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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40 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 수요기도회 팔복설교

by 구약장이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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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새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성경 : 마태복음 5장 3절-12절
설교 : 제2복, 애통하는 자

 

창자가 끊어진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표현을 써 보셨습니까? 우리가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운 상황, 큰 슬픔 속에 빠졌을 때 이런 표현을 쓰곤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1번 영상 시청) 얼마 전 울산에서 있었던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공무원의 영결식 장면입니다. 함께 했던 동료의 울먹이는 모습 속에서 애간장이 녹는 것 같은 슬픔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2번 영상 시청) 음주 운전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오열입니다. 어머니의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이 느껴지십니까?

   영상에서 느껴지는 동료를 잃은 소방공무원의 목소리,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울음은, 그야말로 깊은 애통과 슬픔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깊고도 깊은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피끓는 부르심을 외면하고 여전히 세상 향락을 즐기고 우상을 섬기며 애굽만을 붙들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던 예레미야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민족의 멸망을 바라보던 예레미야 역시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느꼈으며, 애간장이 녹아 땅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라고 고백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창자(메에, מֵעֶה)가 끊어지다는 표현은, 너무나도 큰 혼란과 슬픔으로 인하여 정신줄을 놓는다는 뜻입니다.
   애간장이 녹고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경험해 보셨는지요? 결코 경험하고 싶은 일이지만, 혹시 이와 같은 슬픔을 이미 경험해 보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방금 보았던 동료를 떠나 보내는 슬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부르짖음, 민족의 멸망을 미리 알고 있는 예레미야의 애통함은, 다른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인하여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끼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료, 자식, 민족은 내가 아니라 제3자, 다른 사람입니다. 그들을 잃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워 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슬픔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누구인가

   오늘 본문에도 애통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본문의 4절에서 말하는 애통하는 자는 동료를 잃은 자, 아들을 잃은 어머니, 민족의 멸망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애통과는 다른 슬픔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애통하는 자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가지게 되는 깊은 슬픔과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애통함을 의미합니다.
   애통하다(펜데오, πενθέω)는 뜻의 신학적인 의미는, 나의 영적인 가난함과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고 죄에 대한 회개와 관련된 슬픔을 의미합니다. 남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인됨과 멸망을 향해 가는 모습을 보고 슬퍼하며 울부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자신의 심령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철저하게 애통하는 자리까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죄에 대한 원통함과 억울함, 그리고 지금껏 죄에게 속고 살았던 삶에 대한 억울함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애통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이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애통함은 언제 생기는가

   이와 같은 애통함은 언제 생겨나게 될까요? 자기 죄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게 될 때,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의 애통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초등학교 여름성경학교할 때 교회에 잠을 자는 마지막 날이나, 중고등부 여름이나 겨울수련회 때 저녁에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위기에 이끌려 눈물 콧물 쏟으며 울며 기도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진심으로 애통해 하며 원통한 마음으로 회개 기도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깨닫고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게 되면 애통한 마음이 생기고 통곡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모두가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받는 복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창자가 끊어질 듯 애통해 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복은 바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파라칼레오()라고 기록된 위로는, 세상이나 사람이 주는 만족과 위로가 아닌, 오직 위로부터 내려와 우리의 애통한 심령을 시원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나도 모르게 솟아 오르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한 후, 내 안에 솟아 오르는 시원함을 경험해 보셨지 않습니까? 슬피 울며 탄식하며 기도한 후, 나도 모르게 확신이 생기고 평안과 기쁨이 생기는 경험을 해 보셨지 않습니까? 바로 이와 같은 시원함, 확신, 평안과 기쁨이 바로 진심으로 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애통해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과 위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린도후서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립시다

   이 세상에서는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고소나 고발을 당하게 되고, 큰 문제가 아니면 벌금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심각한 죄를 지으면, 법정 구속이 되고 심문이 이어집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을 받게 되고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세상 속에서 지은 심각한 죄를 해결하려다 보면, 벌금이나 징역형을 살아야 해결이 됩니다. 이러한 해결법은 결국 나의 죄로 인하여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해결책입니다. 범죄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씌우고 자녀들의 앞길이 막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창자가 끊어질 듯한 깊은 뉘우침과 애통함으로 회개할 때, 완전히 용서해 주십니다. 게다가 위로하시며 복까지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오늘 이 밤에 우리 함께 우리 자신을 돌아 봅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죄의 모습이 있다면, 애통하며 회개합시다. 우리 하나님께서 두 손 들고 나아온 우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받아 주시며, 하늘의 위로와 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가정의 죄, 한국교회의 죄, 우리 나라와 민족, 세계 열방의 교만한 죄도 함께 애통해 하며 회개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위로와 복을 우리 가정과 한국교회와 나라와 민족, 세계 열방에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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