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모세가 받은 율법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새로운 언약에 대해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율법의 한계를 설명하며 복음의 은혜를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복음 속으로 들어갈 것을 말합니다.
고후3; 1-11; 새 언약의 우월성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위에 대해 계속적으로 도전을 받아왔다. 그것은 그를 시기하는 자들의 편견에서 비롯되었으나, 복음 전하는 일을 훼방하려는 사단의 궤계가 숨어 있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도 바울의 사도 됨을 증명하는 '천거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새 언약의 우월성을 들어 반박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영광을 교훈하고 있다.
[1]. 새 언약의 편지(1-5).
추천서를 요구하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성도 자신들이 바로 자기의 추천서가 되는 '편지'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어떻게 세웠는지 처음부터 보았던 산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새 언약의 편지가 될 뿐 아니라 율법보다 우월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①먹으로 쓰지 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썼기 때문이다. ②돌 비에 쓴 것이 아니라 육의 심비에 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에 따라 성도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그 마음에 말씀을 새겨 주셨다. 그뿐 아니라 성령을 보내셔서 인치시고 보증해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살게 된 것이다.
[2]. 새 언약의 직분(6-9).
바울은 자기의 권위를 의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스러웠는데, 하물며 영의 직분은 어떻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새 언약을 가진 영광스런 일꾼들이다.
[3]. 새 언약의 영광(10, 11).
없어질 율법의 영광도 영광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새 언약의 복음은 영원히 있을 것이므로 더욱 영광스러운 것이다. 복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 영광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다.
고후3:12-18; 모세의 수건
사람이 주변이나 환경을 의식하지 않고 진리를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핍박이 따르고 비방하는 말들을 감수해야 하며, 때로는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 진리를 맡은 사람들의 길인데, 바울은 이 직책을 부끄러움 없이 잘 감당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을 의식한 나머지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진리를 은폐시키는 일이란 신실치 못한 증인들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일에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바울은 본문에서 모세의 수건에 관해 증거하다.
[1]. 새 언약에 탁월함.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은 철두철미 유대인이었고,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으며, 랍비였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로 발견하게 된 놀라운 사실은 모세의 수건 속에 가리워졌던 율법의 영광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언약이 탁월하다는 것이었다. 이 언약 안에 있으므로 바울은 담대할 수 있었고, 주변이나 환경을 의식함이 없이 진리를 말할 수 있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완고함.
14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수건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놀라운 역사들을 보고도 그분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이런 수건들이 없는지 살펴보자. 교리나 교회의 전통이라는 고정관념은 자칫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요인이 되기가 쉽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 주목해야 한다.
[3].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음.
인간의 참된 자유, 영적 자유는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만 가능하다. 율법 아래서는 속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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