 매일성경 새벽설교주제 그리고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구조 매일성경 새벽설교주제 해설
데살로니가전서 2장, 바울의 면류관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구조 매일성경 새벽설교주제 해설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구조

 

1절-12절, 아버지의 마음으로

비록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지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선교 사역을 감당했으며, 사람의 영광은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심을 기억하며 성실히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앞에서는 자신이 마치 유모와 같이 사랑으로 대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아끼며 권면하였습니다.

 

13절-20절, 바울의 기쁨이 되는 성도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말씀을 붙들고 유대인들의 박해가 있어도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믿음의 성도들이 자신에게 영광과 기쁨이 되었고 주님 앞의 면류관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매일성경 새벽설교주제

 

1절-12절, 성도가 살아가는 자세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고난이 찾아와도 자신은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같이 사도 바울이 고난을 참고 견디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주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권위자의 모습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했습니다.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일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이 됩시다.

 

13절-20절, 바울의 면류관이 된 성도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자신에게 영광과 기쁨이 되고 주님 앞에서 면류관이 된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영광과 기쁨이 되고, 바울은 성도들에게 면류관이 되고 자랑이 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관계가 어디 있을까요?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이 신실함으로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습니다. 또, 성도들은 바울과 함께 고난 받으며 동역하였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면류관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해설

 

1절-20절,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2장에서 바울은 교사이자 친구로서 데살로니가의 새로 믿은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 단락은 성도들을 세심하게 돌보면서 그들의 영성을 개발하는 것이 목회의 직무임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바울은 자신의 목회 사역을 묘사하기 위해 연약한 갓난아기들을 돌보는 유모의 표상을 사용하기까지 합니다(7절).

 

4절,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고 위임받은 복음 전도자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바른 태도를 가리킵니다(갈 1:10). ‘기쁘게 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ἀρέσκω’(아레스코)에는 ‘남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사용함으로 자신이 인기와 명예에 영합(迎合)하여 사람을 의식하며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기를 기뻐하였습니다(롬 1:1, 빌 1:1). 한편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복음 전도가 진실된 것임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감찰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δοκιμάζω'(도키마조)는 앞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와 같은 어군의 동사로서 ‘시험하다’, ‘시험을 통해 인정하다’란 뜻이며, 우리의 지성과 의지를 포함하는 전인적(全人的)인 감찰의 의미를 가집니다.

 

14절,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본받는 대상의 범위를 동료 성도들에게까지 확장했습니다. 본받는 것은 겸손한 행위로, 어린아이들은 항상 누군가로부터 배우려고 애를 씁니다.

 

18절,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데살로니가에 가고자 하는 바울의 열망을 가로막은 것은 사탄의 방해였습니다. 사탄의 활동 목적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들로부터의 방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울의 몸에 있는 질병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고후 12:7).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세운 계획들에 대한 차질이 단순히 사탄의 방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성령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바울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행 16:6-10).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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