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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43 요한복음 설교

요한복음 4장 19절-26절, 삶이 예배이고 예배가 곧 삶이 되도록 - 주일설교

by 구약장이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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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알레르기를 가지고서 누가 참된 예배자 찾고 계시며, 참된 예배는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삶이 예배이고 예배가 곧 삶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영과_진리로_드리는_예배
요한복음 4장 19절-26절, 삶이 예배이고 예배가 곧 삶이 되도록 - 주일설교

 

 

요한복음 4장 19절-26절, 삶이 예배이고 예배가 곧 삶이 되도록

 

 

설교 전 찬양

 

     새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면역시스템과 알레르기

 

     우리 몸에는 면역 시스템이 있습니다. 면역 시스템이란, 한 번 감기에 걸리면 우리 몸에 감기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항체가 만들어져 감기에 잘 안 걸리게 되는 것과 같은 시스템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독감 예방 접종을 함으로써, 우리 몸에 독감을 이길 수 있는 항체를 만들어서 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돕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감 예방 접종만 하면 절대로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독감에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심하게 아프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독감 예방 접종을 하는 것입니다.

     예방접종과는 달리, 우리 몸에는 예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면역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여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피부가 가렵거나 콧물이나 기침이 나오는 과민 반응을 일으킵니다. 심한 경우에는 숨을 쉬지 못하여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면역 시스템의 오작동을 "알레르기" 혹은 "알러지"라고 합니다. 두 단어 모두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공식어입니다.

      아무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음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몸에 발진이 생기고 피부가 부어 오르고 가렵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마트에서 파는 음식들의 포장 용기에는 그림과 같은 주의 표시가 반드시 붙어 있습니다.

땅콩, 우유, 대두, 밀 함유
이 제품은 쇠고기, 닭고기, 토마토, 게, 새우, 오징어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 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땅콩잼을 주거나 우유만 마시면 뱃속이 불편해지는 사람에게 우유를 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땅콩으로 만든 음식이나 우유가 들어간 음식 자체를 먹지 않고 싫어할 것입니다. 아무리 산해진미를 차렸다해도 싫어하고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을 대접한다며 식탁에 차리면 "나를 미워하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알레르기

 

     하나님께도 알레르기가 있는 것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피하시고 가까이 하지 않으시는 알레르기는, 예배 드리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와 습관으로 예배 드리는 자세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소신과 자신의 철학, 자기만의 인생관과 정치 이념을 가지고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것들에 대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이같은 예배의 자리를 멀리하시고 그 예배를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레르기를 유발하여 괴롭게 하는 음식 성분을 피하려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자기 의를 나타내려고 드리는 예배자를 피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인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예배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의 수가 성에 있는 야곱이 자신의 아들인 요셉에게 준 우물 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하는 샘물을 마시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말씀하셨으며, 여인은 솔직하게 자신의 형편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형편을 모두 알고 계셨고, 이 사실에 놀란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예배 장소에 대해 질문합니다.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조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된 이후, 사마리아 지역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가 살았고 앗수르 제국의 정책에 의해 주변의 나라들의 포로들이 끌려와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지역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살고 아람 사람들도 살았으며 모압과 암몬 등의 사람들과 같은 이방인들도 섞여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이 결혼을 하면서 혼혈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 혼혈인들의 후손들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가 신명기 말씀을 통하여 가르친 것처럼 사마리아 지역의 세겜이라는 도시 옆에 있는 그리심 산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다윗이 정복하여 만든 시온산성 즉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20절에서 자신들은 "이 산" 즉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인은 예배의 장소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신 것이 있는데, 바로 예배의 장소에 대한 여인의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어리석은 질문, 예배의 장소가 어디입니까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고 예배의 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예배의 장소는 중요하지 않고 예배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함께 23절과 24절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볼 때,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를 묻는 여인의 질문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시며 질문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예배자의 자세,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중심은 '예배자의 마음', '예배자의 중심', '예배자의 자세'에 있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세를 찾으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에 따뜻한 국과 밥을 좋아하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오렌지 주스와 식빵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국과 밥을 좋아하시는 하나님께는 국과 밥으로 대접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어떻게 드려야 한다구요? 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기뻐 받아 주십니다.

 

 

삶이 예배이고 예배가 곧 삶이 되는

 

     그렇다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어떤 예배를 의미합니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감동을 따라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서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예배 중에 만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신의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모두 내려 놓고 겸손한 자세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가 시작 되기 전에는 부정적인 이야기, 남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예배 시간 되었다고 1시간 동안만 부정적이고 비난의 이야기를 멈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만 거룩하게 드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예배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우리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고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우리도 예배의 장소, 예배의 분위기만 찾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좋은 예배의 장소, 멋있는 조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며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주여 주여"라며 형식적으로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 깊이 "주여~" 내뱉는 신음 소리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인생관을 모두 포함한 삶의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매일의 삶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삶이 예배이고 예배가 곧 삶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하며, 매일 집에서 기독교 방송을 보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는 모습이 하나님 중심의 예배입니다. 직장에서 말씀을 한 절 읽으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운전을 하며 기독교 방송을 들으면서 흘러 나오는 찬양을 뜨거운 마음으로 같이 부르는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릴 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예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삶이 예배가 되는 참된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삶이 보장되는 푸른 초장, 만족함이 넘치는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시험과 고난이 와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의 갈등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게 됩니다. 짓눌리고 무너져 내린 우리의 인생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 위로와 안정감을 누리게 됩니다. 불안하고 답답한 우리 마음이 영적 예배 속에서 하늘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 중심의 영적 예배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위한 필수적인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코로나 변이로 확산세가 폭증하는 위기를 살아가지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시기길 소망합니다. 이번 한 주간, 내 삶의 모든 자리가 교회가 되어 매일 내가 있는 그 곳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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