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0일 주일 대강절(대림절) 넷째 주일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대강절(대림절) 넷째 주일설교
- 구유의 의미, 예수님은 왜 구유에 나셨을까 - 크리스마스 설교 성탄절 설교
- 누우신 예수님 - 누가복음 2장 16절, 크리스마스 설교 성탄절 설교 개요
- 예수님의 재림과 그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무엘하 7:1-11, 16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두번째로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이 법궤에 들어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열왕기서는 단순히 두 개의 돌판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법궤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묻고 '예'와 '아니오'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우림과 둠밈이 저장되어 있었던 궤일 수도 있습니다.
이 법궤는 들고 다닐 수가 있었으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운반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엎드려 경외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만질 수 없는 신성한 궤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다윗 왕이 세운 성막 안에 보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실로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배가 드려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법궤가 모셔졌던 곳이었습니다.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진 후에는 이곳에 영구적으로 모셔졌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으며 백성의 지도자로서 위대하게 세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후손들이 대대로 왕위에 앉을 것이라는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32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전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다윗 왕조는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멸망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다윗 후손의 왕들의 범죄로 인한 심판이었습니다.
끝이 난 것 같아 보였던 다윗 왕조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 회복이 바로 복음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16:25-27
이 구절은 축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축도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들과 함께 있을지어다"로 마칩니다. 이보다 좀더 짧은 문장은 롬 16:20이나 15:33에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은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로마교회에 보낸 바울의 또다른 편지의 조각이 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에서는, 하나님을 언급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요소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현재 이방인들이 나타내고 있는 구원의 확신, 그리고 우리 하나님에 대한 순종 등이 바로 그 요소들입니다. 믿음의 시련 속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믿음을 지키도록 도와 줍니다.
본문의 26절에는 복음서들이 나타내는 핵심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에게 숨겨진 신비는 하나님께서 열방을 구원해 주신 은혜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방인들에게는 그 사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예언서에서 증언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이십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들이 찬양하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도 알려졌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최고의 왕국은 모세를 통해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질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6-38
6번째 달이란,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의 임신 후 6개월이 지났다는 뜻입니다. 24절에서는 5째 달이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27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약손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요셉의 조상이 다윗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32절에서 분명히 천사 가브리엘이 다윗의 왕위에 이제 마리아를 통해서 탄생할 아들이 앉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님의 다윗 가문과의 연관성은, 생물학적인 부모를 통하여 나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윗은 누가복음 3:31과 마태복음 1:6에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은 요셉이 아버지라고 기록하고, 마태는 마리아의 이름을 추가하였으며, 요셉의 아버지에 관한 두 본문의 내용은 차이가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유대인으로 나셨음을 강조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서부터 족보가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족보가 창조주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천사의 방문에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마리아는 천사의 방문보다 천사가 한 인사말에 더 당황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 인사는 평범한 인사말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천사의 말을 통하여 마리아는 자신이 왜 이토록 특별한 일을 감당해 내어야 하는가로 인하여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7:16은 누가복음 1:32-33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시편 2:7에서는 장차 태어날 아들을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시편 89편은 33절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1절, 10절은 "이새의 뿌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2장 9절은 예수님께 적절하게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31절의 의미는 "지금 당장, 이 순간"이라는 현재의 시제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34절-38절의 대화의 핵심은 마리아가 처녀인 때에 임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임신한 내용 역시 그녀가 출산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상황이었지만 임신을 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의 임신과 마리아의 임신 모두 일반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17절은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한 내용을 묘사한 것이고, 본문의 30절-33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내용을 묘사하였는데 두 묘사가 동일한 문제로 쓰여 있습니다.
대강절(대림절) 넷째 주일 설교를 위한 주제
1. 마리아의 전적인 헌신
처녀인 자신이 잉태를 할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로 인해 마리아는 당황스러웠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헌신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을 따르는 일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대가를 치뤄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온전히 따르며 헌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대가보다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영적인 주님의 나라
주전 587년 바벨론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무너짐으로써 다윗 왕조는 사실상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던 때의 많은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열방 중에 우뚝 선 민족으로 만들어 주길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영적인 것이며 평화로운 왕국입니다. 예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스라엘의 소망을 이루는 진정한 나라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