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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07 사사기 주석및해설

사사기 2장, 죄와 심판과 구원의 반복 - 구조와 주석, 새벽설교주제

by OTFreak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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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2장새벽설교주제
사사기 2장 주석, 새벽설교주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가나안 족속들과 타협하고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 중에 가나안의 종교까지 받아들여,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불순종과 배반의 결과는 심판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사기 2장의 구조와 주석과 새벽설교주제를 정리하였습니다.

 

 

사사기 2장의 구조와 주석, 새벽설교주제

 

 

사사기 2장의 구조

 

1절-5절, 이스라엘 불순종과 그 결과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에 대해 책망하고 그에 따른 저주를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울며 회개합니다.

 

6절-10절,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과 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있던 때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분배된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그의 세대의 믿음의 백성들이 모두 죽고 난 이후,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1절-23절, 반복되는 죄악의 모습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그들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세우셔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죄악을 반복하게 됩니다.

 

 

사사기 2장의 해설

 

1절-5절,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를 비난함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다음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대적들 사이에 살게 하셔서, 대적들에 의해서 여러 가지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단락에서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를 하게 된 뿌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집니다.

 

1절,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를 지적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사사기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납니다(5:23, 6:11, 12, 20~22, 13:3, 13, 15, 16, 18, 20, 21). 여호와의 사자는 때때로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6:22~23). 이는 아마도 하나님은 자기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지 않으며,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그 사람은 죽을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 때문일 것입니다(출 33:20. 삿 6:22). 하나님이 임명하신 사자(מלאך, 말라크)로서, 이 사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합니다(창 16:7, 출 3:6). 아마도 이 사자는 출 23:20~23에서 여호와가 모세에게 약속한 사자와 동일한 존재일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셨을 수도 있습니다. 길갈은 요단강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요단 강을 건넌 다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 안에서 이곳에 처음으로 진영을 설치했습니다(수 4:19).

 

2절-3절, 언약을 맺지 말라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 나라들과 절대로 언약을 맺지 말며, 또한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고 명령하셨습니다(2절).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신들은(예를 들면, 이방 종교의 의식 등을 통해서-삿 8:27)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무가 될 것입니다(3절). 여호와는 이와 같은 위험 요인을 이미 경고하셨습니다(출 23:33: 민 33:55: 수 23:13).

 

5절,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여호와에게서 책망을 듣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4절). 그러자 하나님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5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와 같은 희생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1~15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에게 등을 돌리고, 오히려 우상들을 숭배하는 풍습에 점점 더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2장 6절-3장 6절, 지속적인 배교 행위와 그 결과

이 부분은 사사기의 머리말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삿 1장은 이스라엘이 점점 더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고 밝혔습니다. 삿 1장의 내용을 전제하면서,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와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에 대해서 신학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그리고 2:16~23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점점 더 사악한 방향을 향해서, 주기적인 방법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묘사합니다. 특별히 2:19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다"라고 요약적으로 표현해 줍니다. 그리고 3:1~6은 2:14~15, 21~23에 언급된 형벌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형벌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려는 것입니다(2:22, 3-1, 4).

 

6절-10절, 여호수아의 죽음과 곧 이어지는 배교 행위

여기 이 구절들은 수 24:28~31의 장면을 다시 보여 줍니다. 또한 이 절들에서 보여 주는 장면은 사사기의 머리말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죽었습니다(삿 1:1). 하지만 여호수아와 관련된 정보를 다시 알려 주면서, 이 짧은 단락은 이어지는 배교 행위를 소개해 주려는 것입니다.

 

10절,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수아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특히 수 24:31). 그러나 여기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 그림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바뀝니다. 여호수아의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신 일을 포함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언급됩니다(비교, 사 2:7).

 

11절-23절,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 하나님의 은혜와 진노의 형식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됨

이 부분은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배교 행위와 그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는 형식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 부분은 다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와 하나님의 진노(11~15 절)
  2.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지만, 이스라엘은 또다시 배교 행위를 함(16~19절)
  3. 하나님이 진노하심(20~23절)

첫 번째와 세 번째 단락은 서로 비슷합니다. 곧 이 두 단락은 먼저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에 대해서 묘사하고, 그다음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벌하셨는지 언급합니다. 하지만 세 번째 단락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채 마 무리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락은 사사기의 나머지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을 요약적으로 제시합니다. 곧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사사들을 연속적으로 일으키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다음,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집니다.

