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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이번 주의 교회 절기

창세기 17장 1절-7절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사순절 둘째 주일 설교 – 교회력

by OTFreak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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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완전하신 나의 주(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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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17장 1절-7절
설교 :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시다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아브라함은, 첫째 아들인 이스마엘을 낳은 이후에 꿈 같은 나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이 없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보던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품에 안고서는 하나님과의 대화의 장면이 창세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계획을 통하여 낳은 자녀인 이스마엘을 통하여 만족을 누리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3년만에 나타나셔서 명령하신 내용이 무엇인가요? “완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완전하라”는 히브리어로 ‘타밈’(תָּמִים)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원 뜻은 ‘흠이 없는’, ‘완벽한’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마엘과 함께 했던 아브라함의 13년의 세월은 부족하고 불완전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불완전하고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은 결코 이룰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흠 없이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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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언약을 확인시키시다

   이처럼 부족하고 불완전한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더 언약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 아들로 인하여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맺어 주셨습니다.
   이 장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시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이 99세 때 찾아 오셔서 다시 약속을 맺어 주시고 장차 태어날 아들로부터 번성한 민족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은, 아브라함의 의로움이나 완전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지극히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만나주심으로 인하여 참 아들과 후손에 대한 언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의 증거로,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의 이름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아브라함”으로 고쳐 주셨고,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사라”라고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곧 아들에 대한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증거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 13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그가 믿었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은 단순히 입술로만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13년 동안이나 이스마엘을 통하여 받았던 위로와 기쁨을 뒤로한 채,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아직 아들이 태어난 것도 아니며, 아브라함의 나이나 사라의 나이로 볼 때 다시 아들을 낳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 한 마디의 약속을 굳게 믿었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아브라함의 바라는 것은, 아내 사라를 통한 참된 상속자였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참된 상속자를 낳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아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졌고 그 결과,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이루어져 백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다

   믿음의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베드로는 안타까운 말을 하였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역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고백을 했던 베드로였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님을 붙들고 항변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8: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항변하다”(에피티마오, ἐπιτιμάω)는 말은 꾸짖는다는 말입니다. 제자인 베드로가 선생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말이 되냐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고난을 받으며 죽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베드로의 이 꾸짖음(에피티마오, ἐπιτιμάω)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에피티마오, ἐπιτιμάω).

마가복음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항변, 즉 예수님을 꾸짖으면서 가진 생각은, 사람의 일,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상황 정도면 얼마 안 가서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인정을 받고 유대인의 메시야가 되실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로마군을 몰아 내고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대인의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시면, 주님을 따라 다닌 최고의 제자였던 자신은 분명히 최고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으로 임하는 것인데, 베드로는 이 세상의 사람의 왕국과 동일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사람의 방법을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계셨으며, 그 구원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생명까지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대한 약속을 이루길 원하셨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믿음을 가지라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기 위하여 1년 간을 기다렸습니다. 이스마엘을 바라보면 굳이 1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1년이나 기다리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으며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기 위해 힘씀으로써 번성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완전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즉, 믿음을 가지고 주의 뜻을 이루라고 명령하십니다.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과 성도와 이웃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나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사랑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나의 게으름이나 베드로와 같이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미뤄지거나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습니까? 나와 우리의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믿음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사순절을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처럼 그리고 믿음을 가졌던 아브라함처럼, 말씀 묵상과 경건한 삶으로 완전하게 살아 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주신 명령을 이루어 하나님과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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