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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내 마음대로 공부하기

누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는가, 유대교 해석

by OTFreak 202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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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굽 왕 바로가 거듭되는 재앙 속에서도 그 마음을 완악하게 혹은 완강하게 하였다고 출애굽기는 기록합니다. 바로가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혹은 완강하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그처럼 행동하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애굽의 지도자의 비타협적인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으신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유대교적인 해석(파라샤 바에라, 출애굽기 6:2-9:35에 관한 해석)을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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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토라 속에 담긴 위대한 철학적인 도전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들은 자주 "파라샷 바에라"에서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주, 파라샷 바에라 : 유대인들이 토라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서 읽는데, 나눠서 읽는 출애굽기의 한 부분. 이 부분은 출애굽기 6:2-9:35의 내용이며,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명령하시는 내용입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전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재앙을 내리십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이 부분은 우박이 그치고 바로가 다시 마음을 바꾸면서 끝이 나는 부분입니다.

   이 장들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바로를 설득하려는 내용과 그에 따른 바로의 거부, 그리고 처음의 일곱 가지의 재앙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의 마지막에는, 악성 종기로 인하여 애굽의 사람들과 짐승들이 고통을 당한 이후에 출애굽기 9장 12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9: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바로와 모세의 다툼은 계속되고 있지만, 매우 불공평한 상황 같아 보입니다. 바로, '자유 의지'라는 부분에서 매우 해석하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위의 구절만을 놓고 볼 때에는, 과연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달라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바로가 거부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바로가 거부하도록 만드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바로는 똑같이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을까요? 하나님께서 바로가 거부하게 만드시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너무나도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랍비들의 주석이 담긴 "엑소더스 랍바"(Exodus Rabbah)를 포함한 많은 고전적인 자료들에서는 이 질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직접 언급한 구절은 출애굽기 9장 12절이 처음이지만, 사실 출애굽기 본문에서는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거나 완강하게 하는 내용이 다섯 번이나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7장 13절과 출애굽기 22장에서는, 바로가 모세의 도전과 요구에 대답하는 과정 속에서, 그가 마음을 "완악하게"(단단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8장 11절, 출애굽기 15장과 28장에서는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강하게"(무겁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는 다섯 번이나 모세의 요청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였습니다. 다섯 번이나 바로는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그리고 완강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10세기와 11세기에 편찬된 미드라쉬에 포함된 엑소더스 랍바에서 '랍비 시몬 벤 라키쉬'(Rabbi Simon Ben Lakish)는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회개하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섯 번이나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목이 뻣뻣한 자이며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한 자다. 그래서바로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못하였다"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로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 스스로를 완전히 등을 돌려 버렸습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인 '랍비 모세 하임 루짜토'(Rabbi Moshe Chaim Luzzatto)는 "우리의 외부의 행동은 우리의 내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감정보다 행동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힘 안에 있는 것을 잘 활용한다면, 결국 우리는 우리의 힘에 없는 것까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글을 썼습니다.

   이 말은 양쪽 방향 모두에 있어서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려고 할 때, 우리의 내적인 삶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고, 우리의 선한 양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직면하는 고통을 눈으로 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며, 또한 고통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 고통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루자토가 암시한 바와 같이, 고통의 상황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해 버리고 나의 고통을 직면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된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탈무드의 랍비 엘레자르(Rabbi Elezar)가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성전이 파괴된 날로부터 기도의 문은 닫혀 있었다. 비록 기도의 문은 닫혔지만, 통곡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선한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 선한 일들이 우리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향하여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을 때, 기도의 문과 통곡의 문은 바로 그 곳에 있을 것이며, 우리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한 "애굽 왕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면,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혹은 완강하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다섯 번이나 주셨지만, 그 때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음성과 이스라엘의 고통에서 자신을 분리시켰습니다. 그 분리의 방법이 바로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완강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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