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20-28, 하나님께 부탁하라(찬369장)
욥기 13:20-28, 개역개정
20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25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28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욥기 13:20-28, 쉬운성경
20 하나님, 제발 두 가지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주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21 제게서 당신의 손을 치워 주시고 공포에 사로잡혀 떨지 않게 해 주십시오.
22 제게 말씀하시면 대답하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묻는 말씀에 대답해 주십시오.
23 저의 허물과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반역한 일과 죄를 보여 주십시오.
24 왜 당신은 저를 피하시고 원수 취급하십니까?
25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같은 저를 왜 괴롭히십니까? 마른 풀과 같은 저를 왜 쫓아오시나요?
26 당신은 저의 죄를 모두 기록하시고, 어렸을 때의 잘못을 갚으십니다.
27 당신께서 제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걸음마다 지켜 보시고 내 발자국까지 추적하시니,
28 내가 썩는 물건처럼 썩어져 가고, 좀먹은 옷처럼 생명이 약해져 갑니다.”
욥기 13:20-28, 하나님께 부탁하라(찬369장)
하나님께 부탁하라
1. 마음이 갑갑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첫째, 약간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이나 산책을 한다. 운동이나 산책을 통해서 잠시나마 현재의 괴로움을 잊어 보려는 노력입니다.
둘째, 샤워나 목욕을 한다. 따뜻한 물을 틀어 놓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물에 씻어 내려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셋째, 바닷가나 강가에 가서 돌을 던진다. 그 돌에 근심과 걱정, 답답함을 매달아 멀리 멀리 던지면 속이 시원해진다라고 말합니다.
넷째, 잠을 잔다. 잠이 보약입니다. 푹 자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돌을 던지고 잠을 자도, 그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문제들이 내 마음을 누릅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잊었을 지는 몰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면 정말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해결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도망갈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억울한데 자신의 마음을 보여 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확 뒤집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 욥은 억울하고 답답하여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23절입니다.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13:23, 개역개정성경)
내가 이토록 심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길래,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십니까라고 욥이 말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나를 비난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 많습니까라고 욥이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허물은 '반역하다'라는 뜻의 '페샤'(פֶּשַׁע)라는 히브리어를 씁니다. 이 말은 주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교만하는 행동, 하나님에 대하여 정면으로 대항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죄는 '빗나가다'라는 뜻의 '하타아'(חַטָּאָה)라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원래 목적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영광을 취하는 행동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행위가 죄입니다.
그래서 욥은 23절을 통하여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억울해 죽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그 영광을 가로챈 적이 있습니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리도 크게 잘못했길래 나에게 이처럼 참을 수 없는 큰 고통과 아픔을 주십니까?
지금 내 옆을 보십시오. 내 자녀들도, 아내도, 내 종들도, 내 재산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건강도 나빠져서 기와장으로 내 몸이나 긁고 있습니다. 친구라고 와 있는 자들은 나를 정죄하고 더 가슴아프게 할 뿐입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3. 그런데 정말 욥으로 하여금 절망스럽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가리셨다는 사실입니다.
24절입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 13:24, 개역개정성경)
"세상 사람들은 날 몰라주고 내 가족이나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마저 나를 버리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니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얼굴을 가린다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원수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같이 함께했던 친구와 같았던 하나님과 욥의 관계에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욥에게 얼굴을 가리우시고 얼굴을 돌리시며 욥의 고통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예 욥이 불러도 하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야말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욥의 깊은 한숨과 탄식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4. 욥에게 얼굴을 가리신 하나님은, 이제 과거 어렸던 시절의 행동까지도 기록하셔서 벌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26절, 2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욥 13:26-27, 개역개정성경)
친구였던 하나님이 이제는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셔서 그것만으로도 답답하고 마음이 상하는데, 이제는 과거 철없던 시절의 죄악까지 다 기록하여 낱낱이 말씀하셔서 정말 죽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욥은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시고 밝히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발에 큰 쇠사슬을 달아 놓으심으로 발목이 잡혔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괴로움의 최고 절정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5. 근심과 원통함 중에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자녀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대가 끊어질까봐 브닌나라는 여인을 들여서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비론 브닌나라는 여인이 아들들을 낳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자녀를 낳지 못하는 이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갑절의 사랑을 베풀어 주고 항상 아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자녀를 낳지 못한 자신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는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힘들었고, 자녀를 낳았다고 자신을 못살게 구는 브닌나라는 여인도 미웠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여인이 너무 괴롭고 화가 나서 울고 먹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식음을 전폐했다는 말입니다. 입맛도 없고 삶의 의욕도 없었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에 대한 사무엘상 1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나가 아들을 낳지 못하여 서러움을 당하고, 이로 인해 슬퍼하며 음식도 못 먹는 상황이 된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삼상 1:5, 개역개정성경)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자녀를 주지 않으셨는지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임신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욥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욥도 한나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 라고 말입니다.
6.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두 가지 내용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탁은, 주의 손을 내게 직접 대지 마시라는 부탁입니다. 21절입니다.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욥 13:21, 개역개정성경)
이 말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 나를 치시고 나를 누르시니 내가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고 죽음의 공포가 자신을 누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이해 못해도, 하나님만은 나를 이해해 주실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손으로 나를 꽉 누르고 계시니 내가 이제는 누구를 의지하겠냐는 외침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손을 대지 마시고 오히려 거두셔서 나로 하여금 이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부탁은, 2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욥 13:22, 개역개정성경)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 달라고 욥이 부탁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리우심으로 대면도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이제 다시 자신을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소망으로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시면, 자신의 무죄에 대해 말씀 드리겠다는 요청입니다. 이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나가겠다는 고백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욥은 하나님께 부탁 드리고 있습니다.
7. 욥은 정말 믿음의 사람이 분명합니다.
저 같으면 벌써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욥이 당한 고난 중에 두세가지만으로도 이미 저는 포기해 버렸을 것입니다. 근근히 버틴다 하더라도 매일 매 순간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믿음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뒤집어서라도 자신의 무죄를 하나님께 증명하고자 하나님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한나 역시, 하나님으로 인하여 임신하지 못하고 브닌나라는 여인은 아들도 잘 낳는데다가 자신을 무시까지 하여 식음을 전폐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지 않았습니다. 실로의 성막에서 이렇게 행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10 말씀입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 1:10, 개역개정성경)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통곡함으로써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 때문인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다시 풀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도 주신 분도 여호와이시니 가져가시는 분도 여호와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주실 분도 여호와이심을 알았습니다. 한 수 더 내다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욥이나 한나와 같은 답답함을 경험합니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극심하게 괴로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관심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조차 없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그 때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욥과 한나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누르고 치시더라도 완전히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그리고 나의 아픔을 아뢸 수 있도록 나를 불러 주옵소서.
괴로운 순간이라 하여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더 아룁시다. 고통과 고난과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도 그 고난과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서로부터 철저히 버리심까지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포기 말고 기도합시다. 답답해도 기도합시다. 주께 모든 것을 부탁하고 고할 때, 우리 근심 걱정을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의 해결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우리 함께 이 시간에 찬송가 369장을 찬양하며 기도회로 나아가겠습니다.
369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새찬송가 악보
369장_죄 짐 맡은 우리구주_새찬송가악보_PPT.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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