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은 믿음으로 전진했던 여호수아의 시대와는 대조적인 분위기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사사기 1장을 통해서 보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초반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여쭙고 전쟁을 시작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사기 1장의 구조와 주석 새벽설교주제
사사기 1장의 구조
1절-20절, 정복 전쟁의 선봉에 나선 유다 지파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죽은 후, 남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후기 정복 전쟁에서 유다 지파가 선봉에 나서서 성공적으로 정복해 나갑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산지와 남방 지역과 쉐펠라 지역까지 정복을 완료합니다. 하지만 일부의 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정복하지는 못합니다.
21절-36절, 다른 지파들의 정복 전쟁의 실패
유다와 시므온은 연합하여 나름대로 정복 전쟁을 이루어 갔지만, 나머지 지파들은 정복 전쟁에 실패하여 가나안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주변에 거주하게 됩니다. 심지어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들에 의해서 쫓겨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사사기 1장의 주석
1장 1절-3장 6절,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의 뿌리
이 단원은 사사기의 머리말입니다. 이 머리말은 왜 이스라엘이 배교 행위를 했으며, 또한 그 결과는 무엇인지 밝혀 줍니다. 또한 이 머리말에서는 배교 행위의 형식이 제시됩니다. 사사기의 본론(3:7~16:31) 전체를 통해서, 그 형식은 주기적으 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1장 1절-2장 5절, 배교 행위에 대한 전주곡 :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쫓아내지 못함
사사기 머리말의 첫 번째 부분은 유다 지파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몇몇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들과 계속 전쟁을 하는 것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복 전쟁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했음을 가리켜 줍니다(1:1~26). 또한 여기서 몇몇 지파들은 정복 전쟁을 계속하지만, 그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합니다(1:27~36). 그리고 여호와는 자신의 사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으므로,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했다고 지적하십니다.
1절-21절, 초기의 전쟁들 및 배교 행위로 자라게 된 씨앗
여기서 이스라엘의 몇몇 지파들은 가나안 땅의 주민들과 다시금 전쟁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된 평화('안식', 수 22:4)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여기서 유다 지파에게 이스라엘을 인 도하는 역할이 주어집니다. 곧 유다 지파는 다른 지파들보다 먼저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던 족속들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연합합니다. 그들은 이 전쟁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길한 전조를 보여 주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19절 및 21절).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배받은 약속의 땅을 공고하게 다지고, 아직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여 기업의 땅을 넓히는 일이었습니다. 이같은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단연 유다 지파가 돋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앙의 용장 갈렙과 옷니엘의 활약상이 탁월했습니다.
"주님, 옛적 유다 지파가 선봉이 되어 가나안 땅의 대적들을 물리치고 약속의 땅을 확장해 나갔듯이, 오늘날 저의 생애 속에서도 제 삶의 각 영역을 날로 확장해 나가게 하소서."
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점으로서, (수 1장에서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할 새로운 지도자가 임명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앞으로 사사기의 이야기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 무질서한 상태와 배교 행위를 미리 넌지시 알려 줍니다.
2절-3절,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야곱이 죽기 직전에 자신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부터,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곧 야곱은 유다의 자손에게서 장차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창 49:8~12).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족속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서로 연합을 합니다. 두 지파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곧 유다와 시므온은 모두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입니다(창 29:33, 35). 또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영토 안에서 자신들의 기업을 물려받았습니다(수 19:1, 9).
5절-7절, 아도니 베섹
아도니 베섹과 같이 가나안 땅에 있던 각각의 도시와 성읍마다.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도니 베섹(히, '아도니 베제크')이라는 이름은 '베제크의 주인'을 뜻합니다.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6절)라는 구절은 아도니 베섹이 다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적군의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관습은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서도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전에 아도니 베섹 자신도 이 관습을 실행했었습니다.
8절,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두 지파 는 모두 예루살렘의 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내는 데 실패했습니다(수 15:63: 삿 1:21). 나중에 다윗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삼하 5:6~10).
10절-15절, 헤브론과 드빌
이 단락의 내용은 수 15:13~19의 내용과 거의 비슷합니다. 아마도 이 단락은 이전에 헤브론과 드빌을 정복한 장면을 다시 비춰 주는 것 같습니다. 갈렙은 기럇 세벨을 정복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가져온 다윗에게 사울 왕이 자기의 딸 미갈을 아내로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삼상 18:25). 악사는 자기의 아버지에게 땅 이외에 또한 샘물도 줄 것을 요청 합니다(15절). 왜냐하면 신선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땅은 거의 쓸모없기 때문입니다.
16절,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이름은 이드로입니다(출 3:1).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과 겐 족속은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민 10:29~32). 이전에 모세는 자신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민 10:29)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과 겐 족속이 서로 협력하는 것을 통해 모세의 말이 성취됩니다. 종려나무 성읍이란, 여리고에 대한 또 다른 이름입니다(신 34:3: 대하 28:15).
