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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내 마음대로 공부하기

하나님께서 정말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까?

by OTFreak 202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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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9:12의 말씀과도 같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보내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바로가 스스로 완악한 마음을 먹은 것일까요? 후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보게 되어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열 가지 재앙들에 대한 전통적인 유대교적 해석과 현재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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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여러 책들 가운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뿐만 아니라 요한일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괜히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거부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위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한 성경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성경의 주인공이 되는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 그리스도 역시 모순덩어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이어서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머지 민족들을 하나님께서 가차없이 멸망시키신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유 없이 내려지는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고 그 속의 말씀들을 곰곰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에 나타난 진리를 가볍게 여기거나 혹은 부정하기 위하여 "성경은 모순으로 가득 찬 책"이라고 평가합니다. 특히 이들은 복음서를 통하여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려고 노력합니다. 마태나 마가, 누가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거나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신 말씀과 보이신 행동들을 각자의 독특한 관점에서 복음서를 썼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의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과 세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관점과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각자의 신앙 고백의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각자의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보기 이전에,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는가?

   출애굽기에는 애굽의 왕과 모세가 대면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모세는 "내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에게 전합니다. 직장의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직장의 상사는 그 직원을 해고하기보다 칭찬하고 격려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의 상태였기 때문에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며 강물을 피로 바꾸었으며, 애굽 땅 전역에 각종 해충이 들끓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였습니다. 열 가지 재앙들 중에 마지막 재앙인 애굽인들의 "장자의 죽음" 이후, 바로는 이스라엘의 장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출애굽기 11:5,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바로는 자신의 왕위를 이을 장자가 죽자,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냅니다.

출애굽기 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하지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간 후에도 여전히 그들을 다시 붙잡아 오려는 교만과 무지함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교만과 무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재앙이 임하도록 하였을 때,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등장합니다. 그 어려운 말이란, 출애굽기 9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셨다는 부분입니다.

출애굽기 9: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이 말씀을 두고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전히 지배하고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바로의 마음을 지배하시고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던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하여, 먼저 약간의 언어와 문화, 글쓰기 방법 등에 대해 우리가 이해해야만 합니다.

 

문맥 이해하기

   우리는 매우 화가 났을 때, "열 받는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만, 외국인의 경우에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영어로, 누군가를 밖으로 데리가 나가서 일하고 싶을 때, "Hit the streets"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말의 의미대로, 밖에 나가서 도로를 주먹으로 마구 쳐야 한다는 뜻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라고 기록하였다면, 하나님께서 바로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만, 바로는 당시 세계 최강국들 중의 하나인 애굽의 왕이었으며,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문맥 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과 같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결정들은 모두 우리가 선택한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6장 6절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6: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애굽인인 바로의 문화와 문서들, 그리고 속담을 이해한 이스라엘 사람인 사무엘은, 마음을 완악하게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다른 사람의 외모만을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길 원하시며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길 간구하기 전까지는 우리를 통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할 때 우리는 재앙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항하는 사람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현혹되지 말라!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에 모순이 가득차 있다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이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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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위의 글에서는 사무엘상 6:6을 근거로 하여, 바로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는 "וַיְחַזֵּק יְהוָה אֶת־לֵב פַּרְעֹה וְלֹא שָׁמַע אֲלֵהֶם כַּאֲשֶׁר דִּבֶּר יְהוָה אֶל־מֹשֶׁה׃ ס"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문장 그대로의 해석은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과 같습니다. 따라서 저의 입장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라는 원문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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