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후서의 전체 구조
I. 설명: 바울이 오지 않고 글을 쓴 이유(1:1–2:13)
1. 하나님과 바울(1:1–11)
2. 고린도 교인들의 비난에 대한 답변(1:12–22)
3. 바울이 계획을 바꾼 이유(1:23–2:13)
II. 새로운 언약에 대한 사역(2:14–7:4)
4. 고린도 교인들의 반대(2:14–3:6)
5.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3:7–18)
6. 예수의 얼굴(4:1–6)
7. 영원한 영광(4:7–18)
8. 죽음과 심판(5:1–10)
9. 화해의 사역(5:11–21)
10. 하나님의 사역자(5:20–6:10)
11.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호소(6:11–7:4)
III. 마케도니아의 바울: 고린도에서 가져온 디도의 소식(7:5–9:15)
12. 고린도에서 가져온 디도의 소식: '슬픈 편지'(7:5–16)
13. 고린도에서 가져온 디도의 소식: 모음들(8:1–9:15)
IV. 바울의 세 번째 고린도 방문(10:1–13:14)
14. 비난에 대한 방어(10:1–11:15)
15. 연약한 어리석은 자(11:16–13:14)
■ 고린도후서에 대한 소개
1. 바울과 고린도 교인
a. 바울의 고린도 방문과 편지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관계는 7년 동안 이어졌었습니다. 주후 50-52년 동안, 그는 고린도에서 1년 반 동안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5년 혹은 56년 어느 때에 그는 교회의 긴급 징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소위 '고통스러운 방문'(고후 13:2)을 두 번째로 방문했었습니다. 56년 혹은 57년에 그는 고린도로 세 번째(13:1) 방문하여 3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머물렀습니다.
바울은 두 번째 고린도 방문 후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에서 온 고린도후서를 썼으며, 마지막 방문인 세 번째 방문에 대해 교회가 준비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린도후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바울은 에게 해(아시아, 마케도니아, 아카야)를 둘러싸고 있는 지방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자신의 사역을 로마제국의 서쪽 끝인 스페인에서 새로운 사역을 감당하기로 결정하였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와 바울이 제안한 고별 방문은 바울의 전체적인 선교 계획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b.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의 문체 차이
바울이 세운 교회 중 코린트 교회가 가장 까다로운 교회임이 분명합니다. 그들 사이와 바울과의 관계에서 드러난 그들의 문제들 때문에 바울은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는 두 편의 장문의 편지들을 썼으며, 우리가 현재는 볼 수 없는 두 편의 다른 편지들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에게 바울이 남긴 두 편지들의 정서적인 문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는 행동의 주요 문제(예: 분열, 느슨한 도덕적 기준, 소송, 가난하거나 덜 부유한 구성원들에 대한 불친절)와 교리(예: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의심)에 대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바울의 능력과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증거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객관적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였으며, 감정을 전체적으로 잘 조절하여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편지는 첫 번째 편지에 비해 세심한 배열이 부족하고, 더구나 저자의 극단적인 감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뻐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7:4)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6:12)과 함께 바울에 대해 '참아야 한다'(11:1)라고 생각하는 것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바울에 대한 각종 비판과 비난, 즉 세속적이고 결단력이 부족한 것, 직접 오지 않고 편지만 써서 보낸다는 도덕적인 비겁함(1:23), 내적인 능력이 부족한 것(4:16), 열정이 부족하고 신학적으로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4:2)과 사기꾼처럼 생각되었다는 점(6:8), 부패하고 성도들을 착취하는 것 같은 점(7:2) 등의 문제가 바울에게 있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같이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10:7)인 것 같지만, 같이 있지 않을 때에는 말을 잘 못하고 편지에만 힘이 있으며(11:1, 10, 11:6, 21), 심지어 미친 것처럼 바보 같으며, 관습 어기거나 재정지원을 거절할 때 사기꾼처럼 보이며(11:7, 12:13–16), 사역의 신비롭고 기적적인 자격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12:1, 11–12).
그래서 고린도후서의 전반에 걸쳐 바울은 그의 교리와 사역, 그리고 그의 인격을 변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 것(6:11–13)과 그의 사도로서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3:1–3; 12:11–13)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감정들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는 강하고 자신감 있는 방식으로 끝나는데,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하나님께서 주신 회복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c. 고린도 교인들은 왜 바울에 대해 불평하는 마음을 가졌을까?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고린도 성도들의 불만과 비난를 설명하기 위해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일반적으로는,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에게 보낸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내용들처럼, 바울에 대한 비난을 가지게 된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 관습의 문제'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남부 그리스인들인 고린도 교인들과의 관계가 한동안 어색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고린도후서보다 2년 정도 앞서 쓴 고린도전서(54년 또는 55년)는 모든 고린도인들이 바울 사도로 인정한 것은 아니며, 일부는 아볼로의 사역을, 다른 일부는 베드로의 사역을 선호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보다 최근에 고린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은 원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에 가장 중요한 제자인 이스라엘 땅 출신인 베드로에게 끌렸을 것입니다. 반면에 교육을 받은 고린도 성도들은 아마도 재능 있는 웅변가 아볼로에 끌렸을 것입니다. 지성과 세련된 담론에 매료된 아볼로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말하기 능력이 아마추어같고 육체 노동을 하였기에, 미사여구와 웅변가치가 높은 시대에 관심을 끌만큼 인상적이지 않게 보였을 것입니다.
■ 더 읽으면 도움이 되는 글들
- 2020/07/10 - [나의 공부/성경 각 권의 개요] - 47. 고린도후서 개요
- 2020/09/27 - [나의 공부/고린도후서 해설] - 매일성경 : 고린도후서의 구조와 배경 (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