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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23 이사야서 주석및해설

이사야 59장 1절-21절,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본문주석

by OTFreak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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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59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림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평화의 길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문의 전반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1-8절). 또 두 번째 부분은 죄에 대해 고백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께서 전사가 되셔서 충성된 자들에게 보상을 하시며 죄인들에게는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주의 약속과 정신, 그리고 주의 말씀이 하나가 되어 59장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온 세대가 주의 약속과 정신, 그리고 말씀이 견고하게 세워지며 사모할 것입니다.
   매일성경큐티에서는, "하나님은, 구원의 손을 거두실 만큼 타락한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전사의 모습으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싸우십니다"(2021년 8월 8일 주일 본문에서)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구원자이자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쉬운성경을 통독하면서 말씀묵상하고 본문주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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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9장 1절-21절, 쉬운성경

<백성의 죄>

   1 보아라! 여호와의 능력이 부족하여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귀가 어두워서 너희 기도를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2 다만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을 갈라 놓은 것이며, 너희 죄 때문에 주께서 너희에게 등을 돌리셨고, 너희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 것이다.
   3 너희 손은 살인한 피로 더럽혀져 있으며, 손가락은 죄악으로 가득하고, 입술은 거짓말을 하였고, 혀는 악한 말을 하였다.
   4 사람들이 서로를 부당하게 고발하고, 재판을 할 때에도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거짓으로 서로 고소하고 거짓말을 한다. 재앙을 일으키고 악에 악을 더한다.
   5 그들은 독사가 알을 품듯이 악한 것을 계획하고, 거미줄을 짜듯이 거짓말을 짜낸다. 그 알은 먹으면 죽는 알이며, 그 알을 깨뜨리면 독사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6 그들이 짠 것으로는 옷을 만들 수도 없고 몸을 덮지도 못한다. 그들의 손은 남을 해치는 손이며,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악하다.
   7 그들의 발은 악한 일을 하려고 달려가고, 사람을 죽이려고 재빠르게 뛰어간다. 그들의 생각은 악으로 가득하고,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괴와 멸망이 있을 뿐이다.
   8 그들은 평화롭게 사는 법을 모른다. 그들의 삶에 정의란 없으며, 정직이란 단어조차 없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에게도 결코 평화는 없다.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재앙이 닥쳤다>

   9 그러므로 정의가 우리에게서 멀리 사라졌고, 공평을 찾을 길이 없다. 우리가 빛을 바랐으나 어둠뿐이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걷고 있다.
   10 우리가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벽을 따라 더듬으며 나아간다. 밝은 낮에도 밤길을 다니듯 넘어지니, 우리는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죽은 사람과도 같다.
   11 우리 모두가 곰처럼 울부짖으며, 비둘기처럼 슬피 운다. 정의를 바라지만 정의는 없고, 구원 받기를 바라지만 그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다.
   12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많은 죄를 지었다. 우리의 죄가 우리의 악함을 드러낸다. 우리가 하나님께 배반한 것을 숨길 수 없고, 우리가 저지른 악한 짓을 숨길 수 없다.
   13 우리가 여호와께 죄를 짓고 여호와를 배반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우리가 남을 해칠 궁리나 하며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계획하여 그대로 행했다.
   14 정의를 멀리 몰아 내고 공평을 쫓아 냈다. 거리에서 진리가 사라졌으며, 성 안에서 정직이 없어졌다.
   15 어디에서도 진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악한 짓을 그만두려는 사람이 공격을 당한다. 여호와께서 정의가 없는 것을 보시고 진노하셨다.
   16 아무도 남을 도우려 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놀라셨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몸소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여호와의 의로움으로 능력을 나타내셨다.
   17 여호와께서 정의를 갑옷으로 입으시고, 구원의 투구를 쓰셨다. 심판의 옷을 입으시고, 뜨거운 사랑의 겉옷을 입으셨다.
   18 여호와께서 원수들에게 그들이 한 일대로 갚으시며, 적에게 보복하신다. 바닷가 땅의 백성을 심판하시며, 그들이 행한 대로 벌을 주신다.
   19 서쪽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해뜨는 동쪽 사람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두려워한다.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입김 때문에 세차게 흐르는 홍수처럼 오실 것이다.
   20 여호와께서 너희를 구할 구원자로서 시온에 오신다.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께 돌아온 야곱 백성들에게 오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21 “내가 이 백성과 언약을 맺겠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내 영과 너희 입에 두는 내 말이 너희와 너희 자손의 입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리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59장 1절-21절 본문주석

 

인간의 실패, 59장 1절-8절

  1. 59장 1절-3절, 주님의손, 그리고 백성들의 손
  2. 59장 4절-8절, 사악한 행동들과 생각들

죄의 고백, 59장 9절-15a절

  1. 59장 9절-11절, 정의는 멀리 있다
  2. 59장 12절-15a절, 범법은 임박하였다

주께서 오신다, 59장 15b절-21절

  1. 59장 15b절-17절, 정의와 진리가 사라졌다
  2. 59장 18절-20절, 흐르는 강물처럼 구원자께서 오신다
  3. 59장 21절, 주의 성령과 말씀들

 

59장 1절-8절,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1-7절의 가혹한 정죄 후에 8절에서는 경제적 왜곡과 착취,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으로 단죄된 이 공동체는 결국 평강과 안녕의 길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평강'이라고 번역된 '샬롬'(shalom)이라는 용어는 8절의 처음과 끝에서 각각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사이에 '정의'(正義)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의 공동체가 단죄받는 까닭은 그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인 정책들이 그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공명정대한 질서와 조화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의 주장은 만일 공동체가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면 어떤 공동체도 평강과 번영을 누리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포악한 행동'은(6절) 아마도 거리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행동을 의미하기보다는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세금법이나 사회 경제적 체제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정의의 주제는 9, 11, 14절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단락의 선지자적 정죄는 종교적 제의를 통해서는 평안과 번영을 발견할 수 없는 무질서하고 불의한 사회를 겨냥한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5b절,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이 구절들에서는 주님의 분노와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행하시려는 의도를 나타냅니다. "정의가 없는 것"이란, 히브리어 성경에는 '주의 눈에 보시기에 정의가 보이지 않는다'(בְּעֵינָ֖יו כִּֽי־אֵ֥ין מִשְׁפָּֽט)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주의 실망과 답답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직접 자신의 팔을 통하여 구원과 공의를 베푸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성경에서 "주님의 팔"은 항상 주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서 주님의 팔 역시 구원과 공의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성실하게 움직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59장 16절,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이사야 59장 1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회당과 교회는 인간이 정의를 행사할 때 그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인간의 죄악들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세상의 불의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세우셨으며, 이것이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같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당과 더불어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개인적, 공동적, 사회적, 그리고 국제적인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가장 큰 이유는, 정의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만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의를 짊어지고 지켜 나가며 이를 무시하지 않는 책임이 교회에게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중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59장 20절,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59장은 대부분 신랄한 심판 예언들로 가득 차 있으며 불순종한 자들 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혹한 심판 어조를 고려한다면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이 복된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입니다. 저자의 선지자적 전망에서 볼 때, 심지어 이스라엘의 왜곡된 공동체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구속자가 예루살렘 성읍에 들어오시기 위해서는 죄에서 떠나는 예루살렘의 '회개'(turn)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강론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키도록 소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웃 사랑의 실천만이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를 확보하는 환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회개를 전제로 구속자를 약속하는 20절은 58장의 '만일... 그러면' 정형 구문과 논리상 아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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