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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이번 주의 교회 절기

마태복음 16장18절-19절 로마서 1장 16절 교회가 희망입니다, 제106회기 총회주일 예배설교(장로교 통합)

by OTFreak 2021.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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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5일 제106회기 총회주일 예배 순서, 장로교(통합)

Ⅰ. 예배로 나아감 예배 선언 | 인도자 오늘은 우리 총회가 제정한 제106회 총회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1912년 9월 1일 우리 총회를 세우시고 민족의 등불이 되게 하신 이래로 106회기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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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회 총회 주제: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성경 : 마태복음 16장 18절-19절, 로마서 1장 16절

설교 : 교회가 희망입니다

 

I. 비극의 땅에 복음이 찾아오다

내 어머니 같은 조국 대한민국

  서른에 청상이 되어 평생 못난 자식 바라보고 사시다 몇 년 전 하나님 나라에 가 계신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게는 어머니와 같은 또 다른 존재가 있다. 바로 내 조국, 대한민국이다. 누군가 내 심장을 쪼개면 한편에는 주님의 교회가 또 다른 한편에는 내 조국 대한민국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내 조국을 사랑했다. 내 심장 속에는 조국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어릴 적부터 뛰어 놀던 내 교회, 조국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내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찡해오며 나라와 교회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그 가슴앓이가 느껴진다.

비극의 땅에 평안의 복음이 찾아오다, 교회가 시작되다

  140년전 이 땅은 5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계 모든 열강들이 이 나라를 갑자기 떠났다.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배의 음흉한 계획들을 꾸미고 있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는 일제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1905년 일본이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그 뒤에는 미국과 일본의 은밀한 거래인 카스라테프트 밀약(Taft–Katsura agreement)이 숨어 있었다. 게다가 1907년 고종황제가 폐위되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합방이 일어났다.
  이 비극의 역사를 기어이 견디어 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 성령이 이 땅에 임하셨다. 1903년 여름 원산 바닷가에서 선교사 수양대회가 열렸다, 하디선교사로부터 시작된 회개를 통해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한국 강토를 불태웠다.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에, 같은 해 2월 서울의 승동교회에도 성령께서 찾아오셨다.
  고종이 헤이그 밀사사건의 책임을 지고 폐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뜻있는 젊은이들이 광화문 네거리를 돌며 땅을 도끼로 찍어가며 통곡했다. 그 시간에 교회에서는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일어났다. 예배시간마다, 기도시간마다 나라 지키기 못한 죄를 회개했다. 이 나라 주의 백성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라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했다. 온갖 미신과 귀신에 빠졌던 우리의 허물을 주님 앞에 회개했다. 치욕의 시간을 견디어 냈다. 눈물로 주님 앞에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1919년 3월 1일 인구의 1.3%, 겨우 20만 명에 불과한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3.1 독립만세 운동 시작되었다. 3.1 독립만세운동의 본부는 교회였다. 교회는 대한민국 독립의 씨앗이었다.
  처음부터 기독교는 고난 받는 이 백성의 친구였다. 우리가 의지할, 우리 민족이 붙들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가난한 땅에 희망의 복음이 찾아오다, 교회가 성장하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나 민영익과 동료들이 큰 부상을 입게 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마침 한국에 와 있던 알렌 의료선교사님의 손에 의해 외과적 치료를 받고 멀쩡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임금과 신하들이 충격을 받았다. “한국 땅에도 근대화된 병원을 세우자.” 알렌선교사를 초대 원장으로 광혜원이 설립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의료시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 속에 나라를 잃어버리고, 언어를 잃어버리고, 국권을 잃어버리고,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땅 덩어마저 빼앗긴 이 백성들 살리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 이 땅에 온 선교사들은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다.
  1884년 배재학당, 1885년 이화학당, 1910년 이화대학, 1915년 연희대학을 설립한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일제강점 기간 동안 세운 학교의 수는 609개나 된다. 감리교 선교사들이 200개의 학교를 세운다. 황무지 같은 이 땅에 선교사들에 의해 900여 개가 넘는 학교가 설립된다.
  그 외에도 교회마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자,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 민족의 희망이다.” 라며 주일학교 운동이 시작되었다. 동리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성경을 가르치고, 애국을 가르치고, 바르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된다고 바른 정신을 가르쳤다. 그것이 주일학교며 교회학교였다.
  일제의 만행과 수탈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 낙심하는 사람들,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그 어디에도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에 단 한 곳에서부터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교회다.
  교회 강단마다 희망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백성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면 희망이 있습니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비극의 땅에 희망의 복음이 선포되었다. 그때부터 이 나라가 이 민족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이 나라는 단 70년 만에 세계 경제규모 10위권에 진입하였다. 완전 폐허가 된 이 땅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어린 시절 굶어죽지나 않을까 염려하던 우리들이, 기아선상을 헤매던 우리들이, 이제 불어나는 몸무게를 걱정하며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세계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이다. 땅이 넓은가? 땅의 면적으로는 세계 110위에 불과하다. 지하자원이 있는가? 땅을 파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다. 그럼 과연 무엇이 우리를 복되게 하고, 이 나라를 부흥시켰단 말인가? 바로 복음이요, 교회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가 희망이다.

