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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18 욥기 설교

욥기 22:21-30,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by OTFreak 202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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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바스는 격분된 어조로 욥이 얼마나 오만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독선적이고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 욥에 대하여, 엘리바스는 분노하며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욥기 22:21-30,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욥을 비난하는 엘리바스
욥에게 분노하는 엘리바스

 

목차

     

    들어가며

     

    욥기 22:21-30,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떡메치기

     

    떡메치기

       예전에는 떡을 만들 때, 두 사람이 함께 반죽을 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떡메치기'라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두 사람의 손발이 잘 맞아야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딴생각을 하거나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손을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끼리는 떡메치를 할 수 없습니다. 원수끼리는 한 번 내리치고 나서는 바로 전쟁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말기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고려시대 말기나 조선시대 말기를 보면, 파벌이 일어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치하고 상대방을 제거하려다가 각종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분열이 일어나고 서로의 생명을 빼앗다 보면, 결국 나라가 망하고 다른 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분열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외부의 적이 있다하더라도, 내부에서 단합하고 하나가 되면 충분히 외부의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분열되면 아무도 멸망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진짜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

     

    본문으로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분노하며 욥에게 외칩니다. 그 말이 바로 오늘 본문인데, '하나님과 화목하라' 즉,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고 조용히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고 하지 말고, 조용히 지금 당하는 고통 속에 있다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으라는 분노에 찬 저주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엘리바스의 이 말은, 욥의 상황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큽니다. 우리 믿음의 과정이며 또한 믿음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화목이란

       본문의 21절에 나오는 '화목하라'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싸칸'(סָכַן)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싸칸이라는 말은, '도움이 되다' '유용하다'는 원뜻을 가지고 있고, '유용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할 때에는 '쏘켄'이라고 합니다. 이 쏘켄은 우리말 성경에서 '청지기'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라'는 뜻이며, 이 말은 곧 '하나님이 주인이시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화목이 깨어진 원인

       그런데 우리 삶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화목이 어떻게 깨어졌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였을 때 깨어졌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는 함께 대면하며 대화하며 거닐며 산책했던 사이였습니다. 그만큼 친밀하였는데, 범죄 할 때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며 찾으시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습니다.

       이미 화목이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지고, 인간이 하나님을 피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교만과 불순종이라는 죄 때문입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바울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원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화목하기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말씀을 마음에 두기(22절) : 피와 심장에 두고 마음에 새긴다 : 주야로 묵상한다
    •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기(23절) : 교훈과 말씀에 순종하고, 죄를 멀리한다
    •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을 버리기(24절) : 보화와 금을 돌같이 여기고 멀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 회개하고 엎드려야(고후 5:18) 합니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오직 예수의 보혈로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화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화목의 결과

       이와 같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본문에서는 '평안'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평안은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샬롬'은 원 의미가 '완성하다' '이루어지다' '완전하다'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우리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여지고 완성됩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 나라의 평안'이며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입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아무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 오르는 평안을 하나님과 화목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화목할 때 ''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복'은 '토브'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좋은 일' '좋은 것'을 말합니다. 즉 물질적인 좋은 것들을 채우시고 인생의 참 기쁨과 만족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 많이 있으리라".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나가면서

       욥은 고난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믿음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입니다. 입술로 마음으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상황을 바꿔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저주 섞인 말로 시작된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라는 말이었지만, 믿음의 사람인 욥은 고난 속에서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끝까지 지켰고, 그 결과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잘될 때든 힘들 때이든 '하나님과 화목합시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며 천국의 평안을 누리고 우리 인생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써' 평안과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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