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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06 여호수아 주석및해설

여호수아 6장, 여리고를 정복하라 - 구조와 해설, 새벽설교주제

by OTFreak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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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성을 정복하라
여리고를 점령하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전략을 따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돌고 일곱째 날에는 함성을 지릅니다. 성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호수아 6장의 구조와 해설, 새벽설교주제

 

 

여호수아 6장의 구조

 

1절-7절, 여리고 성 정복을 위한 전략

여리고 성의 주민들이 성문을 닫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공격할 전략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한 번씩 성을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고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면, 백성들이 큰 함성을 지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8절-21절, 이스라엘의 순종과 여리고 성 정복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여, 6일 동안 여리고 성을 한 번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나팔소리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성을 지르자 성벽이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을 전멸시켰습니다.

 

22절-27절, 라합 가족의 구원과 여리고 성 재건에 대한 저주 선언

두 명의 정탐꾼을 구해 준 사건에서 라합과 맺은 언약대로, 라합의 가족들은 여리고 성 정복 과정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것에 대하여 저주를 선언하였습니다.

 

 

여호수아 6장의 해설

 

6장 1절-12장 24절, 약속의 땅을 정복함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제 그들은 반드시 그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도 여호와가 우선권을 지니시고, 먼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면서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6: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의 명에 근거해서 땅을 정복해야 하는 중요한 책임에서 면제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단원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때때로 여호와에게 전적으로 신실한 자세와 행동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와는 자신의 자비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까지, 여호와는 그들을 위해서 싸우십니다(10:42).

 

1절-27절, 여리고 성이 함락됨  : 정복 전쟁의 첫 열매

땅을 정복하는 것과 관련된 고대 근동의 역사 이야기에서 흔히 언급되듯이, 여기서도 먼저 초기에 치른 중요한 전쟁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에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맨 처음 공격하여 무너뜨린 도시는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하나님에게 온전히 바쳤습니다. 곧 이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의식으로서 ‘첫 열매'(참조, 레 23:10)를 여호와에게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성에 속한 어떤 물건도 스스로 가져가서는 안 되었고, 또한 모든 사람들과 가축을 죽여야 했습니다. 이 장은 다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여호와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6:1~5).
  2.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명령을 철저하게 실행합니다(6~21절).
  3. 승리를 거둔 다음에, 여리고 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 후속 조치를 취한 것을 언급합니다(22~27절).

5장 13절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6장의 이야기는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난 이야기에 이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6장 2절-5절에 들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통해서 그때 여호수아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추측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 호수 아서 본문 자체는 이와 같은 추측이 사실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1절-2절, 여리고

여리고는 성벽으로 요새처럼 둘러싸인 도시로서, 고대 근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여리고 성은 지리적으로 가장 낮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곧 지중해보다 약 230미터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여리고에는 오아시스가 있어서, 물을 충분히 공급받았습니다. 또한 여리고는 때때로 '종려나무 성읍'(삿 1:16)이라고 불렸습니다. 여리고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여리고 지역의 거주지는 여러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언급되는 여리고는 텔 엘-술탄으로 확인되었으며, 약 4만 제곱미터의 면적에 해당됩니다. '여리고'(יריחו, 예리호)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달'을 의미하는 단어(ירח, 야레아흐)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 점에 근거해서, 많은 학자들은 가나안 땅의 여리고는 달을 숭배했던 중심지였다고 추측했습니다. 그 추측은 타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호와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것은 가나안 종교의 헛된 신에게 승리를 거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여호와가 이집트의 거짓된 신들을 굴복시키신 것에 대해서는 출 12:12; 민 33:4 등을 참조하면 좋습니다).

 

3절,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여호와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 성 주위를 하루에 한 번씩 돌게 하라는 놀라운 지시를 내리십니다. 이것은 여리고 성을 취하기 위한 의식적(儀式的)인 행위라는 점을 암시해 줍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바로 여호와의 권능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줍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칠일에 걸쳐, 곧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창조 이야기를 연상시켜 줍니다.

 

4절, 언약궤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 성을 돌 때,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군대 행렬의 한가운데에서 들고 갔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바로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5절,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여기서 나팔을 길게 분 것은 시내 산에 하나님이 나타나기 직전에 나팔을 길게 분 것과 동일하며, 성경에서 나팔을 길게 불었다는 기록은 이 두 본문에서만 언급됩니다(출 19:13). 

