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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42 누가복음 오늘의큐티

하나님나라를 놓친 종교인들 누가복음 11장 42절-54절, 큐티자료 오늘의말씀묵상

by OTFreak 2021.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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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칭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던 종교인들은, 사실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던 이들이지만, 사실은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심이 있어보기기만 했던 종교인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겉으로만 종교적이었던 이들의 결말에 대한 오늘의말씀묵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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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새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1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후렴]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받아 주소서
   2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주여 옵니다
   3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4 이 병든 맘을 고치려 이제 옵니다 큰 힘과 소망바라고 주여 옵니다
   5 나 바랄 것이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날 위해 죽임 당하심 믿고 옵니다

 

성경 : 누가복음 11장 42절-54절, 개역개정성경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1. 종교인 바리새인이 열심히 실천한 것은 무엇이며, 반면에 소홀히 한 것은 무엇입니까? (42)
   2. 또 다른 종교인 율법교사들이 열심히 한 것과 소홀히 한 것은 각각 무엇입니까? (46)

 

오늘의 말씀묵상

   종교인이 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는 종교적 계율을 가르침에 최선을 다한 종교인이었지만, 정작 하나님나라는 놓쳐버린 가련한 인생이었습니다.

 

 1.  사랑 없는 율법 (42-44)

   바리새인은 십일조로 대표되는 종교적 계율 준수에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나라를 얻지는 못했는데, 하나님나라의 대의인 공의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는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외양적 종교 생활에는 열심을 내었지만, 그래서 나름 열심 있는 종교인이었지만, 정작 그 마음에 하나님나라가 임하지 못했습니다. 허울뿐인 종교인들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할 수 있지만(43), 하나님의 눈에 그들은 시체가 썩어가는 무덤과 같았습니다 (44).

바리새인들이 보여준 사랑 없는 종교적 열심이 혹 내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 시다.

 

 2.  실천 없는 가르침 (45-48)

   또 한 부류의 허망한 종교인이 소개되는데, 율법교사들입니다. 누구보다 말씀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 자신은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에 대한 두려움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들은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6), 주님의 말씀 속에 그들을 향한, 껍데기 종교인들을 향한 분노와 심지어 역겨움이 느껴집니다.

율법교사들의 실천 없는 가르침이 혹 나의 모습은 아닌지 두려움으로 돌아 봅시다.

 

 3.  성찰 없는 답습 (49-54)

   허망한 종교인들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으니, 성찰이 없습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겸허한 자기 성찰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선배 종교인들에게서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그 와중에 참된 말씀의 사역자를 박해하기도 합니다. 구약의 거짓 종교인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했고,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심지어 예수님마저 박해합니다. 답습은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과 편리함을 주지만, 때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위대함은 자기 성찰에 있었습니다.

말씀 앞의 성찰없이 그저 덤덤하게 답습되고 있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오늘의 기도

   단지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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