18절,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
유다 지파는 블레셋의 주요한 성읍들 가운데 세 곳을 점령했습니다(수 13:2~3). 그러나 그 성읍들을 계속해서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그 성읍들을 차지했습니다(삿 14:19, 16:1; 삼상 5:10).
19절, 골짜기의 주민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얼핏 듣기에, 이 말에는 위험 요인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상 불길한 조짐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수 6:17, 11:14). 하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에게 등을 돌리는데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며, 또한 그들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삿 2:11~3:6). 1:18에서 언급된 블레셋 사람들의 세 성읍들은 산지의 평평한 지역에 있었습니다. 이 절은 이스라엘이 세 성읍들 이외에 다른 성읍들은 정복하지 못했다고 밝혀 줍니다. 그리고 이 절은 이스라엘이 심지어 세 성읍들에 대한 통제력도 얼마 후에 잃어버렸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철 병거는 평지와 지중해 연안에서의 싸움에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나안 산지에서는 별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철 병거를 갖지 못했습니다.
21절, 베냐민 자손은......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 두 번째로 언급됩니다. 이 언급은 27~36절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무려 여섯 번이나 나타나는 것을 미리 알려 주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에 만족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신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온전히 정복하고자 하는 열정이 부족했었습니다
22절-36절, 배교를 예고하는 불완전한 정복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북부 지역에서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처음에 그들은 벧엘에서 승리를 거둡니다(22~26절). 하지만 여섯 지파들 - 므낫세,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납달리, 단 지파 - 은 자신들이 기업으로 물려받은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27~36절). 이 지파들에게 분배된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운데 북부 지역의 삼분의 이에 해당합니다.
22절, 요셉 가문
사실상 요셉 지파는 없습니다. 요셉의 기업은 두 아들,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분할되었습니다(창 48:5~6; 신 33:17). 므낫세 지파는 27절에서, 또한 에브라임 지파는 29절에서 언급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참조, 창 28:19). 이곳은 족장들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벧엘에서 처음으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 13:3~4). 야곱은 이곳에서 꿈을 통해 여호와에게서 계시를 받았습니다(창 28:10~19, 31:13). 또한 여호수아가 맨 처음으로 벧엘을 정복했습니다(수 12:16). 아마도 아이 성을 함락시키고 나서, 여호수아는 벧엘을 점령 했을 것입니다(수 8:17).
27절-33절, 쫓아내지 못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와 마찬가지로, 다른 여섯 지파도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곧 므낫세(27절), 에브라임(29절), 스불론 (30절), 아셀(31절), 납달리(33절), 단 지파(34절)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그 대신 자신들과 함께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인 바알을 숭배했 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온전히 섬겨야 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27-33절, 하나님께 핑계를 대지 않기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없다면, 얼마든지 이유를 댈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아직 어려서...", "여유가 없어서..." 등등.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타당한 이유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 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유를 댔습니다.
"그들이 결심하고 버티기 때문에..."
이 말은, 힘이 캬지면 그들을 쫓아 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더 강성해졌을 때 그들은 또다른 이유를 말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부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순종하지 않을 타당한 이유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충분히 경험한 바와 같이, 순종하지 않으면 온갖 문제와 비극에 부딪히게 됩니다.
28절, 강제 노역
이스라엘은 많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강제로 노역을 시켰습니다(30, 33, 35절, 참조, 수 16:10, 17:13). 나중에 다윗과 솔로몬도 대적들을 이와 같이 부렸습니다(삼하 20:24; 왕상 9:15).
34절, 아모리 족속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에 속했습니다(수 3:10). 그들은 가나안의 산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단 지파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따라서 마침내 단 지파는 북쪽으로 옮겨 갔습니다(수 19:47: 삿 18:1).
사사기 1장의 새벽설교주제
여호수아가 죽은 후(1-10절)
가나안 정복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누가 앞서서 남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더이상 사람의 지도자만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지파는 하나님께 여쭈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러 문제가 우리를 어렵게 만들 때,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사람을 바라볼 때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 자체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완전하신 하나님께 여쭈어 문제를 바라볼 때, 완전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여쭙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함께 연합하면서(1-10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다가 먼저 올라가게 되는데, 유다는 강력한 지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유다는 혼자서 올라가지 않고 시므온 지파와 함께 동역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들의 연합은 베섹을 정복하고 예루살렘과 남부 산지 지역과 평지를 정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가 아니라 믿음의 동역자와 함께 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는 일부의 열심 있는 사람만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서로 연합하고 함께 해야만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연합을 위해 내가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믿음대로 된다(11-21절)
유다 지파가 정복 전쟁의 선봉에 서 있는 상황에서, 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하였고, 갈렙의 딸인 악사는 유업으로 받은 남방 지역을 요청합니다. 헤브론을 달라고 요청했던 갈렙과 같이 그의 딸인 악사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소중히 여깁니다. 믿음으로 요청할 때, 믿음대로 주어집니다. 천국 백성들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요청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내가 믿음으로 담대하게 구할 것이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참고할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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