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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61 베드로후서 설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베드로후서 3장 8절-13절 / 대강절 둘째주일 설교

by OTFreak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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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둘째주일설교 재림에 대하여

 

   대강절 두번째 주일을 맞아, 다시 오실 주님을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기다려야함을 대강절둘째주일설교를 통하여 전하고자 합니다.

 

성경 : 베드로후서 3:8-13

설교 :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대강절 둘째 주일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들어가며

   30여년 전, 다미선교회 : 10월 28일 휴거,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거짓임이 밝혀져 조롱 받음. 당연한 조롱.

   지금의 교회 :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발생과 함께, 공포심과 분노를 교회에 돌리려고 하는 부분도 존재

   2천여년 전 초대 교회 : 외부가 아닌 교회 내부의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을 조롱, "재림은 없다"라고 조롱 : 이 조롱에 대해 베드로는, 주의 재림은 반드시 있다라고 선포하다.

   우리 주님께서 베들레헴에 나실 때, 유대인들을 비롯한 온 인류는 죄의 문제로 신음하고 있었다. 전쟁과 난리 등으로 한시도 평안이 없는 이들, 신앙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우리 주님은 오셔서 위로하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승천하신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지난 주일 말씀이었던 사도행전 1:11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주의 재림을 조롱하는 거짓교사들과 이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성도들에게

1. 하나님은 영원하시다(8절) 라고 선포한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개념은 다르다. 따라서 인간의 계산법으로 주의 재림을 생각하는 것은 틀린 말이 된다. 인간의 시간은 흘러가는 시간이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는 그분의 역사하심의 시간,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다.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 시간 위에 계신 분이시다.

   인간의 과학의 발달로 시간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임의로 정하고 시계를 통하여 11시, 12시 이렇게 부른다. 하지만 시계가 11시를 가리킨다해서, 정확하게 11시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시간은 사람들끼리의 약속일 뿐, 정확한 의미와 기준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시간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해석할 수 없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시간 위에 계시며 시간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의 지식으로는 설명이나 이해가 불가능한 시간을 넘어서신 분이십니다. 이처럼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께서는

2. 도둑같이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10절)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의 날, 재림이 도둑같이 온다는 말은 아무도 그 때를 짐작하거나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선포한다.

   하지만 주의 재림이 계속 늦춰지고 있는 이유 : 단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서

마 24: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나 도둑같이 다시 오실 것이다. 2천년 전, 베들레헴에도 예수님은 도둑같이 갑자기 오셨다. 모두가 잠든 밤, 별을 보고 먼 길을 나선 동방박사 세 사람과,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만이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도둑같이 갑자기 임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오실 주님 역시 갑자기 임하신다. 그 때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준비할 수 없다. 그러면 갑자기 주님 오실 때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11절) 주님 오심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거룩한 : 하기오스(ἅγιος) : 존경하는 마음으로, 구약에서는 카도쉬(קדוש) 즉 세상과 구별되는

   경건함 :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 : 하나님을 경험함으로써 알게 되는 깊은 믿음, 이익을 따른 것이 아닌 믿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는,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존경하는 자세로 주와 동행하며,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굳은 확신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거룩하고 경건한 삶이어야 한다.

   2천년 전, 큰 별이 만왕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표시임을 굳게 믿고 별 하나만 보고 따라 왔던 동방박사들을 보라. 누군가는 그들이 하늘에 흔한 별들 중에 하나를 보고 그것을 따라간다고 조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조롱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확신과 믿음으로 별을 따라 갔다.

   세상은 믿음에 대해, 교회에 대해 비난과 조롱을 일삼고 있다.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고 성도들이 경건하지 못한 까닭과 함께, 그만큼 세상이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뜻이 된다. 마치 2천년 전, 헤롯 왕이나 신하들이나 유대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주님을 사모하였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성전에서 기도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렸던 시므온이나 안나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제 우리 때에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

   2천여년 전,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큰 별을 바라보며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왔던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불신과 조롱으로 가득 찬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2천여년 전, 주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와 말씀을 사모하며 살았던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두렵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믿음을 지킴으로써,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통하여 주님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2천여년 전,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님 오심을 기다리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지금 우리의 상황을 돌아봅니다. 주님 다시 오심에는 관심 없고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하늘을 사모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감화시키는 설교말씀이 되길 기도하며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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