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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40 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5장 7절 제5복, 긍휼히 여기는 자, 수요기도회설교 팔복설교

by 구약장이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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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새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성경 : 마태복음 5장 3절-12절
설교 : 제5복, 긍휼히 여기는 자

 

불쌍히 여긴 사람

   예전 2000년에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 청년부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보름 동안 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었고, 선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나라로 여행 비자로 들어 왔던 '알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행 비자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비자 만료 후에도 출국하지 않고 불법 체류자로 있으면서 우리 나라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법 체류자였던 그가 결국 붙잡히게 되는 일이 작년에 생겼는데, 영상을 먼저 함께 보겠습니다.

 

 

   제가 알리 씨라면 이같은 선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못하면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강제 추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어 고국에는 아내와 두 아이가 알리가 보내는 돈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필요한 돈을 벌어 보내야만 하는데, 추방되면 이제 돈을 벌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알리는 불이 났을 때, 주저함 없이 주민들에게 알렸습니다. 화상을 입는 상태였지만 불 속에서 고통 당할 주민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화재가 난 건물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동영상 찍기 바빴다고 합니다.

 

영주권을 받은 알리

   이후에 알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추방 되었을까요? 강제 추방에 대한 알리 씨의 딱한 상황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그가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수만 명이 동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7월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서 알리 씨를 의상자로 인정했고, 이에 따라 그는 법무부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고, 2020년 말 영주권을 얻은 그는 최근 인천 연수구의 고려인 마을로 이사해 인천 남동공단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알리 씨는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한자어로 "측은지심",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졌던 알리 씨는 의인이자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

   오늘 말씀이 "긍휼히 여기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영주권을 받은 카자흐스탄 사람인 알리 씨를 통하여, 긍휼히 여기는 것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두 가지의 중요한 핵심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알리 씨를 보십시오. 그는 불법 체류자인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그가 나서서 건물 안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그의 신분이 들통나게 됩니다. 그러면, 불법 체류자는 강제 출국 당할 수 밖에 없으니, 그에게는 손해입니다. 그것도 큰 손해입니다. 한국에서 일해서 번 돈을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야 하는데, 그와 같은 자신의 수입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이 났다고 알렸습니다.

   또한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불이 난 현장에는 알리 씨 외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불이 난 건물 속으로 뛰어 들면서 사람들에게 알린 사람, 긍휼을 행동한 사람은 알리 씨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진 찍고 동영상 찍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은 누구나가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 긍휼의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긍휼을 실천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형제 자매가 추운 겨울에 옷이 없어 벌벌 떨고 쌀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데 "뭐 하고 있노, 빨리 따뜻한 오리털 파카 입어라, 따뜻한 밥을 지어서 먹어라"라고 옆에서 말만 하는 것과 같은 사람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말합니다. 행하지 않는 긍휼 역시 온전한 긍휼이 아닙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해 주신 이야기 중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던 강도 만난 한 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위인도 제사장도 피해가 버린 그 사람을 누가 돌보아 주었습니까?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다가 그를 보고 불쌍히(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 여겼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여행 중이었기에 둘러 보아야 할 곳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들여 그를 돌봤고 자신의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하여 상처를 치료하였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의 손해를 감수하였습니다. 주막에 데리고 가서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까지 돌봐 달라고 부탁 하였습니다. 사라미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직접 행동하여 그를 돌봤습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자비"(엘레오스, ἔλεος)가 헬라어로, 오늘 본문의 "긍휼"(엘레에오, ἐλεέω)과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시간과 여행 일정과 기름과 포도주와 돈을 들여서 손해를 봐가며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기고 행동에 옮긴 자가 긍휼히 여기는 자이며, 그가 진정한 이웃입니다.

 

이기적인 인간

   그런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기적으로 살아야 손해를 보지 않고 내 것을 더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으로 살아야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손해봐야 하기 때문이며,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기적인 마음을 극복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

   이같이 우리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긍휼의 마음"은 우리를 먼저 긍휼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 그분을 따라 두 맹인이 쫓아 와서 고쳐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천국 복음을 듣고자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엎드렸고, 이방 사람인 가나안 여인이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간질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는 아들 때문에 가슴 치며 예수님 앞에 나온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나인 성에서 하나 뿐인 아들이 죽어 울고 있는 과부도 만나셨습니다.

   이들 모두를 만나시며 예수님은 공동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의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슬픔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셨고 행동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우리 주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약한 건강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적으로 어두워진 눈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세상의 유혹으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져 깨지고 다친 우리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세상의 목표가 사라진 이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무엇보다 죄로 인하여 소망 없이 살아가는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구원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나와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 때문입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을 베풀라, 긍휼의 마음으로 행동하라는 명령입니다. 오늘 말씀인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 예수님께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고 싶거든 내가 먼저 손해를 감수하고 행동으로 옮겨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먼저 사하여 주어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마 6:12).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더하여 주십니다(마 6:33). 먼저 죽어야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기적인 세상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정말 잘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칭찬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고 참된 영광을 얻고자 한다면, 안타까워 하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넘어서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긍휼을 행동으로 옮깁시다. 내가 먼저 긍휼히 여길 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이며,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며 필요한 것들을 더하여 주시며, 무엇보다 부활의 영광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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