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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신학적논쟁의주제들

과연 동성애자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요? 신학논쟁의 주제

by OTFreak 202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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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에 관한 논쟁은 최근에 한 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가 동성애자일 때와 같은 공간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 중에 동성애자가 있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아마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연 동성애자 그리스도인을 받아 들이고 함께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까요?

 

동성애자 그리스도인

   누군가가 동성애자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 앞서서, 먼저 동성애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이성 간의 결혼을 제외한 모든 성적 행위들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고 범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지 조항은 동성간의 모든 성행위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혼 이외의 어떤 성적 행위에 대해서서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적부도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포르네이아()인데, 이 말의 원 뜻은, 결혼 이외의 모든 성적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또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태복음 19:3-6에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9:3-6,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이 본문에서 결혼은 이성끼리(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까닭에) 해야만 하는 것이며, 이러한 남녀간의 결합은 영원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독신과 동성애

마태복음 19:1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시대별로 내시들은 일종의 독신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내시가 된 것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일종에 경건한 대안의 하나로써 독신을 택하고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독신자를 동성애나 난잡한 성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동성애적인 생활방식은 성경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동성애자 생활 방식과 정체성을 가지고 살겠다는 것이라면, 결코 예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킬 것이라도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까지 동성애를 고집한다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엄격한 말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자에 대해 반대하는 감정만을 가지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감정을 가져야만 합니다. 비난과 모욕의 감정이 아닌, 긍휼과 자비의 감정을 가져야만 합니다.

 

동성애와 그리스도인

   우리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시되는 세상을 살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각종 성적 질병과 무질서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러한 비신앙적이고 타락한 세상 질서에 굴복하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의 풍조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에 엄격하게 순종하되, 동성애자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라, 성경적 가르침과 여러 차례의 권면을 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아닌 성적인 쾌락을 추구한다면, 신앙적인 치리의 단계로까지 가야만 합니다.

   적절한 타협은 신앙을 흔들리게 하며 구원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복음에는 적절한 타협이 없음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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