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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40 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23장 29-39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설교

by 구약장이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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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마태복음 23장 29-39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시고, 예수님을 거부한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하십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예수님의 깊은 탄식과 주님의 기쁨에 대한 새벽설교를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9-39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설교
마태복음 23장 29-39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마태복음 23장 29-39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534장, 주님 찾아오셨네
  •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답답하거나 너무나도 깊은 슬픔에 빠졌을 때, 우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합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우리의 답답함을 표현하고 괴로움을 나타냅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은 그만큼이나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깊은 슬픔을 표현하신 예수님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여러 논쟁들을 통하여, 천국 복음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은, 오늘 본문 중에 마지막 부분인 마태복음 23장 37-39절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깊은 슬픔을 표현하셨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지금도 그러하지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하시며 슬퍼하신 것은, 모든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며 슬퍼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토록 탄식하시고 슬퍼하셨습니까? 37절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라는 말은, 당시에 널리 쓰이고 있는 속담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 등을 나타낼 때 "암탉이 새끼를 모음같이"라고 썼습니다. 즉,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과 보호의 마음을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상을 섬기며 다른 강대국들을 섬겼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를 가르쳐 주시고 전하셨건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음을 슬퍼하셨습니다.

 

둘째, 황폐하여 버려지리라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아집과 부패로 가득한 이스라엘은 결국 "황폐하여 버려질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슬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집"은 외부의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사나운 짐승이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는 공간입니다. 집에 있을 때, 우리는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집이 황폐하여 버려질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 어디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거부한 결과는 "황폐"(ἔρημος, 에레모스)와 "버려짐"(ἀφίημι, 아피에미)입니다.

참 생명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으니, 완악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당연히 영생을 잃게 되며 저주받은 도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멸망을 미리 아신 예수님은 깊은 탄식과 함께 슬픔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지 않도록 하려면

 

암탉이 병아리를 모음같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사랑과 보호를 표현하셨던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을 무시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당하여 황폐하여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이지만, 사랑의 예수님은 이들의 멸망을 슬퍼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보시며 예수님이 슬퍼하시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해야 할까요?

 

첫째, 나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슬퍼하시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것을 행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살전 4:1-9). 그리고 거룩함의 핵심은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 내 마음과 생각을 조용히 돌아보면서,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거룩함을 지켜서 주님의 기쁨이 되기로 결단할 수 있길 바랍니다.

 

둘째, 정직하고 공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지은 슬픈 노래인 예레미야 애가 3장 34-36절을 통하여, "약한 자를 짓밟고 억울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직하고 공의롭게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라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정직하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거짓된 언행으로 어려운 이들, 소외된 이들을 눈물짓게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일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정직하고 공의로운 언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길 바랍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도록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천국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너무나도 슬퍼하시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탄식하셨습니다. 2천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를 보시며 예수님이 여전히 탄식하며 슬퍼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정직하고 공의롭게 말하고 행동할 때, 주님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따라가며 거룩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님의 기쁨이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우리의 죄와 어리석음 때문에 지금도 탄식하시는 예수님!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멸망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들을 구원해 내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정직한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 우리나라와 민족이 복음을 의지하여 화해하게 하소서.
  • 우리 교회와 가정이 거룩함을 지켜 나가게 하소서.
  • 복음 전해야 할 한 사람이 생각나게 하소서.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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