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의 삶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삶입니다. 상식적이지 않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분의 삶은 어리석어 보이는 삶이지만, 따라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삶입니다. 바보같은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닮은 바보같은 제자들을 찾고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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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성경 : 누가복음 6장 27절-36절
설교 : 바보같은 제자의 삶
찬송 :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서론
여러분! "호구"라는 표현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표준어인 호구는 여러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뜻은 태권도나 권투를 할 때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장비를 말합니다. 둘째는, 호적상 집의 숫자와 식구의 숫자를 말합니다. 흔히 호구조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호랑이의 입에 머리를 집어 넣는다와 같이, 위험한 상황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자주 쓰는 의미로서의 호구는, "어리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원래는 바둑의 용어인 어리숙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구는,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 혹은 이용 당하기 좋은 사람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봉"이라고도 했던 이 말은, 자기 것은 챙기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것을 다 빼앗기는 사람을 부를 때 "호구"라고 부르곤 합니다. 남 좋은 일만 시켜 주고서 자신이 무엇을 손해 봤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의 삶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제자의 삶을 가만히 읽어보고 묵상해 보니, 딱! 호구같은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것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남들에게 다 빼앗기는 것 같은 삶,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는 것 같은 호구같은 삶이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이제는 우리를 주께서 어찌보면 호구같은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까요, 아니면 거부해야 할까요?
그런데 가만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주님의 삶을 기억해 보면, 당장은 호구같은 삶이요 바보같은 삶처럼 보이지만, 이 길은 존귀한 길임을 깨닫습니다. 어리숙해 보이는 삶 같아도 아름다운 길이요, 무엇보다 우리를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며 바보같은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바보 같으나 존귀한 삶
첫째, 제자의 삶은 바보 같아 보이지만 결국 존귀한 삶입니다.
겉보기에 제자의 삶은 너무나도 바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27-28,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행동입니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제자의 삶은 바로 그런 삶입니다. 그래서 제자의 길은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비록 찾는 자가 적고 걸어가기 힘든 길이 제자의 길이지만, 제자의 삶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존귀한 삶입니다. 사람 눈에는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존귀하신 주님을 닮은 존귀한 삶입니다. 바보 같으나 실상은 존귀한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손해 보는 것 같으나 부요한 삶
둘째,제자의 삶은 손해 보는 듯하나 부요한 삶입니다.
누가복음 6:29-30,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잡으려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내 호주머니에 무엇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기꺼이 손해를 볼 줄 압니다. 왜냐하면 그 손해야말로 나를 부요함으로 이끄는 손해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땅의 창고는 비워져도 영원한 하늘 창고를 가득 채우는 손해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의 손해가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의 보상을 받게됨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손해 보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3. 버려졌으나 주님을 얻는 삶
마지막으로, 제자의 삶은 버려진 듯하나 주님을 얻는 삶입니다.
재물을 잃을 수도 있고, 건강을 잃을 수도 있고, 친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건대 제자의 삶은 온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보화를 얻는 길인즉,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을 얻는 길입니다.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게 주어지는 선물 가운데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존귀한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자의 삶이 비록 많은 것을 내려놓는 삶 같지만, 실상은 가장 부요하고 존귀한 삶을 살게 됩니다.
결론과 도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970년대의 유명한 가수 이종용씨의 노래이며, 제목은 '너'입니다. 이 가수의 노래 중 가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참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보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홍종명이라는 작가는 "바보 예수"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길게 늘인 머리카락에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힘없이 축 처진 눈은 전혀 이해 받지 못한 그분의 얼굴, 바보같은 얼굴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바보같은 삶은,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바보같은 삶이 유대 지방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들을 통하여 소아시아 지역에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바보 같은 말씀과 바보 같은 삶은 세상을 점령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바보같지만 결코 바보로 끝나지 않은 영광의 삶이, 바보 예수님의 바보같은 제자들의 삶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셨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손해 보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먼저 주님을 내 삶에 모시고 주의 말씀이 내 삶을 가득 채우도록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가까이 해야 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이끄시는대로 내 삶을 주님께 맡겨 갑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바보같지만 참된 제자의 삶이 될 것입니다.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 주님께서 더 풍성히 채워 주시는 삶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제자다운 삶을 살아가는 존귀한 주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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