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을 설명하신 예수님은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시며 죽었던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십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 능력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우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돌보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묵상하며 새벽기도설교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 나인성, 엘리사를 넘어 예수께서 과부의 아들을 살린 곳 성지순례
- 주께 네 삶을 맡기겠나, 누가복음 6장 39절-49절 매일성경묵상 새벽기도설교
- 신자로부터 제자가 되기까지,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 전직 세리 출신 사도 마태, 정직하지 못한 세리에서 주의 제자가 되다
새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1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 합니다
[후렴]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2 성령께서 내 마음 밝히 비춰 주시니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 합니다
3 밝을 때에 노래와 어둘 때에 기도로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 합니다
4 생명 있을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 뿐일세
성경 : 누가복음 7:1-17, 개역개정성경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어떤 감정으로 반응하시며, 칭찬하십니까?(9)
- 예수님이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16)
오늘의 말씀묵상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자기 하인을 고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놀라게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으로 더욱 놀라운 권세를 보이십니다.
1. 백부장의 놀라운 믿음(1-10)
이방인 백부장이 하인이 병들어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유대인 장로들은 그가 예수님의 호의를 받을 만하다고 추천합니다. 이방인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이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친히 오시는 것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겸손히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하인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예수님의 권세를 확신하며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을 크게 감동시킵니다. 아직 유대인들도 보이지 않던 믿음을 그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칭찬하시는 '믿음의 모범'을 이방인이 처음 보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믿음이란 겸손히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맡기는 것임을 우리도 배워야할 대목입니다.
겸손히 나를 낮추는 믿음보다,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내 필요만 요구하는 믿음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전적인 신뢰를 요구하시는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습니까?
2. 예수님의 놀라운 권세(11-17)
예수님이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신 기적은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과부의 아들을 살려낸 기적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이 기적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큰 선지자'가 일어났다며 두려워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보다 훨씬 더 권위 있게 기적을 행하십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호소했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아들을 살리십니다. 엘리야는 죽은 아들의 몸 위에 세 번 엎드렸고, 엘리사는 지팡이를 몸에 얹고 두 번 엎드림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만으로 죽은 아들을 살려내십니 다. 구약의 어떤 위대한 선지자도 이런 권세를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권세는 도대체 어떤 권세일까요.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 더욱 분명히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권세에 대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엄청난 사건 자체만을 주목하는 믿음입니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 아닐까요?
오늘의 기도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주님의 '현존'안에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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