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은 최근에 생겨난 새로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주후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는 요세푸스의 역사 이야기의 진실에 대해 의심해 왔습니다. 유대인이 로마와의 전쟁에서 유대 반란군의 편에 서서 전쟁을 치를 수는 있지만, 동족을 버리고 자칭 로마 황제의 친구라고 말하며 로마 편에 서서 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요세푸스는 결코 믿을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해 왔습니다.
요세푸스가 자신이 어떻게 로마의 편에 서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내용들을 신뢰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는 갈릴리 지역의 요타파타(Jotapata)가 함락 당할 때 40명의 동료들과 함께 동굴에 갇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거기에서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유대 반란군들이 서로가 서로를 순번을 정해 차례대로 죽이는 일들에 대한 구상을 하고 그 일을 명령했던 지휘관의 역할을 하였던 사람이 바로 요세푸스 자신이라고 ‘유대전쟁사’라는 자신의 책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요세푸스는 “우연히” 혹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동료들의 시체의 바다 속에서 자신과 단 한 명의 동료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동료 생존자를 설득하여 함께 로마군에 항복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민족을 배반하고 동료를 속여서 로마군에 항복하게 만든 요세푸스와 그의 책을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진정한 대답은, 요세푸스의 파란만장한 정치적인 경력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그가 쓴 책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고대의 작가들은 요세푸스가 베스파시안 자신을 비롯한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인 베스파시안의 황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사건에 대해 예언한 유대인 예언자로만 그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요세푸스가 민족의 배반자였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해 논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적어도 지난 2세기 동안 그가 쓴 역사의 내용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견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나쁜 사람들도 좋은 역사를 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써만 ‘유대전쟁사’라는 책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요세푸스가 활동하던 주후 70년대의 로마 제국이 공식적으로 주장해 왔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 담긴 요세푸스의 책에는,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고 성전을 불태웠던 화재는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가짜 뉴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전들에 표현된 것과 로마 광장에 지금도 서 있는 티투스의 개선문과 같은 건축물들은, 로마 제국이 유대 지방을 정복하고 유대인의 하나님께 굴욕을 안겼다고 생각하는 로마인들의 공식적인 생각을 잘 반영하는 상징물들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의 패배를 포함한 모든 멸망의 과정들이 유대인들이 저지른 죄를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신명기의 말씀에서 언급하시는 바와 같은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신학적인 생각을 반영한 것입니다. 사실, 요세푸스는 자신이 로마에 충성하기로 선택한 사실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여러 측면들에서 볼 때, 요세푸스가 쓴 유대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들 중에 하나는, 요세푸스는 유대 역사를 쓰기로 결정한 결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파괴했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에게 자신의 생명과 생계수단을 의탁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당한 재난에 대해서는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세푸스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모든 반전 속에 끌어 들이고 있으며 전쟁의 운명에 동참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위대한 성전이 완전히 불에 타서 사라짐으로써 예루살렘에서 외치는 고통의 울부짖음과 신음 소리를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과연 요세푸스의 동시대 사람들도 그의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의 후기 저서들에 나타난 그의 여러 비평들에 대하여 우리가 과연 어떻게 반응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요세푸스의 책은 주로 로마인 독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반대로 그의 책을 비평한 사람들은 모두 동료 유대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요세푸스가 주후 70년에 있었던 로마의 예루살렘 정복에 대한 목격담을 로마의 독자들에게 전함으로써, 시리아 남부 지역인 유대 땅에서 있었던 폭동을 진압하였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의 역할에 대해 큰 선전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로마가 유대인들을 완전히 정복하고 점령하는 발판을 마련한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현재와도 마찬가지로 2천년 전 중동의 이 작은 구석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더 넓은 세계에 커다란 정치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21세기의 독자들에게는, 마사다 요새의 최후의 집단 자살과 같은 요세푸스의 설명과 그의 여러 문학 작품들의 힘이 깊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또 그가 겪어 왔던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들은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지속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틴 굿맨(옥스포드 대학의 유대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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