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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42 누가복음 설교

누가복음 7장 36절-50절 새로운 인생을 위하여, 수요기도회설교

by OTFreak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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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새로운 삶을 동경하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아마도 지금의 삶이 힘들거나 고달프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의 모습을 통하여, 매일 죽고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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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지

   위의 영상은, 지난 2010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애니메이션의 홍보 영상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주인공 스크루지는 돈 밖에 모르는 구두쇠입니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전날 오후부터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유령들을 만나고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된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 돈에 집착하게 된 자신의 어리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았고, 현재 돈이 부족해도 행복하게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미래에 자신의 쓸쓸한 무덤을 본 스크루지는, 회개하고 반성하고 감사하며 새로운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처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스크루지에게는 세 유령을 만난 그 밤이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예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부흥회 중에 회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감옥에 갇힌 재소자들 중에는, 감옥 속에서 읽던 성경으로 인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했기에 이 여인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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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의 여인은 사실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죄인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오는 것도, 그것도 예수님께서 계신 자리까지 나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용기 있게 예수님 앞에까지 왔습니다.

누가복음 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본문만을 볼 때는, 이 여인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흔히 우리가 창녀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분명하게 어떤 죄를 짓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어떤 죄이든지 이 여인이 죄인(하마르톨로스, ἀμαρτωλός)임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고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이적을 경험하고 말씀을 들으며 위로 받는 많은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주의 말씀에 위로 받고 울고 웃는 사람들 틈에 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죄인이었고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기에 예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승부수를 던진 여인은, 용기를 내어 주님 앞에 나갔습니다. 과거의 죄와의 긴 연결을 끊기 위해 용기를 내었고, 예수님 앞에 담대히 나갔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이 여인을 만나 주셨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과거의 연결 고리를 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인생,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까? 용기를 낼 수 있길 바랍니다. 용기를 가지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오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온 여인은, 주님 앞에서 한 없이 낮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여 주는 여인의 모습은 가장 낮은 종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여인이 보이는 행동, 발을 씻고 닦고 입맞추며 향유를 붓는 이 모든 행동은 사실, 예수님을 초대한 집 주인인 시몬 혹은 그의 종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손님을 초대했다면, 반드시 입구에서 발 씻을 물을 내어 오거나 종을 시켜서 발을 씻게 합니다. 또 주인이 손님에게 입 맞춤으로써 초대 받은 귀한 손님임을 증명합니다. 머리에 감람유를 부음으로써 고귀한 손님임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집 주인 시몬은 이 중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이 여인이 예수님께 모두 행하였습니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초대 받은 예수님이 대접 받지 못한 일들, 발을 씻고 닦고 입 맞추며 감람유를 붓는 일들이었고, 여인은 이 모든 일을 성실하고 겸손히 행하였습니다. 거들먹거리지도 않았고 대충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장 낮은 종의 자세로 모든 일을 눈물과 함께 하였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린 여인, 주님의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긴 이 여인은 주님의 은혜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앞에 겸손히 엎드릴 때, 주께서 높여 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용기,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십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새로운 일이 있습니까?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겸손히 엎드리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의 능력을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집주인 시몬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으며 겸손히 엎드리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알고 예수님을 알았던 이 여인은 주님 앞에 나아옴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누가복음 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죄인으로서의 인생을 멈추고, 이제는 용서 받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눈총과 비난에 가슴 아파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의 짐을 주님께서 모두 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등에 무거운 짐을 져 본 사람들은 잘 압니다. 누군가가 대신 짐을 져 주거나, 내가 진 짐의 절반만이라도 덜어 주면 얼마나 홀가분하고 마음이 편안한지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홀가분하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과거에 대한 실패의 두려움이 가득할 때,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또다시 실패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패의 두려움까지도 주님께 맡길 때, 주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고 우리는 새롭게 시작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자신이 살인자였으며 지금은 광야의 목동에 불과한 상황이었기에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괜히 남을 위해 나서다가 모든 것을 잃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온 과거를 떠올릴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갈 수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두려움까지 맡겼을 때, 담대하게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양을 치는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주의 능력을 확신할 때, 모세는 80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인생

   우리에게는 구원 받은 새로운 인생이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범죄하며 두려움과 염려, 답답함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의 죄 많은 여인,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던 여인이 용기를 가지고 겸손히 행하며 주의 능력을 확신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용기를 가지고 겸손히 주께 엎드려 기도합시다. 주의 능력과 도움을 구합시다. 주의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밤에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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