  얼마 전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가 한국 오천년 종교역사상 처음으로 제1종교가 되었다. 단 140년 만에 이룬 기적과 같은 일이다. 기대는 커졌고 영향력은 많아졌지만 140년이란 시간은 서구의 다른 나라의 역사에 비하면 아직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최근 미성숙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서 비판과 비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믿는다. 언제나 변함없이 아니 지금도 한국교회는 이 땅에 희망이다. 누가 뭐라 해도 한국교회는 민족의 희망이다. 교회는 세계 역사의 희망이다. 하나님께로, 교회로 민족이 돌아 오면 이 민족에게는 다시 희망이 있다.

 

Ⅱ. 내 교회를 세우리라

교회의 기원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교회를 남기고 하나님 곁으로 가신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주님께서 친히 천명하신다. 여기서 소유격이 중요하다. ‘나의 교회를 세운다.’ 이 땅에 큰 교회도 있고 작은 교회도 있다. 오래된 교회도 있고 이제 막 시작한 교회도 있다. 모두 주님의 교회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하셨다. 가이사랴는 황제의 이름이다. 빌립보는 그 성의 왕이다. 이 도시에는 황제가 곧 하나님이다. 황제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분봉 왕이 하나님이었다.
  귀신이 득실거리는 이 도시 한복판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무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 도시 한복판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도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메시야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울먹이면서 주님 앞에 선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만이 메시야이십니다. 당신만이 희망입니다.”

교회의 기초

  에덴동산 이후 세상은 언제나 위기였다.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신 그때도 지금도 세상은 언제나 위기였다. 문제가 많은 세상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아 하나님! 우리 교회, 이 세상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면 성경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하다. 문제도 하나요 해결책도 하나다. 문제는 죄의 문제요, 해결책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이다. 그래서 ‘오직 복음’이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다른 복음은 없나니 ...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8)
  세상에 희망이 사라져갈 때 언제나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었다. 온 땅이 흔들릴 때도 교회는 언제나 세상의 이때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베드로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너는 베드로라”여기서 베드로의 의미는 조약돌이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얘기하는 것이다. “반석 위에”라는 말씀에서 반석이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이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주님은 그 분의 십자가 위에, 피 흘림 위에, 부활하신 터전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
  우리는 연약하다. 쓰러지고 넘어진다. 문제가 많다. 조롱받는 사람들이다.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를 운행하신다. 희망을 만들어 가신다. 문제가 떠나고 온갖 절망이 사라지고 이 땅에 희망이 선포된다. 교회는 희망이다.

교회가 희망이 될 수 있는 이유

  예수님은 교회에 두 가지 선물을 주셨다.
  첫째로 교회는 기도라는 천국열쇠를 가진 공동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9) 내가 네게 천국열쇠를 맡기겠다.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 듣고 맬 것이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내가 듣고 하늘에서 풀게 될 것이다.
  이 교회에는 천국 열쇠가 있다.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지옥의 문이 닫히고 되고 천국 문이 열리게 된다. 우리의 인생에 짊어지고 살아왔던 온갖 저주가 떠나게 된다.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된다. 질병과 가난이 떠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절망이 사라지고 희망의 문이 열리게 된다.
  둘째로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힘을 가진 공동체다(마 16:18). 우리를 괴롭히는 온갖 더러운 영들이, 우리를 실패로 몰아가는 절망과 좌절들이, 우리를 쓰러뜨리고 넘어뜨리는 온갖 질병과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하면, 말씀 붙들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 권세 붙들고 문제 앞에 당당히 서면 우리를 괴롭히던 음부의 권세는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여, 당당하게 일어나라. 성도여, 말씀 붙들 고 나가라. 기도의 능력 받아서 나가라. 믿음을 가지고 나가라. 성령의 검을 들고 나가라. 우리가 믿음으로 가는 곳곳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갔다.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식인종이 문화인으로 바뀌었다. 해적 떼들이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으로 바뀌었다.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희망과 생명이 태어난다. 가난한 나라가 변하여 부유한 나라가 된다. 서구의 모든 선진국이 기독교 국가들인것이 우연일까?

