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은 마가복음 14:43-52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가룟 유다가 이끄는 무리들이 강도를 잡는 것처럼 각종 무기를 들고서 예수님을 체포하러 겟세마네 동산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순순히 체포되시며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큐티하고 10분 새벽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4장 43절-52절,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신 예수님
서론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을 남긴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아테네의 법률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민주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믿는 철학적 신념과 아테네의 법률이 충돌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따르다가 아테네의 법률을 어기고 말았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부당한 부분이 있지만,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악법을 따르며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강도처럼 체포되신 것은 부끄러운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신 것이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4:43-52의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의 생애 가운데서 가장 비정하고 회의에 찼던 한 부분들을 접하게 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며(빌 2:6),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고(계 3:14), 아버지와 하나이신(요 10:30) 예수님께서 사악한 죄인이나 흉악범과도 같이 취급되시는 광경을 보면서 인류의 죄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께서 붙잡히신 장면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만 하는 사실은 무엇일까요?
첫째, 가룟 유다, 예수님을 배반하다
고난과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가슴을 아프게 만든 것은 사랑하는 제자 유다의 배신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 나누었던 고락, 그 모든 것이 배신이라는 쓴 열매로 돌아온 것입니다. 43절입니다.
마가복음 14: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님은 처음부터 유다의 배신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를 믿고 사랑하며 끝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죄악으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다의 배신은 인간의 연약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는 사실, 인간은 언제든지 변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하지만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의 사랑을 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희생의 제물로 승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에게 용서와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 속에서 유혹과 시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믿고 의의 길을 걷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끝까지 달음질을 잘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강도로 취급 당하다
검과 몽둥이를 든 무리가 예수를 잡으러 향했습니다. 마치 흉악한 강도를 잡는 듯한 기세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위험한 인물, 민중을 선동하는 반란자로 여겼습니다. 48절입니다.
마가복음 14: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만약 그들 중 몇 명이라도 예수를 진정으로 알았다면, 무릎을 꿇고 그의 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릇된 길을 제시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강도가 아닌 구세주였습니다. 그는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하고 그를 핍박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진실을 먼저 알아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편견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잘못 이해받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한 편견과 오해를 버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세상에 진정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체포: 예언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구약 성경에 예언된 운명의 완성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의 말씀은 수세기 전부터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냈고, 그리스도의 체포는 이러한 예언의 완성을 향한 필수적인 단계였습니다. 49절입니다.
마가복음 14: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고난을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체포될 때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 순종하셨다는 사실과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여러 번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4절에서 예수님은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며,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질 속죄를 예고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언하신 구원의 완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과 희생은 인류의 죄를 속죄하고 구원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체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겟네마네 동산에서 가룟 유다의 배반과 무리들에게 체포되신 것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예언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신 예수님이 온전히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나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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