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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09 사무엘상 주석및해설

사무엘 상 19장,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 구조 새벽설교주제 해설

by OTFreak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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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상 19장에 와서는, 사울이 작정을 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히고 악령으로 인하여 온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셨습니다. 사무엘 상 19장의 구조와 새벽 설교 주제 그리고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사무엘 상 19장의 구조 새벽설교주제 해설
사무엘 상 19장,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사무엘 상 19장의 구조 새벽설교주제 해설

 

 

사무엘 상 19장의 구조

 

1절-10절,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요나단은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였으며, 아버지 사울의 지나친 시기심과 집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위하여 아버지 사울의 집착을 만류하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악령에 사로잡히고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사울의 창을 피하여 도망하였습니다.

 

11절-24절,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셨다

도망간 다윗을 추격하도록 부하를 보낸 사울은, 어떻게 하든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울의 딸인 미갈이 꾀를 내어 다윗을 구해줍니다. 이번에는 다윗이 사무엘에게로 피하였고, 그 소식이 사울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부하들을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 보냈으나, 부하들 모두가 예언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직접 다윗을 찾아가던 사울도 예언하게 됩니다.

 

 

사무엘 상 19장의 새벽설교주제

 

1절-10절, 아름다운 우정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사울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측근들에게 알립니다. 그 소식을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도 듣게 됩니다. 다윗과 친구가 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잘못된 집착을 알고는 다윗을 여러 차례 구해 줍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사울을 말립니다. 요나단의 아름다운 우정은 자신의 생명까지 걸고서 지킨 우정이었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친구로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품으신 참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내 생명을 걸고서 주님을 사랑하는 친구를 여기고 있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걸 준비가 되셨습니까?

 

11절-24절, 보호하시는 하나님

사울 왕은 도망간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하여 부하들을 보냈습니다. 이전의 위기 상황에서는 요나단이 자신을 도왔고, 이번의 위기 상황은 자신의 아내인 미갈이 도움으로써 다윗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윗은 사무엘에게 피하여 보호를 받게 됩니다. 시기와 질투에 사로 잡힌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을 어떻게 하든지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자 사울의 모든 계획들이 실패하고 맙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해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안전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찾아오는 여러 어려움들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피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이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사무엘 상 19장의 해설

 

13절, 우상

우상 [‘드라빔’(teraphim)]이라는 말은 가정의 우상이나 점을 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우상을 말하며(겔 21:21: 슥 10:2) 가족의 행운 및 번영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성경 기자들은 그것들을 명백하게 정죄했습니다(출 15:23; 왕하 23:24). 창세기 31장의 기자는 라반의 신들을 드라빔이라고 말했습니다. 라헬이 그것들을 안장 밑에 감출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창 31:334) 어떤 것들은 상당히 작았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윗과 미갈의 드라빔은 사람 크기와 모양이었던 것 같지만 말입니다. 이 작은 입상들 중 많은 것이 메소포타미아와 수로-팔레스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대중’ 종교 혹은 지방 종교의 일부였으며, 주요 신들을 위한 신전이나 민족적 제식들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그것들이 조상들의 작은 입상이었다고 주장하였지만, 다른 연구들에서는 그것들이 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가족의 수호신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18절-24절,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사무엘과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다는 말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잡으러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사울은 직접 라마 나욧으로 가는데, 그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신에 압도된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는 악한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사로잡게 해서는 다윗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속담을 언급한 것은 사울이 선지자 무리와 얼마나 관계없는 사사람인지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나욧'이라는 용어는 라마와 연관되어 있으며, 오직 이 부분에만 나타납니다. 그것은 아마도 고유 명사가 아니라 진영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용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리 문서에서는 이 히브리어와 관련된 아카드 어가 이동하는 목축 공동체가 성읍 변두리에서 야영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목자들이 거주하는 곳에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라마 바깥에 비슷한 유형의 진을 형성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24절, 그의 옷을 벗고

심지어 사울조차 하나님의 선에 ‘영향을 받아' 사로잡힌 바 되어(황홀경의 체험을 하여) 옷을 벗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에 압도당한 경우 중 하나입니다(참고 10:10: 11:6 : 16: 14). '벌거벗음’이라는 말은 완전히 벌거벗었다는 것이 아니라, 겉옷을 벗었다는 의미일 수 있으며, 여기에서도 그런 의미로 쓰였을 것입니다. 그는 사무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왕복을 벗어 버림으로써 그가 왕으로서 거부당했다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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