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매일성경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논쟁 이야기입니다. 비록 예수님은 다른 랍비들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없으셨지만 그분의 말씀은 다른 랍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그처럼 놀라운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이유를 새벽예배 설교를 통하여 나눕니다.
요한복음 7장 14절-24절, 외모가 아니라 핵심을 살피라
설교 전 찬송
새 찬송가 205장, 주 예수 크신 사랑 / 새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거지 모습의 암행어사
조선 시대에는 왕이 한양 이외의 지방 형편을 살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암행어사를 비밀리에 임명하여 파견하였습니다. 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마패를 수여하고 왕의 직속 관리로서 암행어사를 임명하고 파견하여 각 지방의 형편과 고을 수령들의 비리, 백성들의 삶을 보고 받았습니다.
왕이 직접 비밀리에 임명한 왕실 직속 비밀 수사관인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의 관리의 서열로는 종2품 또는 정 3품이었기에, 지방의 수령들보다 훨씬 지위가 높았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경북도지사나 대구시장보다도 훨씬 지위가 높기 때문에 암행어사가 직접 지방 수령들을 파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같이 지위가 높고 왕이 신뢰하는 암행어사는 대부분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닙니다. 춘향전에 나온 이몽룡 역시 거지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몽룡의 실제 모습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암행어사였지만 겉모습은 거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모습
예수님도 겉으로는 갈릴리 출신의 평범한 목수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15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배우지 않고 글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15절에 나타난 "배움"과 "글"은 정식적인 랍비 교육과 율법을 의미하기에, 예수님은 번듯한 선생님도 없고 정규 교육도 받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늘날로 친다면, 예수님은 검정고시에 합격한 지방 소도시 출신에 직업도 변변찮은 사람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의 실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을 때, 초막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놀랍게 여겼다"는 말이 헬라어 원어성경에는 "θαυμάζω"(다우마조)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무릎을 치며 공감하다", "감탄하며 인정하다"는 뜻입니다. 지방 소도시 출신이자 검정고시 출신의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모두가 감탄하고 인정하며 그 가르치심에 무릎을 치며 공감하였고, 일반적으로 들어왔던 유대인 랍비들의 가르침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마태복음에는 갈릴리의 언덕에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신 후의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사람들이 놀라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권위 있는 자와 같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16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교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특별한 말씀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문의 뒷부분에서 안식일과 할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신 사건을 두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내용은, 안식일에 외적인 형식에 불과한 할례를 행하는 것과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는 질병을 고치시는 일 중에 어떤 것이 더 귀한 일이냐는 것입니다. 더욱 선하고 귀한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을 비난하고 형식적인 일에는 거리낌이 없는 유대인들의 거짓된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이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대로 행하셨을 뿐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율법의 정신은 내버리고 율법의 형식만을 취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4절을 통하여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평가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약속된 메시야이십니다.
말씀대로 행하라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기억하여, 말씀의 깊은 의미와 말씀을 주신 목적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갑시다. 말씀을 많이 보고 많이 암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귀한 모습에 사랑을 더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여겨 주실 것입니다. 말씀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할 기도
- 말씀대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소서.
- 우리가 보내는 선교사, 기도하는 선교사, 가는 선교사가 되게 하소서.
-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는 우리 가정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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