 

5절,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구약 성경에서 여리고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텔 에스-술탄에서는 오랫동안 고고학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발굴된 장소의 여러 모습은 여호수아 서가 묘사하는 것과 어느 정도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 발굴물은 성벽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증거해 줍니다. 여리고 성에는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세워진 두 성벽이 있었습니다. 안쪽 성벽은 분명히 바깥 성벽을 보호해 주는 방어 역할을 했습니다. 그 성벽들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자, 이스라엘 백성은 각기 앞으로 나아가서 적을 공격했습니다. 또한 이 발굴물은 여리고 성이 봄철에 갑자기 함락되었다는 것을 증거해 줍니다. 그리고 이 발굴물은 여리고 성 안에서 약탈이 이루어졌고, 그 성이 불에 탔다는 것을 입증해 줍니다. 그러나 텔 에스-술탄의 발굴물의 여러 가지 증거에 근거하여, 학자들이 여리고 성이 파괴된 시기를 제시하는 것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텔 에스-술탄이 파괴된 시기는 오늘날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또한 텔 에스-술탄에서는 분명히 중대한 침식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여리고 성이 주전 13세기에 함락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발굴물에 대한 보고서의 분석-도자기, 지층 분석, 스카라베, 탄소 측정 등-에 근거해서 판단할 때, 여리고 성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말엽, 곧 주전 1400년대에 파괴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6절-14절, 여호와의 궤

여호와의 궤는 여전히 중심 무대를 차지하고 있는데, 6장에서 10번, 특히 6절-14절에서 9번이나 언급됩니다. 여호와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원리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8절, 무너진 성벽

여리고 성을 공격하는 대신에, 성 주변을 일주일 동안 행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였고, 마침내 견고한 성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지시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수아 군대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분명 놀라운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10절, 너희는 외치지 말며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 주위를 진군할 때 침묵했던 것은 하나님의 활동이 종종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15절, 일곱째 날 새벽에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었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안식일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범하도록 하셨을까요? 어떤 이들은 법궤를 가지고 엄숙하게 진행하는 것이 예배의 행위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일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여리고 성을 돌게 된 7일 가운데 언제가 안식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7일 가운데 하루는 안식일이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이 안식일 원리의 예외였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요, 그것은 사실상 하나님이 그분의 장소에서 일어나셔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실 때까지 안식하고 기다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44:3이 이 사실에 동의합니다.

 

17절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바치다' (חרם, 헤렘, 문자적 의미는 '멸망시키다')라는 개념은 구약 성경에서만 언급되지 않습니다(모압 왕 메사가 세운 기념비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가장 오래된 비문입니다. 그 비문에서, 모압 왕 메사는 자신이 느보 성읍을 완전히 파괴시킨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면서 메사 왕은 칠천 명의 남녀를 죽였으며, 또한 여호와의 그릇들을 그모스 신 앞으로 끌어왔다고 자랑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도시를 모두 파괴하고 모든 주민들을 죽이는 행위는 현대인의 정서에는 어긋날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은 바로 하나님이 여리고 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모든 주민들과 가축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셨다고 주장합니다(신 20:16~17). 그와 같은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가증하고 악한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체를 죽이라는 이 명령은 다른 전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가나안 땅의 밖에 있는 도시들에 대해서 다르게 대하라고 지시하시기 때문입니다(신 20:10~15).

따라서 여호와가 판단하시기에, 그 당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에(참조, 창 15:16), 여호와는 그들에게 이와 같은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또한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없애고, 이교적이며 사악하고 음란한 문화를 파괴시킴으로써,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떠나서,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들을 섬기지 못하게 하시려는 의도를 갖고 계셨습니다(참조, 신 7:1~6). 그래서 자신이 주권적으로 정하신 시기에, 예외적인 특별한 사례로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죽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 경우 이외에, 하나님은 일반 은총을 통해서 그들을 보살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측에게 모든 피정복민을 죽여도 된다는 일반적인 유형을 제공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와 섭리에 지속적으로 반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17절-18절,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은 전문적인 용어입니다((חרם, 신 13:12-15). 그 성이 파괴될 때 불에 태울 수 없는 것들은 개인적으로 취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제물로 의무적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누구든지 개인적으로 취할 수 없는 것을 취하면 그것으로 인해 취한 자도 함께 진멸당했습니다(신 7:26). 

