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인해서 많은 유생들이 목숨을 잃고 있을 때, 동부승지(同副承旨)(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직책, 오늘날의 민정수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의 자리에서 쫓겨난 김정국(金正國:1485~1541)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과 대면하여 명령을 받을 정도로 나름의 권세를 지녔던 그였지만, 벼슬에서 한순간에 쫓겨나고 나서는 시골집으로 돌아가서는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불렀다고 합니다. 팔여거사란 말은, 여덟 가지가 여유로운 집에 거하는 선비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벼슬도 없고 고향에 쫓겨난 신세인 그가 스스로를 "여덟가지 여유로운 선비"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궁금했던 한 친구가 그 뜻을 물었습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먹고, 온돌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깨끗한 샘물을 마음껏 마시고, 책을 넉넉히 볼 수 있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충분히 감상하고, 새와 바람 소리를 편안히 듣고, 눈 속의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의 향기를 편안히 맡고 살아가고 있지. 이 일곱 가지의 행복을 깨닫고 그 모든 것을 넉넉하게 즐기고 있으니 "팔여", 여덟가지를 여유롭게 즐기는 선비라고 나 자신을 말한다네".
김정국의 대답을 들은 친구는 "팔여"가 아닌 "팔부족"(八不足)(여덟가지 부족한 것들)을 읊었습니다.
"팔여와는 반대로 팔부족도 있다네. 진수성찬을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찬란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맛 좋은 술을 실컷 마시면서도 부족하다. 화려한 그림을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면서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다 듣고도 부족하며, 맡기 힘든 향내를 맡으면서도 부족하다고 여긴다네. 그리고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하고 있다는 팔부족도 있다네".
김정국과 같이 부족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과 여유와 기쁨을 찾는 것을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 합니다.
나(자신) 오, 오직 유, 알 지, 만족할 족
'나 자신이 오직 만족함을 안다'라고 직역해 볼 수 있으며, 그 뜻은 지나친 욕심, 쓸데 없는 욕심에 관심 가지지 말고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인한 지금 상황에서, 저도 "팔은교목"(八恩敎牧)이라 스스로 불러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비롯하여 네가족 모두가 하루종일 몇 달을 붙어 있어서 좋고, 하루 세끼를 한 식탁에서 먹어서 좋고,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부분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서 좋고, 가만히 멍~ 하니 앉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고, 평소에 늘 보던 이들을 못 봄으로 인해 그리움이 커져감을 느껴서 좋다.
일상의 예배가 귀함을 깨달아서 좋고, 유리창 밖의 꽃잎들이 떨어짐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주신 은혜임을 알 수 있으니 '일상에서 여덟가지 하나님 은혜를 알게 된 교회의 목사'라는 뜻의 '팔은교목'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오늘도 주신 것에 감사하며, 팔은교목으로서 오유지족의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시 116: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