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장 33절,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리리라" 설교입니다. 현세의 삶에 집착하면 영생을 잃고,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면 참된 생명을 얻습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며 세상 미련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은혜와 지혜를 나누는 새벽예배 메시지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37절, 영생을 선택하라
서론
오늘 이 새벽 시간에도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리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른 새벽, 세상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여 나오신 여러분의 발걸음 위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누가복음 17장 20절부터 37절까지이며, 특별히 33절 말씀을 중심으로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리리라, 영생을 선택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어떻게든 그 생명을 안전하게 보전하며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우리의 삶과 생명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바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이러한 본능적인 생각과는 정반대 되는 듯한, 매우 역설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33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이 말씀은 언뜻 들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목숨을 지키려 하면 잃고, 잃으면 산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이 말씀이 어떤 상황 속에서 주어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먼저 20절과 21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할 정치적이고 가시적인 왕국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여기서 '너희 안에'(entos hymon)라는 말은 '너희 가운데' 또는 '너희 손이 미치는 곳에'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먼 미래의 어떤 시점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곳에, 그리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 안에 이미 임재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영적인 통치, 그것이 바로 현재적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어서 제자들에게 다른 관점의 하나님 나라, 즉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22절부터는 '인자의 날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이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해도 따라가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왜냐하면 인자의 날, 즉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은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여 저쪽까지 비치는 것처럼(24절), 아주 갑작스럽고 명백하게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26-30절). 노아 시대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킬 때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일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롯 시대의 소돔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상적인 삶에 몰두하다가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키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임박한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눈앞의 삶에만 안주했던 것입니다.
둘째, 어떤 자세로 우리가 살아야 할까요
이 두 가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 즉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갑작스럽게 임할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바로 여기서 오늘 본문의 핵심적인 경고와 권면이 나옵니다.
31절과 3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마지막 심판의 날이 갑자기 임했을 때, 지붕 위에 있다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챙기러 내려가거나, 밭에서 일하다가 뒤에 두고 온 것을 아쉬워하며 돌아보는 것은 치명적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 때문입니다.
특히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천사의 인도를 받아 멸망하는 소돔성을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분명한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는 왜 돌아보았을까요? 아마도 소돔에 두고 온 집과 재산, 익숙했던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어 구원의 길에서 영원히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도 혹시 버리지 못하는 '소돔'은 없습니까? 세상의 부귀영화, 안락한 삶, 남들의 인정과 칭찬, 혹은 과거의 영광이나 상처에 대한 집착이 혹시 우리의 영적인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롯의 아내처럼 영적인 소금 기둥이 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셋째, 잃는 자는 살리리라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우리는 33절 말씀,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목숨'(헬라어 '프시케')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 영혼, 삶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땅에서의 삶, 이 세상의 가치,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태도를 말합니다. 어떻게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편안하게 살고, 더 높아지려는 세상적인 야망에 붙들려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자신의 세상적인 생명과 자아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은 결국 가장 소중한 것,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아닌, 썩어 없어질 세상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누구일까요?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과 야망, 안락함,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각오가 된 사람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어리석게 모든 것을 '잃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살리게 될 것'(헬라어 '조오고네오' - 생명을 보존하다, 살리다)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 예를 들어 순교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내 뜻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내 유익을 구할 것인가,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구할 것인가? 세상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이 모든 선택 속에서 기꺼이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르는 삶, 그것이 바로 '자기 목숨을 잃는' 삶이며, 영생을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의 것들을 붙잡다가 영원을 놓치겠느냐? 아니면 비록 세상에서는 손해보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나를 위해 기꺼이 네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겠느냐?"
롯의 아내처럼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시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맙시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삶의 주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한번 고백하며, 썩어질 육신의 생명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거룩한 결단을 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우리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이 길을 온전히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새벽마다, 매 순간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 연약한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저의 옛사람은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의 가치를 따라 살게 하시고, '잃음'을 통해 참된 '얻음'의 신비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님 다시 오시는 그 영광의 날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으며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새벽, 저희를 깨우시고 주님의 전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리리라'는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시옵소서.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생명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나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 '잃음'을 통해 참된 생명을 '얻는'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게 하시고,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 영생의 면류관을 받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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