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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이번 주의 교회 절기

빌립보서 1장 3절-11절, 지식과 총명으로 기다리라 - 대림절 둘째주일 설교

by OTFreak 202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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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둘째주일 설교
빌립보서 1장 3절-11절, 지식과 총명으로 기다리라

 

 

대림절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날입니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오늘 우리는 만왕의 왕이요 심판의 주인이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지식과 총명으로 살아가야 함을 정리하여 대림절 둘째 주일 설교로 나눕니다.

 

 

빌립보서 1장 3절-11절, 지식과 총명으로 기다리라

 

 

목차

     

     

    1. 설교 전 찬송

     

    새찬송가 104, 곧 오소서 임마누엘

     

     

    2. 롤랑 바르트, 기다림

     

    중국의 한 선비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선비에게 만일 선비님께서 우리 집의 창문 아래에 있는 의자에서 백일 밤을 기다리신다면, 저는 선비님의 여인이 되겠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선비는 그날부터 이 여인의 집의 창문 아래에 있는 의자에서 밤마다 기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99일째 되는 날 밤, 선비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나 버렸습니다.

    왜 선비가 99일째 되는 밤에 떠나버렸을까요? 하루만 더 기다렸다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여인이 되는데 왜 하루를 참지 못했을까요? 혹시 여인이 자신의 사랑을 거부할까 봐 두려웠을까요? 선비가 날짜를 잘못 세었기 때문일까요? 집에 급한 택배가 왔다고 연락이 왔던 것일까요?

    선비는 99일 동안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은 사랑하는 여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여인의 사랑을 기다리는 것일까, 선비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백일이 되면 여인의 허락은 받겠지만, 여인의 사랑까지 얻을 수 있을지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선비가 99일 동안이나 기다리는 동안, 여인이 선비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밤마다 밤이슬을 맞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선비를 99일 전에 선비에게 찾아갔을 것입니다.

    롤랑 바르트라는 사람의 사랑의 단상중에 기다림에 나오는 한 부분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선비와 같이 기다리다가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기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변함없는 사랑을 가지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3. 주님을 기다리라

     

    사도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우리를 도우라고 요청하는 환상을 보고서 방향을 바꿔 도착한 첫 번째 장소가 빌립보였습니다. 이 곳에서 기도의 장소를 찾던 바울과 함께한 일행들은, 루디아라는 자색 옷감을 판매하는 여성 사업가를 만나게 됩니다. 루디아는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후, 자신의 집에 바울을 데리고 감으로써 빌립보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루디아라는 여성의 집에서 시작한 빌립보교회를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이 주축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 갔었는데,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앙의 분쟁이라기보다는 일하는 방식을 놓고서 두 사람이 분쟁했던 것 같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다투자 교회도 분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2절에서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랑하던 교회인 빌립보교회가 다툰다는 소식으로 인하여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써서 문제 해결을 위한 권면을 합니다. 바울의 권면의 편지의 서론의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데,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지금껏 믿음을 잘 지키고 바울의 감사의 제목이 되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 된 마음으로 복음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잘 지켜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본문의 10절을 보십시오.

    빌립보서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때가 이를 때까지, 하나가 되어 선한 것을 분별하고 허물 없는 거룩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 모두는 대림절 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은 2천년 전에 오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면 되었지, 또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요? 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일까요?

    그 이유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2천년 전,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눅’(눅 3:4)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외쳤습니다. 주님 오심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왜 주님 오심을 준비하라고 했을까요? 누가복음 36절을 자막을 보며 같이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2천 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니, 주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세례 요한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다시 오실 주님은 구원의 주가 아니라,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며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반대로, 주여 주여라고 외치지만 그 삶이 주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영원한 심판을 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은 심판의 주님이시며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언약의 사자가 임하시는 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함께 말라기 32절을 읽겠습니다.

    말라기 3: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오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말라기 3장 2절과 같이, 심판의 날이므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때에는 아무도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 삶에서 선하고 바른 것을 구별하며 주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쓴 성도들은 의롭다 인정받아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5.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사도 바울은 주님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도록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신앙을 지키라고 빌립보교회 성도와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주님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바울은 두 가지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지식으로

    먼저 바울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지식을 더 점점 더 풍성하게 가질 수 있도록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 나타난 지식은 헬라어 성경에서 ‘ἐπίγνωσις’(에피그노시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ἐπίγνωσις’(에피 그노시스)란,πίγνωσις’(에피그노시스)란 ‘분명하게 하는 것’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어와 영어와 수학과 같은 세상적 지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한 지식, ‘ἐπίγνωσις’(에피 그노시스)는πίγνωσις’(에피그노시스)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며, ‘구원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22천 년 전, 유다 베들레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구원은 어디에서부터 나옵니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받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의 선한 행위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지식을 가지고 주님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2) 모든 총명으로

    바울은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바른 지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라 권면하면서, 아울러 모든 총명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욱 풍성하게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9절에서 지식에 이어서 말합니다. ‘총명이란, 헬라어로 ‘αἴσθησις’(아이스데시스)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을 의미합니다. ,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고 어떤 것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를 분별하며 무엇이 바르고 거짓된 것인지를 분별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옳고 선하고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옳고 선하고 바른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입니다(16:24). 예수님처럼 자신을 버려 남을 섬기는 삶(20:28)을 의미합니다. ,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과 희생입니다.

    반면에, 그르고 악하며 거짓된 것은 무엇입니까?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3:6)하는 모습이 잘못된 모습이며,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고 이름을 알리려는 교만한 모습(11:4)이 악한 모습입니다. 겉만 번지르 할 뿐, 그 속에는 온갖 악한 것들이 가득한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23:25)이 바로 거짓된 것입니다. 이같은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바로 9절의 총명입니다.

     

     

    6. 주님 오실 때까지 깨어 기다리라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 우리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주님 오실 때까지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다툼이나 분열, 위선과 교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옳고 선하며 바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마지막 때를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내가 재림 예수다라고 말하는 가짜들이 넘쳐납니다. 율법적이고 행위에 치우친 가짜 구원을 선언하는 곳도 넘쳐납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성도들을 유혹하고 넘어뜨리려 지금도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를 향하여 더욱 손가락질을 하며, 성도들은 성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포항의 한 교회의 목사 자녀 부부가 입양한 아이를 학대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나 코로나의 변종인 오미크론 확진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여 수도권의 거리두기를 다시 조여 매게 만든 인천의 교회 목사 부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른 지식이 없고 분별할 수 있는 총명함이 없기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오실 때까지, 바른 지식을 가지고 총명함으로 선과 악을 잘 구별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지나면서, 다시 오실 주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 우리 주님을 기쁨으로 기대하며 신실함으로 기다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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