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성경 이사야 32:1-20
목차
전체 개요
- 패망한 유다에 공의로운 왕이 통치하심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1-8절).
- 그러나 여전히 어리석은 여자들이 통치하는 세상 나라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9-14절).
-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정의로 통치하실 하나님의 영이 오시면, 그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15-20절).
- 황폐한 삶 가운데에도 성령님을 통치자로 모시고 순종할 때, 회복과 평안으로 인도해 주십니다(20절).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1. 집안의 가장, 나라의 지도자에 따라서 가정과 국가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1) 집안을 전체적으로 책임지고 꾸려가는 사람을 '가장(家長)'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가정들에서는 주로 아버지의 역할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머니나 조부모가 맡기도 합니다. 누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든, 가장의 성격이나 생각에 따라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다소 엄격한 가장은, 엄한 가정의 규칙을 통하여 질서를 확립할 것입니다. 반대로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가장은, 자녀들에게도 자율에 맡기며 많은 부분을 허용할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서 가정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보다 규모가 더 큰 공동체인 기업이나 국가 역시, CEO나 국가 지도자의 목표와 가치관에 따라 나아가는 방향이 바뀝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사원들의 복지나 정책 수립 과정의 출발선부터 다를 것입니다.
국가 역시 통치자가 누구냐에 따라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독재자가 국가를 통치하면 그 나라는 군대나 정보기관 같은 국가 기관이 활성화되고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됩니다. 반대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면, 국민의 복지를 위한 국가 기관들이 발전하게 됩니다.
2. 유다의 운명 역시 국가 지도자에 의해 결정이 났습니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의 국가인 유다는 다윗의 자손들이 대대로 왕의 자리에 있으면 국가를 운영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진정한 왕이시며 다윗의 자손으로 왕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했던 왕들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순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마치 다윗 왕이나 요시야 왕과 같이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 이념이 담긴 율법을 따라 유다를 이끌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도 복을 주셨지만 그들을 통하여 유다라는 국가와 백성들에게까지 복이 흘러넘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나 우상 숭배를 국가의 정책 방향으로 수립한 이들이 유다를 통치했을 때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범죄하며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의 앞 부분들에서도,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정책이 아닌,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는 정책을 결정하였고 사신을 보내어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의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운 결과가 무엇입니까?
유다가 전쟁의 위협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백성들의 삶은 고통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유다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본문의 말씀에는 두 종류의 통치자가 등장합니다.
(1) 첫번째 통치자는 1절에서 언급한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입니다.
이 왕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세상의 지혜를 따르고 사람의 말을 따라서 통치하는 왕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기초로 하여,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돕고 교만하고 오만한 자를 낮추는 "공의와 정의"를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삼는 왕입니다.
이처럼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으로 인하여 유다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2절에서 전쟁과 고통으로 지친 백성들이 회복과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이사야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2, 개역개정 성경)
2절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볼 때,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이 유다를 다스리게 되면 유다 백성들은 전쟁의 폭풍을 피하며 전쟁으로 인해 황폐함을 당하지 않으며 시원한 그늘과 같이 든든한 안정감을 누릴 수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와 평안을 주실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을 하나님께서는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나타난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에서, 예수님께서는 백마를 타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며 싸우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개역개정성경)
하나님의 공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인생을 통치하고 다스리실 때, 우리의 마음에는 쉼과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1:29를 통하여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개역개정성경)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개역개정 성경)
공의와 정의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나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인생을 맡깁시다. 그분이 가장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하시며 형통케 하시며 평안케 하실 것입니다.
(2) 두 번째 통치자는, 9절에서 언급된 '안일한 여인'으로 표현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통치가 아닌, 전적으로 사람이 통치자가 되어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이 나라는 사람들의 말과 사람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통치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는 나라입니다.
사람에게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이 나라의 백성들은 10-14절과 같은 황폐한 땅에 거하게 되는 안타까운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은, 전쟁에서도 완전히 구원받지 못하며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함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나라에서 사는 백성들은, 인생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고 해결해 주지도 않는 고아와 같은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4. 하지만 사람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황폐화된 인생이라 할지라도, 회복의 길이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5절에서 위로부터의 새 영에 대해 말씀합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 개역개정성경)
새 영이 통치하실 회복된 나라의 모습도 16-20절을 통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묘사하고 있습니다.
15절의 "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입니다. 태초에 수면에 운행하셨던 하나님의 영이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불어 넣으셨던 하나님의 숨길입니다. 때에 따라 선지자들에게 부어주셨던 바로 그 영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셨던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복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황폐한 마음과 세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더 나은 지도자, 더 똑똑한 지도자, 더 존경 받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 지도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통치하심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성령의 통치하심이 우리의 모든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5. 오늘 내 삶을 누가 통치하도록 하시겠습니까?
또, 내 삶의 주인이 누가 되도록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완전한 통치자가 되시며 우리에게 참 쉼과 안식과 평안을 주시는 성령님께 우리의 인생의 주권을 드립시다. 성령님께서 오늘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내 생각을 통치하시고 내 감정과 입술의 말과 행동들을 지배하시며, 나를 전적으로 인도하시도록 내 마음의 중심을 내어 드립시다.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을 나그네의 삶, 순례자의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피곤하고 힘든 순례자의 삶이라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내 삶의 통치자가 되시면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 내 마음과 삶을 겸손히 내어 드릴 때 성령님께서 내 마음 중심에 살아 계시며 나를 통치하심을 기억하며,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6. 기도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 오늘 이 새벽에 내 마음의 중심을 성령님께 내어 드립니다. 내 마음과 내 삶과 내 생각 중심에 좌정 하셔서 성령님의 뜻대로 다스리시고 통치하여 주옵소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로 결단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나의 왕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우리나라를 다스려 주시고 국가 지도자들이 성령님의 통치하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 오늘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 우리 가정과 가족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싹트게 하옵소서.
7. 더 참고할 만한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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