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의 저자가 누구냐를 두고 오랜 기간 동안 논란이 있어 왔다. 하지만 교부들과 적지 않은 현대 신약 학자들은 AD 64년경에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하기 직전에 현재 베드로전서라고 알려진 문서를 기록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베드로는 실루아노를 자신의 필경사(筆耕土)나 서기로 썼던 것 같고, 편지를 쓴 장소는 아마 로마였을 것이다(벧전 5:12-13).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폴리캅(Polycarp), 파피아스 (Papias)가 베드로의 저작을 인정하는 초기 증언자들이다.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벧전 1:1) 건넨 인사말을 통해 소아시아 북부에 사는 사람들이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 살던 로마인들은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하는 기독교 운동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오해는 점점 깊어져 핍박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 존경할만한 일이고, 더 나아가 그 모든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상기시킨다(1:6-7; 2:20-23; 3:14-18). 특히 베드로는 초기 그리스도인 가운데 상당수가 새로운 회심자들이었던(2:2) 터라 복음과 말씀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자 애를 썼다(1:13-16).
베드로전서를 받아 읽는 사람들은, 로마제국에 살면서도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신실한 교인으로서 처신해야 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고 고통이 따랐다. 어떻게 하면 로마 문화와 그리스도의 왕국 양쪽 모두에 거하면서 안전하게, 건실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두 세계는 그 관점이나 충성의 성격 그리고 왕(王)이 달랐다..
베드로는 복수하려는 심리가 사회를 얼마나 긴장시키고, 사람 사이에 얼마나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들어 내는지 경험했었다. 그는 로마의 정치적, 군사적 권력에 휘둘리는 유대인의 사회에서 성장했다. 그러다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서 그는 성령의 인도 아래 훨씬 더 넓고 다원화된 세계로 들어섰다. 복음 자체가 베드로와 그의 신앙 공동체를 로마 문화 속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로마 문화의 가치는 그리스도 왕국의 가치와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예수님이 보내신 성 령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새롭고 독특한 공동체, 곧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 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벧전 2:9) 되게 하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편지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말한다.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그들에게 신실하고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익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로마 세계를 향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증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스도인 순례자들에게 보내는 베드로전서에는 영성 개발에 관한 세 가지 주제가 등장한다. 첫째는 현재 유랑 중에 있는 순례자 공동체로서의 교회이고, 둘째는 유랑 중에 있는 교회의 상황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그리스도 고난 이다. 마지막은 순교자 공동체에게 요구되는 삶의 기술(skills)과 관점 이다.
유랑 중에 있는 공동체로서의 교회
베드로는 편지의 수신자들이 순례자 공동체, 곧 본향을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은 세상에 사는 거류민과 나그네 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1:1; 2:11), 편지의 수신자들이 직면한 광야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메마른 광야도 아니었고, 니느웨나 바벨론 같은 대도시의 영적 불모지도 아니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권력을 추구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로마제국의 한복판이었다.
베드로는 그들이 고향을 향해 여행하는 동안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다만 로마 안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기 위해서는 일련의 자세와 기술 그리고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훈련받지 않는다면 로마의 관점과 행습(行習)의 압력에 눌려 곧 이방적인 주형(鑄型)틀 속에 내던져진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고난의 패턴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과 후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오해와 적대감 그리고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심한 핍박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교회가 본향을 향하여 가는 동안 이 땅에서 왜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오해받고, 또 부당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으셨다(2:23).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4:1-2). 이것이 새 왕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본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
베드로는 당시의 첫 독자들과 후에 독자가 될 우리에게 두 시대 사이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람(要覽)을 제공해 준다. 우리는 아직도,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왕의 가치를 오해하고 격하시키며 반대하는 시대 한가운데 살고 있다. 종종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본향을 그리워하면서 여정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너무 길다고도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본향을 향해 가면서 신실함과 용기와 인내와 사랑의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고난이 우리의 갈 길에 이정표임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삶을 통해 좋은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순례 공동체를 위한 삶의 기술과 관점
순례자들이 여행하면서 만나는 생소하고 위험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베드로는 세 가지 삶의 기술(技術)과 관점에 대해 가르친다.
첫째, 유랑 중에 있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훈련하라고 권한다. 고난을 견뎌 내며 본향을 향해 가고, 마귀의 농간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복음의 진리를 마음에 깊고 또렷하게 담아 그 말씀이 행하시는 능력대로 따라야 한다. 전투 지역에서는 희미하고 조악(粗惡)한 사고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행을 위해 너희 마음을 준비하라. 자신을 훈련하라 (1:13; 4:7; 5:8-9).
둘째, 유랑 중에 있는 교회는 그들이 통과해야 할 땅에 거하고 있는 주민들을 건드리거나 혼란을 일으키거나 적대시하는 등의 미련한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계한다(2:12; 3:14-16; 4:3-5) 권위와 순복(順服)에 대한 교훈도 같은 맥락에서 부차적인 주제로 등장한다. 권위에 혼란을 주는 일은 로마 당국을 예민하게 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어려움을 자초할 뿐이다(2:13-17; 5:5).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떤 때 반문화(反文化)적 신앙 실천으로 용감하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그 이유는 베드로가 왜 권위와 순복에 대해 언급해야 했는지 문화적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셋째,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이 거룩하고 순종하기를 바라시며 순결의 결실인 사랑으로 살라고 부르신다(1:22; 4:8).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우리를 위해 좋은 모범이 되어 주셨 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권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 전 1:15-16).
만일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가 자신의 왕 되신 분을 닮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 밖의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은 통치자가 바로 교회의 왕이시다. 고난은 깨끗한 양심과 정화(淨化)된 믿음이라는 행복한 결과를 낳는다(1:6-7; 3:16). 물론 반역하고 불순종하고 불경한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난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시느라 견디셔야 했던 고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2:17-18; 4:15, 19).
- 크리스토퍼 A. 홀(Christopher A. Hall)
베드로전서 연대기
- AD 30년 : 그리스도의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스데반의 순교
- AD 32년 : 사울의 다메섹 회심
- AD 47-48년 :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 AD 50-52년 :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 AD 53-58년 :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 AD 58년 : 바울의 체포
- AD 61년 : 바울의 로마 투옥
- AD 62년 : 주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 AD 64년 : 네로의 박해
- AD 67년 : 바울의 순교
- AD 68년 : 베드로의 순교
- AD 70년 : 예루살렘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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