 

11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를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이 표현은 사사기 전체에서 자주 나타납니다(3:7, 13, 4:1, 6:1, 10:6, 13:1). 또한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의 왕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 표현은 열왕기 상하에서도 여러 번 나 타납니다(예, 왕상 15:26, 34; 왕하 21:2). 이스라엘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에게 등을 돌리는 성향을 보여 줍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몇몇의 경건한 지도자들(통치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가까스로 이방 민족들의 타락한 종교와 문화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13절, 아스다롯

아스다롯(עַשְׁתֹּ֫רֶת, 아쉬타로트)는 풍요와 사랑과 전쟁을 주관하는 여신으로서, 아스다롯은 바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10:6: 삼상 7:4, 12:10). 고대 가나안의 문헌에는 '아쉬토레트'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헌에서 이 여신은 '이쉬타르'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고대 가나안 종교에 대해서 묘사하는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도 이 여신이 언급됩니다.

 

15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여호와는 그들을 대적들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고 진지하게 주의를 주셨습니다(신 28:25: 수 23:13). 또한 여호와는 이 대적들(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와 덫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출 23:33: 신 7:16. 특히 민 33:55).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에, 불순종하던 이스라엘에게 고통과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통해서, 여호와의 이와 같은 경고는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삿 2:14~15, 21~23).

 

16절,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비록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사사들의 주요 역할은 군사적인 것이었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원하시려고, 사사들을 보내셨습니다.

 

17절, 음행 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저버리고 다른 이방신들을 따라간 것은 음행을 한 것으로 비유적으로 표현됩니다. 이 비유적인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음란한 행위를 했다고 지적합니다(겔 16장 및 23장). 또한 호세아의 사역은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호 1~3장). 여호와에게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그들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며, 또한 그들에게 꼭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8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왜냐하면 여호와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들에게 내어 주신 다음(삿 2:14~15), 여호와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이 대적들에게 더 이상 압박과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그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참조, 10:16).

 

20절, 이 백성(הגוי הזה, '하고이 하제)

문자적으로 이 용어는 '이 나라'를 뜻합니다. 이 히브리어 명사(גוי, '고이')는 원래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예, 21, 23절, 3.1), 대체로 구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스라엘을 가리킬 때 '백성'(עם, '암', 보다 친일한 의미가 담겨 있음)이라고 언급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이 나라'라는 표현에는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표현은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에게 혐오감을 품고 있으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제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여기시는 것입니다.

 

21절-22절, 나도......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21절)

여호수아 23:13에서 여호수아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했습니다. 이 절은 하나님의 그와 같은 경고의 말씀을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이 경고의 말씀은 삿 2:23에서 실현됩니다.

 

 

사사기 2장의 새벽설교주제

 

깨어진 언약(1-5절)

여호와께서는 족장들과 맺은 언약을 이행하셨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했으며 특히, 가나안 사람과 계약을 맺지 말아야 했습니다(출 23:32). 하지만 그들은 언약을 어겼으며 그 결과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하나님은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사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이 돌아설 것을 끊임없이 권고하셨으며,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해 새 언약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깨어진 적이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더욱 강력하게 세워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언약을 깨는 사람입니까?

 

가시와 올무(1-5절)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책망하시고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으로 맺어졌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약속을 맺고 함께 어울려 살게 됨으로써,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가시와 올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책망은, 이스라엘을 걱정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깨닫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때로는 우리 앞에 놓인 가시와 올무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인정하십니까?

 

배반과 긍휼(11-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쫓아내지 못하거나 쫓아 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더 이상 섬기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배반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이방민족들을 보내십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괴로워하며 회개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사들을 보내셔서 구원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풍요의 신들을 바라보고 섬기게 된 것처럼, 오늘 나도 세상의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참고할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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