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의 사역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부패를 청결하신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타락한 종교를 다시 회복시키신 예수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성도인 우리 마음도 청결하게 해야 함을 주일예배설교로 정리하여 나눕니다.
요한복음 2장 13절-22절, 교회를 교회되게 성도를 성도답게
설교 전 찬송
새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 새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 우릴 사용하소서
맥주를 사달라던 관광객
이스라엘에서 생활할 때, 한국에서 오신 관광객들을 여러 번 안내를 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오시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교회에서 온 성지순례팀입니다. 그래서 목사로서 성지순례팀을 안내하는 것은 여러모로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에, 말 그대로 이스라엘을 여행하기 위해 온 관광객들을 몇 번 안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는 목사가 아니라 진짜 현지 가이드였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먹을 때 술을 마실 수 없느냐는 질문부터 저녁에 숙소에서 술을 마실 수 있도록 맥주를 사다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가이드이니 어쩔 수 없이 해 달라는 대로 맥주를 사다 드려야 했습니다. 그 때마다 곤란한 부분이 있었는데, 한국 돈이나 달러를 주면서 맥주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의 일반 가게는 달러를 받는 가게도 있지만, 상당수의 가게에서는 달러를 받지 않고 이스라엘 돈인 세켈을 받습니다. 혹시 가게에서 달러를 받으면 주인이 환율을 계산해서 잔돈을 이스라엘 돈으로 줍니다. 물론 가게 주인이 훨씬 이익이 되도록 환율을 적용하지요. 하지만 달러를 전혀 받지 않으면, 제가 가진 이스라엘 돈을 주고 맥주를 산 다음에 그날의 환율을 적용해서 다시 달러로 관광객에게 잔돈을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씩 제가 중간에서 환전하며 돈을 남겨 먹은 듯이 말하는 관광객들이 있었습니다. 매우 억울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 말씀드리지만, 제가 기억하는 한 정확하게 환율에 맞춰서 그분들께 잔돈을 돌려 드렸습니다. 저는 100억 정도 되지 않는 한, 몇 천원은 절대로 착복하지 않습니다. (웃음)
두로 세겔과 로마 세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던 당시의 성전에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환전상들은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의회가 인정한 사람들이며 환전을 통해 생기는 막대한 이익들은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의회가 관장했습니다. 따라서, 환전으로 벌어 들이는 돈이 매우 많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는 두 가지 세겔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두로에서 생산되는 "두로 세겔"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모든 땅에서 사용되는 "로마 세겔"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음식을 사고 물건값을 지불하거나 각종 세금들을 낼 때는 로마 세겔을 사용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에 내는 반 세겔은 "로마 세겔"이 아니라 "두로 세겔"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성전세를 내는 사람들은 모두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의회가 관장하는 성전의 공식적인 환전상을 통하여 손해를 보며 로마 세겔을 두로 세겔로 환전해야만 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돈 바꾸는 환전상들의 돈을 쏟고 상을 엎으셨습니다. 우리 함께 15절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5절의 돈 바꾸는 사람들이 바로 로마 세겔을 두로 세겔로 바꿔 주던 환전상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쫓아 내시면서 예수님은 16절을 통하여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내쫓으시다"라는 말을 헬라어 원어 성경에서 찾아 보니, "ἐκβάλλω"(에크발로)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내던지다", "추방하다", "쫓아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할 때에도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성전 안에 있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을 뽑아내고 쫓아내며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성전 안에는 장사하는 것과 돈을 바꾸는 것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남을 속이는 일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거짓과 속임수와 악한 것은 내버려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과 마가복음 11장 17절, 누가복음 19장 46절에서는 "강도의 소굴"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거의 강도 수준으로 환전 이익을 취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소굴이라 표현하시며 분노하셨습니다. 성전 안에 강도가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전의 존재 이유
그렇다면 성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바칠 때, 성전의 존재 이유가 "기도하는 장소"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였습니다. 열왕기상 8장 22절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 안의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범죄 하였더라도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면 죄를 사하시고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또 먼 곳에서 이방인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여도 이방인이 부르짖고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고 솔로몬이 기도하였습니다. 즉, 성전은 누구나 기도하는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였으며, 예수님께서도 성전에 대하여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자막을 보며 마가복음 11장 17절을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그런데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각종 짐승들을 파는 시장 바닥이 되고, 종교지도자들의 배를 불리는 불법 환전소가 되어 버렸기에,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시며 이 모든 부정부패의 근원들을 쫓아 내시며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열심으로 인하여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그렇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전과 교회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한다는 점에서는 성전과 교회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에서는 제단에 제물을 바침으로써 하나님께 예배했으며, 또 기도하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교회는 지금 우리처럼 모여 찬송과 기도와 말씀 선포와 교제를 통하여 예배합니다. 그러니 예배를 드린다는 점에서, 성전과 교회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과 교회의 차이점도 있습니다. 차이점들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루살렘에 존재하던 성전은, 솔로몬이 세웠다가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스룹바벨이 다시 세웠다가 헤롯 대왕이 46여년 넘게 가꾸고 꾸미고 확장하였다가 로마 제국에 의해 파괴된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전 된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하는 모임,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본문의 21절과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21-22,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성전된 예수님의 육체"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 의미는 바로 사도신경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자막을 보면서 같이 천천히 읽으며 고백하겠습니다.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신앙의 고백이 가득 차야 합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한 장사와 거래가 아닌, 순결한 신앙의 고백과 예배가 가득 차야 합니다. 찬양이 있어야 하며 기도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사랑 마음에 품고 구원해야 할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교회다운 모습입니다. 사람의 계산과 계획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말씀만을 따라가는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끊질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잠시 멈춘 이때, 우리는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돌아보고 나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우리에게 다시 점검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거해야 할 것은 과감하게 제거하고,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이때를 우리를 새롭게 하는 때로 만들어 가는 지혜로운 우리 교회,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하기 위하여
또 하나, 건물로서 교회와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함께, 우리 자신이 작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모두 하나의 작은 교회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으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길을 가면서도 우리는 움직이는 작은 교회이기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들인 우리의 마음에, 욕심이나 분노나 절망감을 내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쫓아 내셨듯이, 우리 안에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막는 것들을 쫓아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기도로 채우고 말씀으로 채우며 찬양으로 채워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오늘 주께 예배 드리는 우리 모두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우리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가는 교회의 한 사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인 우리 자신이 어디에서든 말씀과 기도와 찬송을 드림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교회답게 세워가는 교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우릴 사용하소서" 찬양한 후에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후렴을 반복할 때는 가사를 "나를 사용하소서"로 바꾸어서)
합심기도
- 우리 교회가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로 가득 차게 하소서.
- 한국 교회가 말씀 위에 다시 서게 하소서.
- 나 자신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세워가게 하소서.
- 내가 복음을 전할 한 사람이 생각나게 하소서.
참고할 글
- 요한복음 2장 1절-12절,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 - 주일오전예배설교
- 요한복음 2장, 예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다 - 구조 해설 새벽예배설교주제
- 1월 3주 주일예배 대표기도문, 우리를 안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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