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요셉이 꾼 두 번의 꿈과, 감옥에서 만난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 내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요셉과 관련된 마지막 꿈인 바로의 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로 역시 연속해서 두 번의 꿈을 꾸었습니다. 모두 두 번으로 연결되는데, 바로의 꿈은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요?
목차
앞 부분의 내용들
2020/09/04 - [나의 공부/내 마음대로 공부하기] - 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1
2. 세 번의 꿈들
(3) 바로의 꿈(창 41:1-46)
1) 꿈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감옥에 갇힌 지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꾼 것입니다. 바로는 연속해서 꿈은 두 번 꾸게 됩니다. 첫 번째 꿈은, 흉하고 파리한 일곱 마리의 소가 나일강변에 있던 아름답고 살찐 암소 일곱 마리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두 번째 꿈은,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입니다.
애굽 땅의 생명을 주는 강인 나일강가에서 해괴하기 짝이 없는 꿈을 꾼 바로는 꿈의 뜻이 궁금하여 즉시 번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창세기 41:8, 개역개정 성경)
그래서 주변에 있는 꿈 해몽가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일강에서 악어가 올라오지 않고 풀을 뜯어먹는 소가 올라왔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게다가 소가 소를 잡아먹었다니, 점술가들과 현인들은 꿈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꿈은 또 어떠합니까? 앞의 꿈과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이삭들이 나와서 잡아 먹고 잡아 먹이는 광경이 연출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꿈을 연달아 두 번이나 꾼 상황 속에서 바로나 점술가나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 주인공 요셉 등장
이처럼 뒤죽박죽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 요셉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말과 같이, 모두가 애타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뜻을 알지 못하여 왕은 답답하며 점술가들은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모두가 절망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죄를 바로에게 고백합니다. 2년 전, 감옥에서 만난 요셉이 자신의 무죄함을 꼭 바로에게 아뢰어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그 요청을 귀찮아하다가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자신의 기억을 바로에게 아뢰어 "하나님으로부터 꿈의 해석을 전해 듣는 소년" 요셉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바로는 씻고 자신의 앞에 나온 요셉에게 묻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창세기 41:15, 개역개정 성경)
'네가 내 꿈을 해석할 수 있느냐'라고 직접 물었습니다. 요셉은 대답합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세기 41:16, 개역개정 성경)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실 것이라고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하자면, 요셉은 2년 동안 감옥에서 모두에게 잊혀진 채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보디발 장군은 사건을 재심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요셉을 돌아보지 않았고, 심지어 은혜 입었던 술 맡은 관원장도 애써 그를 잊었습니다.
화가 날대로 나고 하나님께 원망을 마음껏 퍼부었을만한 상황이지만, 요셉은 이상하리만큼 침착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대답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분노에 찬 것이 아니라 확신에 차 있었으며, 우울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하나님을 높입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이후, 바로는 아마도 더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꿈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운데다, 히브리 소년의 상황은 절망해도 당연할 텐데,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바로는 요셉을 보면서, '미쳤거나 혹은 신의 아들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3) 바로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
바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는 요셉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먼저 서로 달라 보이는 두 개의 꿈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꿈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힘주어 말합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세기 41:25, 개역개정 성경)
요셉은 아름답고 살찐 일곱 마리의 소들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살찐 소들과 마찬 가지로 일곱 좋은 이삭 역시 같은 의미임을 말합니다. 특별히 26절에서 말하는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에서, "좋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טוֹב)입니다. 토브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실제적으로 유익하고 선한 것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아름답고 좋은 암소들과 보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들은, 외적인 모습보다도 그것들이 상징하는 선한 바, 다시 말해 7년의 풍년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요셉은 설명합니다.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와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은 어떠합니까? 일찌기 애굽 땅에서 바로가 본 적이 없는 매우 흉한 암소들이며 말라 버린 이삭들이었습니다. 특별히 "흉한"이라는 말은, "좋은"이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토브"와는 반대의 단어인 "라"(רַע)를 쓰고 있습니다. 외적으로 흉한 것보다도 재앙이나 기근, 질병 등의 나쁜 것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해석하지 못한 바로의 꿈을 명쾌하게 해석한 요셉을 향하여 바로는 탄복을 하며 39절과 같이 말합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창세기 41:39, 개역개정 성경)
애굽의 바로는 신(神)의 아들로 숭배를 받습니다. 신의 아들로서 모르는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점술가들과 현인들은 당대의 최고 지성인들이었습니다. 신의 아들인 바로도,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최고의 지혜자들도 해석하지 못한 꿈을 히브리 소년이 해석했으니, 온 궁궐과 나라 안이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바로도 실패하고 지혜자들도 실패한 일을, 요셉이 성공했으니 말입니다. 요셉이 성공적으로 꿈을 해석한 원인을 바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이셨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였지만 요셉을 통하여 이집트의 신들을 능가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4) 애굽 총리 요셉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그 속에 모신 요셉을 바로와 모든 이들은 두려워하며 존경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을 애굽 온 땅의 총리로 세우게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창세기 41:43, 개역개정 성경)
그리고 바로 다음의 자리에 오르도록 하며, 신의 아들인 바로의 대리인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반지와 수레와 세마포 옷과 금사슬로 치장하게 한 후, 애굽의 모든 이들이 요셉의 앞에 엎드리도록 합니다. 요셉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족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 주신 꿈이 드디어 실현 직전에 왔습니다. 노예로서의 삶과 감옥에서의 삶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어 가실까 의심도 하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때가 되자 절묘하게 모든 일들이 맞물려 진행되고 일사천리로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가족만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를 제외한 애굽의 모든 백성들이 요셉에게 절을 합니다. 기근으로 굶주린 주변의 모든 국가의 백성들까지 요셉에게 나와 절을 하며 곡식을 사 가게 됩니다. 이후에 야곱을 만나게 되었을 때, 요셉은 야곱에게 자신이 "바로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말하며(창 45:8), 온 땅의 총리(창 41:41)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언제 이루어질 지 그 날을 모를 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3. 나가면서
두 번 꾸었던 요셉의 꿈들은 두 관원장들의 꿈들을 거쳐서, 바로의 두 번 연속 꾼 꿈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양 떼를 돌보던 양들의 관리자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의 관리자를 거쳐 감옥의 관리자가 되었으며, 이제는 온 땅의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13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갖은 고난과 절망의 상황을 살아온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꿈만을 보고 살았습니다. 종으로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에 성실하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꿈에 대한 확신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내가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이룸을 보았습니다. 지금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때가 아닐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꿈을 이루실 그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때가 오면 모든 것이 역전되며, 주신 꿈을 넘어선 은혜와 기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요셉을 보면서, 꿈을 꾸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함께 그 때를 확신으로 기다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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