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새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주만 바라볼찌라
성경 : 마태복음 5장 6절
설교 : 제4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소화가 안될 때
과식을 하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여 소화불량 혹은 체한 적 있으십니까? 체하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는가요? 일반적으로 체했을 때 세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곤 합니다.
첫째, 소화제를 사 먹거나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부채표 동화 활명수를 마시거나 소화제를 먹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거나 아이들이 배가 아플 때는 병원에 가기도 합니다. 약국에 가거나 병원에 가는 것이 귀찮거나 피곤할 수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제일 빠른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바늘로 손가락 따고 배를 만지는 것입니다. 엄지손가락을 따거나 심하면 열 손가락, 발가락들까지 따기도 합니다. 그리고 배를 만져 주면서 "할머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말한다라고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손을 따면, 혈액 순환이 원활해져서 위와 소장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소화가 됩니다. 그리고 배를 따뜻하게 만져주면 소화도 촉진됩니다.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소화 치료법입니다. 특히 약을 구하기 힘들거나 병원에 가기 힘든 60년대 70년대에 많이 행했던 민간요법입니다.
부록으로, 된장을 연하게 탄 물을 마시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완전 굶기"입니다. 하루를 물만 마시고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소화가 서서히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화가 안되어 배가 아프면, 종일 굶으면 됩니다. 제가 제일 선호하는 방법입니다.
제일 어려운 일, 금식
세 번째 방법, 완전 굶기를 하면 제일 큰 부작용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의 목록이 떠오른다는 점입니다. 소화가 안되어 배는 아픈데 머릿속으로는 먹을 것을 생각한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식욕이 강한 존재인가를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매슬로우라는 심리학자가 주장한 "인간욕구 5단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리욕구'에 식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먹는 것이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먹지못하면 죽게 되기 때문이죠.
흔히 담배를 끊는 사람이 독하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담배 끊는 사람에 버금가게 독한 사람도 있는데, 바로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만큼 독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담배를 끊고 음식을 끊어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담배와 음식을 피고 먹고자 하는 자신의 욕심과 맞서서 싸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독한 사람들이고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부려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을 통하여 자신의 욕심과 싸워 이긴 사람들을 이렇게 칭찬합니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고 자신의 마음, 즉 욕심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정복한 사람보다도 위대한 법입니다. 다이어트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경험들이 있으십니까? 혹은 아예 시도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먹는 것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 예수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40일을 금식하신 후에도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으시고 사탄의 유혹까지 물리치셨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떡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굶주린 후에 허겁지겁 먹게 되는 떡에 대한 욕망을 이기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굶주린 사람이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그것도 너무나도 오랫동안, 40일 금식을 하되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세상, 불공평하고 아픔이 있으며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너무나도 하나님의 공의를 경험하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정의롭고 정직하며 올바른 것을 너무나도 오랫동안 보지 못하여 답답한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날이 갈수록 악해져 가는데, 우리는 그 속에서 선함과 거룩함을 찾지 못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선하심이 꼭 필요하다는 간절함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본문의 "의"에는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했다면 칭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도 범죄하고 하나님께 반역했다면, 앗수르나 바벨론이라는 매에 의해 혼이 나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 본문의 "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의"에 포함된 또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하여 심판하셨습니다. 나라가 없어지고 민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고향 땅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바벨론 땅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약속하신 70년이 지난 후, 고향 땅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다시 세우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라의 부정과 부패, 민족의 죄를 보고서도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이미 세상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우리 주변의 부정과 부패와 죄악을 보고서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죄악이 소멸되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 땅 가운데 임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팔복의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금껏 살펴본 팔복을 되돌아 봐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하여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열정, 나의 죄악과 이 나라 이 민족의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고 애통해 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겸손히 순종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으로 변해갈 때, 이 땅의 것이 얼마나 악하고 욕심에 가득찬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깨끗하게 되고 그 가운데 베푸실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절박하게 바라보고 갈망하며, 애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는 사람, 금방 없어질 이 땅과 내 몸의 욕심과 욕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만족과 기쁨에 굶주리고 목말라 할 때,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니다.
그들이 받는 복
이같은 갈망과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복을 받습니다. 본문의 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배부르다'는 말은 헬라어로 "코르타조"(χορτάζω)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의 뜻은, 음식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배부르되 더 이상 음식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게 먹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페 식당에 가면 배가 터질 정도로, 더이상 음식의 "음"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풍성하고 만족스럽게 된다는 뜻입니다. 무엇으로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요.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주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갈구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예수님이 주시는 권능으로 영혼이 가득차며 인생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더이상 배고픔이나 목마름이 없이 영원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한 여인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남편이나 다 자란 아들이 없으면 여인 혼자서 먹고 살기가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싫든 좋든 결혼을 해야만 생활의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생활의 안정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섯 번이나 결혼하였던 이 여인은, 안정된 삶을 갈망하고 또 갈구했습니다. 먹을 것 걱정하지 않는 삶을 바랬습니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은 법적으로 남편도 아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행복을 위하여 다섯번이나 결혼을 했었고 지금의 남자와도 살고 있지만, 진짜 행복은 여전히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니지 않는 가장 더운 시간에 우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에게서 행복과 안정을 얻으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어리석었던 것인가를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안정과 행복에 목말라 했던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고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 13-14절입니다.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인생의 참된 기쁨과 만족에 목말라 하던 이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참 만족을 주셨습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행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도 영원한 천국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배부름, 천국의 행복 말입니다. 이 만족은 결코 체하지 않는 만족입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만족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행복을 주는 만족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육체의 즐거움이 아닌 하늘의 것을 먼저 갈망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행복과 만족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만 바라보며 주님 주시는 기쁨과 참된 행복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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