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안식을 누리는 안식일이지만,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매일성경 본문에 따라 요한복음 5장 1절-15절을 묵상하며, 참 안식과 참 자비가 없는 이들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을 깨닫고 새벽예배설교로 준비하여 나눕니다.
요한복음 5장 1절-15절, 안식일에 안식이 없다
설교 전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새 찬송가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편리함 속에 편리함이 없는 세상
원래의 의미는 '궁전'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인 '쿠슈크'라는 말에서 온 단어인데, 오늘날에는 이것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된 기계가 있습니다. 특히 식당이나 무인 상점에 널리 사용되는 이 기계를 "키오스크"라고 부릅니다.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음식점에 가서 직원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화면을 보고 주문하고 결제까지 한 후, 번호표를 받은 후 음식을 받는 시스템을 "키오스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업주의 입장에서는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도입하기도 하였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편리함을 의미하는 기계가 키오스크입니다. 젊은이들이나 익숙한 이들에게는 편리한 기계이겠지만,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지 매우 난감해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편리한 기계인데 전혀 편리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식일에 안식이 없는 사람들
오늘 본문에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이 날은 모두가 편히 쉬고 안식하며 하나님께서 한 주간 동안 지켜 주심에 감사하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도 여전히 안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동안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만 있었습니까? 3절에는 각종 병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안식하는 날인 안식일에 전혀 쉬지 못하는 병자들은, 언제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움직이게 될까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연못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고침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려는 경쟁이 있었고 이곳은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곤한 아픔과 통증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연못인 "베데스다"에 자비는 없고 다툼과 경쟁과 속상함만이 가득하고 있었습니다.
참 안식과 참 자비가 나타나시다
안식이 없고 자비가 없던 안식일의 베데스다 연못에 우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38년 동안 누워 있던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그에게 "참 안식"과 "참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다. 8절과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5:8-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38년 동안 자신을 괴롭히고 삶의 안식을 깨뜨렸던 질병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이 병자에게 참 안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자비의 집에서 참 자비를 은혜로 베풀어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자비의 집에서 자비를 얻지 못하는 이 사람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참 안식과 참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욥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의 세 친구들이 욥을 찾아 왔습니다. 왜 찾아 왔을까요? 욥기 2장 11절에서는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욥을 정죄하고 욥의 고난의 원인도 모른 채 욥을 비난만 하였습니다. 욥은 위로하러 온 친구들에게서 전혀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시편 119편의 저자는 고난과 고통 속을 있던 순간에 자신에게 참 위로를 주었던 것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50절입니다.
시편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고난 중에 있다할지라도, 주의 말씀이 시인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또 아무리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에게서는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로부터 참된 안식과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안식과 자비를 얻습니까
참된 안식과 참된 자비, 참된 위로는 오직 주의 말씀과 예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안식이시며 자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안식과 자비를 베푸시는 우리 주님과 동행하며 오늘을 살아가심으로, 복잡하고 염려와 아픔이 많은 이 시대 속에서도 만족과 기쁨이 충만한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할 기도
- 우리 마음과 건강 속에 참 안식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복잡한 우리 나라의 문제들이 해결되어 평안이 넘치게 하소서.
- 우리 자녀들이 걸어가는 삶 속에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참고할 글
- 요한복음 5장,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 구조 해설 새벽설교주제
-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 나타난 예수님의 주요 행적 9곳
- 요한복음 4장 9절, '사마리아인'에 대하여 - 단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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