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중학교 2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있습니다.
이 둘은 친한 듯 하면서도 친하지 않은 듯 합니다. 눈만 마주치면 치열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서로 자기 침대에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하며 말싸움 시작합니다. 거기서 시작해서 서로 자기가 공부 더 잘한다고 자랑하며 싸우고 케케묵은 옛날 일을 들먹이며 싸웁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또 붙어서 서로 가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루에 15분 허용된 게임 시간에는, 서로 무슨 게임을 하는지 보기도 하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조언도 합니다.
마치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오월동주'란,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입니다.
오(吳)의 합려(闔閭)와 越(월)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怨恨)이 있었고 윤상(允常)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ㆍ勾踐)이 오(吳)나라를 침략(侵略)하여 합려(闔閭)를 죽이고 합려(闔閭)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句踐ㆍ勾踐)이 회계산(會稽山)에서 항복(降伏ㆍ降服) 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關係)로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손자(孫子)가 말하기를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원수(怨讐)처럼 미워하는 사이지만 그들이 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다고 가정한다면 원수(怨讐)처럼 맞붙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양쪽 어깨에 붙은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關係)처럼 도울 것이다.」
[ 위의 해석은,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가져 왔습니다. 원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hanja.dict.naver.com/word?query=%E5%90%B3%E8%B6%8A%E5%90%8C%E8%88%9F ]
대학 시절, 소설 손자병법을 통해 이 부분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감나게 보았었지요.
오나라와 월나라의 물고 물리는 상황이 바로 우리 집에서 지금 일어 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딸과 아들을 통해서요. ^^
누가복음 23장에는, 서로 대립의 관계에 있던 헤롯 왕과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친구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눅 23:12). 이들은 서로 유대 땅을 통치하는데 있어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대립의 관계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일시적이지만 "한 배"를 탔던 것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성령의 법"과 "내 마음의 법"이 한 마음 속에서 함께 싸워 갑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3-25)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 삶이 지금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인걸요...
오월동주의 삶이 변하여, 주님의 뜻과 내 뜻이 하나되는 혼연일체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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