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의 언덕에서 천국 복음을 선포해 주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되며 핍박 당하는 성도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흔히 우리가 "산상설교" 혹은 "산상보훈"이라고 부르는 말씀입니다. 지난 7주 동안 산상수훈의 말씀들 중에 팔복설교를 해 왔고 오늘은 마지막 여덟번째 복에 대하여 정리하고 말씀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의미를 먼저 세 가지 단계로 정의를 내리고, 박해를 받을 때 우리가 취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정리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의미도 정리하여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 마태복음 5장 9절 제7복 화평케 하는 자, 팔복설교 산상설교
- 여호수아 1장 1절-9절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지다, 본문해설 및 설교준비자료
- 9월 1주 주일예배 대표기도문,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찬송 :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성경 : 마태복음 5장 10절-12절
설교 : 제8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사진] 봉오동 전투 영화 / 많은 독립군들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웠다, 생명을 잃기도 하며 다치기도 하였다 /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 : 홍범도 장군
[사진] 지난 8.15에 유해가 서거 78년만에 카자흐스탄에서 우리 나라로 돌아왔다. 새삼스럽게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의미 있는 광복절이었다. 어떠셨는가?
이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하였다. 왜냐하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점령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인력이 붙잡혀 가서 강제노동이나 군대에서 생명을 잃거나 다쳤다. 생산한 많은 곡물이나 생산품들을 수탈 당했다.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당했다.
삶의 자유를 잃었다. 이름을 바꿔야 했으며 우리의 관습을 빼앗겼다. 우리의 역사가 왜곡되었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 수치심으로 뒤바뀌었다. 무엇보다 신앙의 자유를 잃었다. 일제 강점 중반기를 지나면서, 서양 국가들도 우리 나라에서 철수하면서 교회가 불탔고 성도들이 핍박을 당했다. 신사 참배를 강요당했다.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해 핍박 당하고 죽임을 당하던 때와 같았다. 만일 지금 우리의 상황이 일제 강점기나 로마의 네로 시대처럼 신앙의 자유가 없는 현실이라면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은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 대한 축복이 기록된 말씀이다.
요한복음 19장의 실로암에서 눈을 씻고 눈을 뜨게 된 맹인 :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것과 안식일에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은 모든 일에 대하여 맹인을 추궁하다. 맹인은 예수님이 선지자라 대답하자, 그의 부모를 불러 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 때 부모는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요 9:21). ‘아들에게 가서 물어 보시오’라고 대답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출교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요 9:22). 출교는 곧 사회적 기반이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이다. 홀로 살아야 하며 목숨을 지키기가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맹인을 두 번째로 불러 추궁하였을 때, 맹인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요 9:33)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맹인을 쫓아 내었다(출교 하였다). 핍박 속에서, 출교의 협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맹인은 진짜 출교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 칭찬을 받았다(요 9:38, 41).
그러나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말은 소극적인 표현이다. 핍박에 올 때에만 박해를 받기 때문이다. 더욱 적극적인 표현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의로운 일을 하거나 올바른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9장에 율법을 잘 지킨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예수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질문한다. 그러자 십계명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이 사람은 자기가 다 지켜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 19:21)라고 말씀하시자, 이 사람이 부자였기에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장면이 끝날 무렵, 베드로가 예수님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천국을 소유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 곁에 있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소극적으로 의와 믿음을 지키며 박해를 받는 자보다 적극적으로 의로운 일을 찾아서 행하는 자에게 더 큰 상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적극적으로 의를 나타낼 수 있을까? 정직하고 공의롭게 살아감으로써 의를 나타낼 수 있다. 정직하고 공의롭게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는, 우상에게 절하거나 불의와 타협하는 일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 때문에 내 명예가 실추되어도 적극적으로 불의에 맞서는 것을 말한다. 거짓과 부정과 부패에 담대하게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핍박의 순간에 믿음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주를 위해 포기하는 삶을 말한다.
가장 적극적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신 분이 있다. 하나님의 공의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모든 죄와 불의를 제거하셨다.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자기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바울은 고백하였다. 이것이 바로 가장 적극적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모습이다.
이같이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 적극적으로 나아가 자신의 것을 다른 이들을 위해 나누어 주는 자, 한 발 더 들어가 자기 욕망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입니다.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는가? 그 믿음을 가졌는가? 내 것을 부족한 자들에게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자신이 있는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같이 박해가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찾아오는 갈등과 핍박과 곤란함 때문에 고민한다. 어떤 이들은 믿음을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거나, 의를 행하는 나를 바라보며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면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기뻐하다(카이로) : 마음 속에서부터 생겨나는 벅찬 기쁨
즐거워하다(아갈리아오) : 외부에서 찾아오는 환희와 행복
즉, 안팎의 기쁨,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이들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의 것이다.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한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더 이상 눈물이나 슬픔이 없는 나라를 말한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의미한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박해와 반대는 필수적이다. 12절에서도 선지자들이 이처럼 박해를 받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만일 나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 혹은 나의 믿음에 대하여 믿지 않는 자들 중에 반대하거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면, 내 믿음과 삶이 공의롭고 정직한 것인지 돌아 봐야만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거나 더 적극적으로 내가 정의를 지켜 나가거나, 십자가에 내 욕망을 못 박는 사람은, 비록 지금은 고통스럽고 괴롭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장차 주실 마음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기쁨과 외부에서 찾아오는 진정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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