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초창기 기독교의 구심점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졌는지 그리고 바울이 갈라디아서 6:15에 기록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하나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끌어 가시는지 보여 준다.
목차
사도행전 1 장 앞부분에서 밝히는 것처럼 사도행전은 한 권으로 기록된 문서 가운데 일종의 하편이라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은 동일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누가복음의 이야기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누가복음 서론을 보라). 누가는 사도행전 1:1-5에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야기, 곧 이스라엘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한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과 그들의 사명,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예수님에 대해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눅 2:32) 했던 시므온의 예언은 사도행전에서 성취된다.
사도행전 기록자
사도행전에는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전승이 없다고 여기는 학자들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사도행전 2-5장은 예루살렘 전승 자료를, 6-15장은 안디옥 전승 자료를 그리고 13-28장은 바울 전승 자료를 배경으로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16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우리는 전통적으로 저자 누가의 자료에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누가는 70인 역본을 하나의 모델로 해서 화려한 헬라어 문체를 드러내 준다. 누가는 저자로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기 전에 자신이 기록하고자 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준비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예수님의 삶과 초대교회의 역사가 병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듯이(눅 3:21-22), 초대교회도 세례 사건으로 공식적인 출범을 한다(행 2:1-41).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치유자로 그린다(눅 4:31-44).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치유의 은사를 보여 준다(행 3:1-10). 또한 성령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고(눅 1:35),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다(눅 3:22). 성령께서 그 영혼에서 떠나가심으로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다(눅 23:46). 이와 유사 하게 제자들은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지시하심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으며(행 1:4, 8), 성령께서 오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고(행: 1-4),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회의 사역이 진행되었다(행4:31; 5:32; 8:15, 39; 9:17; 10:44-48; 13:2; 16:6).
사도행전의 문학 장르
사도행전은 문학 장르상 역사서에 속한다. 그러나 현대 역사가 아닌 고대 헬라 역사 형식을 따른다. 신약성경의 저자 가운데 특히 누가는 당대의 역사적 사건과 사람에 관심을 기울인다(참조, 눅 2:1-3; 행 12:1, 20-23; 18:2-3, 12). 누가는 이 세상에 실재하는 사람들과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독자들에게 드러내기를 원했다. 누가가 세속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그가 신학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알 수 있다. 누가에게 있어 복음은 모든 열방을 위한 것이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제한이 없음을 의미한다. 누가는 고전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와 헬라의 문학적 장치, 예를 들어 서문과 여행 기사 등을 모델로 하는 독특한 문학적 양식을 사용한다. 헬라 역사가들은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고자 연설들을 이야기에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누가는 이야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4개의 설교들을 사도행전에 구성했다. 사도행전의 주요 인물들이 행하는 설교들은 전체 이야기의 통찰을 전달하고, 사건의 의미를 풀어내며, 설교자 자신의 특징을 설명하고, 주변 이야기의 일반적인 설명을 이끌어 낸다. 누가는 저자로서 자신의 이야기와 사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설교들을 사용한다. 이같은 이야기 기법과 이와 유사한 헬라 문학 양식은 사도행전의 주된 독자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이를 통해 이방인들은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 담긴 복음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도행전의 기록 시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긴밀한 연결성을 고려할 때,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같은 시기에 기록된 것이 틀림없다. 기록 연도는 AD 60년대 초반(베스도가 행정관으로 집권한 이후)부터 AD 100년경까지로 의견이 다양하지만, 대략 AD 85년경으로 보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누가의 저작 의도는 분명하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되는 이야기다. 누가는 복음의 확장이 하나님의 역사이지 인간의 일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사도행전의 이야기 안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천사가 나타나 행동을 지시한다(8:26; 12:7). 또한 누가복음 1-2장의 사가랴와 마리아처럼, 등장인물들은 하늘의 비전을 통해 인도하심을 받는다(10:1-6; 16:9-10). 이를 통해 누가는 기독교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시는 것임을 말해 준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을 지향함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모두 동일하게 헬라인 데오빌로(또는 일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헌정함으로써 비유대인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고 있다. 사도행전에는 일종의 부수적인 내용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기독교와 로마 정부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저자의 신념이 나타난다. 사도행전의 또 다른 의도는 기독교가 헬라인과 로마인들에게 국가를 전복하려는 어떤 세력이 아니라,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종교임을 확신시켜 주려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방인의 세계까지 품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실제로 역사 가운데 그분이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다시 창조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사도행전의 사건들이 진행되어 가면서 성취된다.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 되는 것은 누가에게 매우 특별한 관심사였다. 헬라와 유대의 문화적 간격은 하나의 큰 장벽이었다. 독자들은 누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면서, 베드로가 유대인의 음식 규례와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로 인해 갈등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유대인의 할례 의식, 유대인의 예배와 제의적 삶에서도 이런 관심이 드러난다. 사도행전의 중심부에 예루살렘 회의가 나타난다(15장). 이 기사는 온 교회 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형성하기 위해 합의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새로운 환경 안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전통을 해석하는 교회의 노력이 나타난다. 누가는 기독교가 정체된 전통이 아니며, 유대교의 기원에 뿌리를 둔 초기 기독교의 연장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 맞춰 변화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는 다양한 문화상황 속에서 전파되고 받아들여지는 폭발적인 복음의 능력을 사도행전 전반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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