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이전 글
- 요한이 진술한 가닥들(lines)
- 깊은 묵상을 요하는 반어법과 모호한 표현들
- 7개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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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본문에서
앞선 글에서는, 말씀과 빛, 생명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사랑 등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해 설명한 요한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을 요한은 반어법과 모호한 표현으로 사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도록 요한복음을 구성하고 있다.
“나는 ... 이다 (I am) 진술문
요한복음은 “나는 ...이다” 라고 표현하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은유를 7개의 명칭과 함께 인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 '생명의 떡 (6:35, 48),
- '세상의 빛 (8:12; 9:5),
- '문 (10:7, 9),
- '선한 목자’ (10:11, 14),
- ‘부활과 생명 (11:25),
- ‘길진리, 생명 (14:6),
- ‘포도나무 (15:1, 5)
라고 말씀하신다. 이 모든 영상들(pictures)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 시키시며, 세우시고, 양육하시며, 내주하시고, 빛을 비추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일으켜 주시는 삼위일체적인 은혜를 더욱 확실히 알려 주기 위한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영상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그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대적들과의 갈등을 일으킨다.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몇 개의 구분을 지어 보여 주고 있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일하다. 어떤 이들은 단지 예수님을 착한 사람으로, 모범이 되는 분으로, 교사나 선지자 혹은 설교자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다” 라는 진술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예수님은 정말 그분이 주장하는 그런 분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나의' 생명의 떡인가? 나는 ‘그분의' 빛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구원의 문이신 그분을 통해 구원받았는가, 아니면 나는 스스로 구원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나는 그분이 나의 목자가 되시도록 그분을 신뢰하고 있는가? 나는 그분의 부활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부활 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나는 그분이 나의 길이 되도록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이 계속 길을 찾고 있는가? 그분은 유일한 진리가 되시는가? 그분은 나의 생명이신가?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나는 그분 안에 거하며 영적인 영양분을 그분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가?
헬라어 원어 성경을 보면,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할 때 자주 명사나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나는... 이다” (I am)라는 진술을 사용한다. 불붙은 가시덤불가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분의 이름을 “나는... 이다” 라고 답해 주셨다(출 3:14).
우리가 ‘주님 (Lord)이라고 부르는 히브리 원어의 뜻은 “나는... 이다”라는 의미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기에, “나는... 이다”라는 진술을 주실 때마다 예수님은 그분의 신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에게(4:26), 풍랑 속에서 무서워 떠는 제자들에게(6:20), “네가 누구냐?”라며 도전하는 바리새인들에게(8:24. 28), “네가...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냉소적으로 묻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유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고(8:58), 예수님을 배반할 제자들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을 때 제자들이 그분의 신성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13:19) 또한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이 말씀을 하셨다(18:5, 8).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마지막 두 경우는 “나는... 이다” 라는 예수님의 대답을 기록한 요한의 의도를 암시해 주고 있다. 누구든지 요한복음을 헬라어 원어로 읽는 사람이라면, 단지 '나사렛 예수'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는 반어법을 보며 놀라게 된다. 이 반어법은 같은 장에서 베드로가 “나는... 아니라”며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부인하는 사실에서 그 신랄함이 더해진다(18:17, 25).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신성이 충만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자유함을 누리도록 하고 있는가? 인생의 풍랑 가운데서, 신(神)으로서의 모든 능력을 지니신 우리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두려움은 온전히 잠재워지지 않겠는가? 때로 우리가 훨씬 적게 구했음에도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지 않는가?
삼위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기록
다른 복음서들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예수님의 진술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열거할 뿐만 아니라 반복적으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니라”는 진술과 “나는 아버지로부터 왔고, 또 “나는 아버지에게 가노라” 등의 구절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 볼 때 더욱 명백해진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의 이름을 104회 말하는데, 그중에 8회는 (17장에 있는 대제사장적 기도에서만 6 회)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직접 부르셨다.
이에 반해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34회 불렀는데, 4회는 기도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란 명칭이 3회만 나타나는데, 한 번은 기도에서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 6회 나오고, 오직 3회 '하나님 아버지'를 거명하는 다른 경우를 추가하고 있다.
분명히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보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게 보내시는 모습을 훨씬 더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요한은 예수님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부르시는 그분의 초청을 훨씬 더 확실하게 기록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누가복음이 대체로 성령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누가는 해설자로서 성령을 10회 언급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성령을 언급하신 것은 오직 3회만 기록한다. 요한은 예수님과의 남다른 우정을 가졌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귐에 보다 더 민감해서 예수님이 성령을 언급하신 것을 8회나 기록하고 있으며 성령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보혜사' (Advocate)라는 단어를 4회씩이나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영'이라고 표현된 다른 다섯 곳에서도 예수님은 인간의 영이 아니라 성령님을 지칭하시고 있는 듯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삼위를 고루 다루지 않는 오늘날의 교회를 생각할 때, 요한복음은 삼위 하나님이 얼마나 상호 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시며 창조와 구속과 성화 과정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가 되시는지 상기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더구나 요즈음 몇몇 사람들은 제1위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억압' 의 개념을 내포한 단어인 '아버지' (Father)라고 부르기를 거절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지니고 있는 사랑과 은혜의 개념을 다시 찾아내고, 예수님 자신이 성령의 능력으로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얼마나 심도 깊게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참으로 요한복음에 나오는 그리고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아버지' 라는 단어는 삼위 가운데 제1위가 되시는 분의 전능자로서의 능력과 풍성한 공급하심을 나타내 준다.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친밀감과 자비로운 돌보심을 보여 주는 가운데, 실제적으로 포괄적인 관계(inclusive relationships)를 나타내 준다.
삼위일체는 단순히 교회가 만들어 낸 추상적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이다. 삼위일체로 교제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 신비에 동참하라고 초청하신다. 우리 역시 하나 되어 존재하시는 삼위의 하나님 안에 감싸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하시고 구속하시는 역사와 보혜사의 증언에 의해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거미줄처럼 얽힌 그 가닥들(lines)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며, 또한 이런 모든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계속 질문하도록 요구한다. 이 거미줄들을 부지런히 연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더욱 찬양하고 그 신비 속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묵상과 탐구에 대한 가이드
서론에서 밝였듯이, 요한복음은 너무나 복잡해서 주해에서 완전히 다 검토할 수는 없다. 다만 요한복음의 가닥들(lines)중 하나, 곧 7개의 장면인 예수님의 '표적들' 가운데 하나인 몇몇 주제들을 우리가 어떻 게 묵상하고 탐구할 것인가에 대해 안내해 줄 것이다.
나가면서
이 소용돌이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좀 더 깊숙이 끌고 가게 하라! 경배의 황홀경으로 휩쓸려 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어떻게 우리를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끄시며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실 것인가를 항상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고후 3:18).
- 마르바 J. 던(Marva J. Dawn)
요한복음 연대기
- BC 37년 : 헤롯의 유대 왕 즉위
- BC 5년 : 세례 요한의 출생
- BC 4년 : 예수의 탄생, 헤롯의 유아 학살, 헤롯 왕의 사망
- AD 8년 : 어린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
- AD 12년 : 디베료 가이사의 로마 황제 즉위
- AD 26년 : 세례 요한의 사역 시작, 본디오 빌라도의 유대 총독 부임
- AD 27년 : 예수의 공생애 시작
- AD 30년 : 승리의 입성, 예수의 수난과 부활, 오순절 성령강림
- AD 70년 : 예루살렘 함락
- AD 95년 : 요한의 밧모 섬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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