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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42 누가복음 주석및해설

누가복음 23장 26절-43절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성경 배경 주석 정리

by 구약장이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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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26절-43절, 십자가로 가는 길

 

누가복음 23장 26절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사형수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했었습니다(십자가 중에 가로 부분). 그러나 본문의 경우, 시몬이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이유는, 자주 행해졌던 심한 구타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심한 구타를 당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레네는 현재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지역이며, 이 곳에는 대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몬'이라는 이름은 전형적인 유대인의 이름입니다. 지중해 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공동체에서 유월절 기간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로마 군인은 자신들의 물건을 옮기기 위하여 지나가는 유대인들 중에 아무나 붙잡고 운반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 명절 기간이었으며 이 때는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시몬은 농부로서 밭에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아마도 유월절 명절에 늦었던 것 같으며 구레네에서 이제 막 예루살렘에 도착했거나 아마도 임시로 머물던 예루살렘 외곽 지역에서 그날의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7절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군중들은 일반적으로 사형 집행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사형장에 모였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경건한 여성들은 처형되는 사람들을 애도하거나 희생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마약 성분의 음료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죄인이 처형을 당하여 죽은 후에는 공개적으로 죄인을 애도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유대인들의 경우, 로마에 의해 처형된 유대인 혁명가나 자신들의 동료들을 애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대에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들보다 더 극적으로 애도를 표현하곤 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8절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루살렘의 딸들"은 예루살렘의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심판에 대한 예언을 떠오르게 합니다(사 3:16). "너희 자신을 위해 애도하라"는 주님의 말씀 역시 예언적인 뉘앙스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3장 29절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녀들이 죽었을 때 어머니들이 하게 되는 깊은 한탄을 의미합니다. 요세푸스는 일부 어머니들은 주후 66-70년 사이에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였을 때, 성 안에 심한 기근과 식량 부족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때, 자신의 아이들을 식량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레 26:29; 신 28:53; 왕하 6:29).

 

누가복음 23장 30절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예언자들은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사용하신 것과 같은 이미지를 끔찍한 심판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호 10:8; 사 2:10, 19-21).

 

누가복음 23장 31절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와 달리 마른 나무는 불을 붙이기 쉽습니다. 중요한 점은 예수님은 정말로 혁명가가 아닌 "푸른 나무"라는 점입니다. 마른 나무 즉 혁명가에 대한 로마의 심판이 얼마나 더 클까요? 혹은 만일 로마인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함부로 살해한다면, 얼마나 더 많이 자기 자신을 파괴시키는 일이 될까요? 유대인 지도자들은 66년부터 70년 사이에 로마와도 싸웠지만 유대인들 자신들끼리도 심하게 싸웠습니다. 이 말은 어쩌면 단순히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더욱 가까이 오고 있다는 단순한 의미의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21:24, 29-30에 있는 나무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멸망을 넌지시 언급하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2절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한 번에 여러 명의 죄인들을 처형할 수 있다면, 로마 군인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덜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3절-43절, 십자가 위에서

 

누가복음 23장 33절-34절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복수에 대한 구약성경의 기도들의 전례(대하 24:22; 시 137:7-9; 렘 15:15; 17:18; 18:23; 20:12)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용서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처형을 당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의 죽음으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소서'라고 외쳤었지만,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형벌을 받을 책임을 진 자들의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일대기를 쓰는 작가들은 예수님과 다른 인물들을 비교하였으며, 누가는 그의 두번째 책인 사도행전에서 스데반(행 7:60)의 순교 장면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장면과 유사하도록 묘사하였습니다. 로마의 일반적인 관습에 의하면, 사형을 집행하는 군인들에게 희생자들의 옷을 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5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조롱과 수치는 십자가에 벌거벗겨진 채로 매달린 죄수에 대한 또다른 고통이었습니다. 고대의 작가들은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은 역설적인 내용, 즉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것과 지도자들이 사탄과 같이 말하는 두 가지의 내용들과 같은 역설적인 사실을 좋아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6절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신 포도주는 진통제의 역할과 함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음료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죄수들에게 베푸는 자비로운 행위들 중에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본문에서 신 포도주 역시 조롱의 일부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7절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군인들의 조롱 속에는 유대교 자체에 대한 로마인들의 냉소가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냉소는 로마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여전히 유대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8절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사형수는 일반적으로 라틴어로는 티툴루스(titulous)라고 불리는 죄명이 쓰인 것을 집행 장소로까지 지니고 갔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42절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비록 마가와는 달리 누가가 옆에 달린 행악자들을 반역자들로 명시하지 않고 "행악자들"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죄인들과 소외된 자들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누가는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유대 문헌들에는 일반적으로 낙원과 지옥을 대조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비록 유대교 문헌들들이 낙원의 위치(삼층천에 있거나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낙원에 대한 견해와 같이 지구의 경계선에 있다고 하였다)에 대한 논쟁을 벌여 왔었지만, 낙원은 분명히 죽은 이후 혹은 부활 후에 의인들이 거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이 죄인은 죽은 뒤에 의인들이 거하는 곳으로 바로 갔을 것입니다.



Keener, C. S. (1993).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New Testamen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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