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2장 1절-20절입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작성한 "구유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 설교는 예수님의 탄생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정치적 억압, 사회적 소외, 영적 빈곤이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우리의 실천적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누가복음 2장 1절-20절, 구유에서부터 시작된 은혜
현대판 구유의 의미
언젠가 어린이 성경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크리스마스 연극을 준비하면서 베들레헴의 여관 주인 역할을 맡은 한 아이가 대본과 다르게 즉흥적으로 연기했습니다. 임신한 마리아와 지친 요셉이 여관 문을 두드리자, 그 아이는 갑자기 "잠깐만요! 저희 지하 주차장이 비어있어요!"라고 외쳤죠. 당황한 선생님들과 웃음을 터뜨린 관객들 사이에서, 그 아이는 진지하게 "예수님은 우리 교회 주차장에서라도 태어나실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순수한 아이의 마음에서 나온 이 말은,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전해주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 어떤 공간을 내어드리고 있는가요?
세 겹의 고통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
본문에는 세 가지 큰 고통이 드러납니다. 첫째는 정치적 억압입니다. 로마 제국의 인구조사령은 피지배민족에 대한 통제와 수탈의 수단이었습니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명령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강제로 중단하고 고향으로 갔으며, 긴 여정에 따른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사회적 외면입니다. 임신한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관마다 문을 두드렸지만, 어느 곳에서도 이들은 환대를 받거나 안식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구유가 있는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구원의 사건이 세상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셋째는 영적 고통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정치적 해방자였고, 찬란한 영광 중에 오실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 가축의 먹이 통에 누우셨습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은 인간의 기대와 하나님의 계획 사이의 깊은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베들레헴을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본문과 유사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정치적 경제적 강자들의 횡포는 여전합니다. 거대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약자들의 삶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빈부격차, 청년실업, 노인빈곤 등은 현대판 '호적 등록령'처럼 많은 이들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둘째로, 사회적 소외와 단절이 심각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 SNS를 통한 피상적 관계의 확대,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고독과 소외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 장애인, 이주민들은 현대 사회에서 '여관을 찾지 못한' 요셉과 마리아처럼 거절됨과 차별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영적 빈곤이 만연합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성과주의는 많은 이들의 영혼을 메마르게 합니다. 현대인들은 성공, 부, 명예와 같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내면의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공허함은 당시 화려한 메시아를 기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구유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어둠과 고통 속에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은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겸손의 증거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천대받던 목자들을 첫 번째 증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회적 지위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의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에 대한 은총을 동시에 선포합니다.
이러한 은혜는 오늘날에도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적 고통과 영적 갈망을 이해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구원을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단순한 위로나 일시적 도움이 아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참 평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 본 구유의 의미
비록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다루고 있지만, 예수님의 전체 생애와 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평생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후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은 이미 이러한 섬김의 정신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이 초청은 목자들을 첫 증인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들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한 권능으로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암흑 같은 시대에 빛이 되었듯이, 하나님은 현대사회의 어둠 속에서도 구원의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세 가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목자들처럼 즉각적인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소식을 듣자마자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속히 응답해야 합니다.
둘째, 마리아처럼 깊은 묵상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일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깊이 묵상하며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천사들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즉시 순종하며 달려갑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인간의 몸으로 구유에 오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선택하신 그 낮은 자리를 기억합니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겸손과 사랑을 묵상합니다. 우리도 목자들처럼 순종하는 마음으로, 마리아처럼 깊이 생각하는 자세로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이 시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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