이렇게 개인적으로 취할 수 없는 것들을 의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는 로마서 12:1-2에 언급되는 자원하는 제사의 반대면을 보여 줍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들이 다 주님께 속한 것이기에(시 24:1), 하나님은 언제라도 그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백성을 향한 심판의 날은 거듭된 회개의 요청을 끝내 거부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18절, 이스라엘 진영을 바쳐야 할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완전히 파괴하라는 명령을 신실하게 수행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진영 자체가 바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 군대는 전멸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와의 명령(참조, 17절)은 인종 청소에 대한 한 가지 사례가 결코 아니라, 오히려 종교적인 측면에서 가나안 땅을 정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외적인 경우들로서, 라합(2장)과 기브온 족속(9장)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자신들을 여호와에게 헌신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아간과 같이(7장),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여호와의 명령을 어겨서 여호와를 업신여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חרם'(헤렘)이 되었습니다. 곧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죄악은 단순히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곧 개인의 범죄 행위는 이스라엘 진영,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참조, 7:1).

 

19절, 여호와의 곳간

여호와는 귀금속은 없애 버리지 말라고 지시하십니다. 그 대신, 귀금속은 여호와의 곳간 안에 보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이 그 귀금속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20절, 이에 백성은 외치고

히 11:30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칭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 6:2~5에 제시된 여호와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절에 언급되었듯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21절, 어린 아기까지 죽이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는 잘못된 두 가지 개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먼저, 어린아이는 죄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인본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어린아이들도 모두 죄 가운데서 태어나며,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원죄적 입장에서 볼 때 어린아이 역시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십니다(욘 4:2). 그리고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합 3:2).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거나 죄악이 가득 차면, 반드시 심판을 내리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차기까지 심판을 연기하고 계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창 15:16).

따라서 우리는 여리고 성에 내려진 형벌의 잔인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멸망을 받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부패하고 타락했던 것입니다.

 

23절, 라합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이것들은 여호와에게 온전히 바쳐야 하는 것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것은 정탐꾼들이 2:14, 17~20에서 라합에게 약속한 것과 일치합니다. 라합과 그녀의 친족이 모두 이스라엘 진영 밖에 머물렀던 것은 분명히 잠정적인 조치였을 것입니다(참조, 6:25). 아마도 의식적으로 정결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라합과 라합의 가족은 진영 밖에 일정 기간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참조, 레 13:46).

 

26절, 저주를 받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나중에 여리고 성을 다시 세우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하게 합니다. 이 맹세는 가나안 족속의 도시 여리고 성이 맨 처음으로 함락된 것에 대한 상징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하신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 줍니다. 또한 여리고 성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성을 다시 건축하거나 다시 요새화하는 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저주는 왕상 16:34에서 실현됩니다.

'달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여리고는 재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참고로 'בית-שמש'(벧세메스)는 '해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여리고 성이나 성문을 재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이 예언된 비극이 히엘에게 일어났는데, 그가 여리고의 터를 쌓을 때 맏아들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왕상 16:34).

 

 

여호수아 6장의 새벽 설교 주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1-7절)

여리고 성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굳게 닫힌 여리고 성의 문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모두가 긴장하고 전쟁의 두려움 속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벽을 무너뜨릴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데 상상하지 못한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백성들이 뒤를 따라 단순히 성벽을 도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 해결의 방법은, 문제 해결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들 중에서 여리고 성과 같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요?

 

승리를 외치라(15-21절)

매일 한 번씩 성벽을 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고 양각 나팔을 불며 함성을 지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명령은 승리를 위한 전략입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하나님은 불가능까지도 가능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함성을 지르라고 명령하셨는데, 이 함성은 "승리의 함성"입니다. 

우리도 매일 여리고 성과 같은 장애물을 마주하고 영적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전략대로 순종한다면, 어떤 문제와 전투 속에서도 승리를 외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라합의 가정(22-27절)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의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을 멸망시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정, 라합의 가정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미 정탐꾼들과 맺었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이 멸망 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을 여리고가 결코 감당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멸망 속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우리 가정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 때 하나님은 나의 가정뿐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까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참고할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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