 

Ⅲ. 세상을 치유하는 능력 : 복음

위기의 시대 필요한 것은 복음이다

  에덴동산 이후 세상은 언제나 위기였다.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신 그때도 지금도 세상은 언제나 위기였다. 문제가 많은 세상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아 하나님! 우리 교회, 이 세상 어떻게 할까요?’ 물어 보면 성경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하다. 문제도 하나요 해결책도 하나다. 문제는 죄의 문제요, 해결책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이다. 그래서 ‘오직 복음’이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다른 복음은 없나니 ...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8)
  세상에 희망이 사라져갈 때 언제나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었다. 온 땅이 흔들릴 때도 교회는 언제나 세상의 버팀목이었다. 선교 초기, 일제 강점기, 해방과 6.25전쟁 이후 가난했던 시절에 교회는 복음, 기쁜 소식이었다. 오늘의 위기시대에 한국교회가 이 땅의 희망의 소식, 복음이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아드폰테스(Ad Fontes),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 복음이란 말처럼 자주 사용하는 말도 드물다. 어떤 이들은 복음을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총체적인 평안인 샬롬, 곧 우리 영혼이 잘되고, 우리 마음이 건강하고,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우리의 몸이 건강하게 되어 금생과 내생에 온전한 구원을 얻는 것이 복음이라 받아들이기도 한다.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 “바사르”(בשר)란 단어나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도 “좋은 소식을 전한다, 기쁜 소식을 전하다”는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 기쁜 소식이 무엇일까?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 사건을 의미한다. 신학적으로 이름하여 이것을 케리그마(Kerygma)라 한다. 케리그마란 교회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맡겨 주신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나아가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요약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마가복음 1장 15절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다.
  사도들은 복음이란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요, 구세주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안에, 기독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창조가 없는 종교, 부활이 없는 종교는 하나님 나라를 말할 수 없고 구원을 말할 수가 없다. 그 엄청난 구원 사건 안에 내가 들어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세상에 기적이 많고 많지만 내가 구원받았다는 기적보다도 더 큰 기적은 없다. 복음 안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공동체가 치유 되고 세상이 달라진다고 믿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곳에 구원의 소식이 있다 전하는 것은 거짓 복음이며, 거기에는 저주가 따를 것이라 단언한다.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로마의 황제가 세상의 구원자로 알려진 그때에, 사도 바울은 로마를 향하여 담대히 선전포고를 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복음은 능력이다

  ‘능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δύναμις)라고 한다. 모든 죄와 악을 부수고 우리를 구원하는 폭탄을 의미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제4차 산업 혁명시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보혈 안에 있다는 믿음이다.
  태양이 1초 동안 방출하는 에너지를 정확하게 모으면 전 세계인이 백년을 쓰고도 넉넉히 남을 양이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 한 방울이면 온 인류를 구원하고도 넉넉히 남음이 있다. 그 보혈에 구원의 능력이 있다. 복음만이 세상을 구원하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뒤나미스 곧 능력이요, 마스터키가 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우리는 우리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능력이기에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로마서에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사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던 청년이었다.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구세주라니? 그가 십자가에 죽고 피 흘림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니? 그가 부활하셨다니? 그는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믿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핍박 하기 위해 다메섹 도상을 넘어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외쳤던 것이다.
  당시 로마는 영원히 세계를 지배할 줄로 알았다. 로마 황제는 신의 아들이요, 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알았다. 바울은 믿었다. 로마는 무너진다. 오직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할 것이다. 로마 황제는 인간이다.
  오직 구세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한 분이시다.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죽음만이 대속의 죽음이요 그를 믿는 모든 자는 구원을 받는다.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은 승천하셨다. 역사를 다스리신다. 다시 심판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복음 전하는 것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선언하고 있다. 교회의 목적은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는 일이요. 복음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것이다.

 

Ⅳ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워져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교회는 큰 어려움에 빠져있다. 내적인 어려움과 외적인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어찌 보면 그동안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한국교회는 가시적 교회외형의 절대화와 물질주의, 번영복음에 빠져 본질을 놓쳐버렸다.
  보리새우는 성장하면서 그 껍질을 벗는다. 껍질을 벗을 때마다 성장한다. 그러나 껍질이 너무 두꺼워져 더 이상 껍질을 벗지 못하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껍질을 벗는다는 말을 신앙의 용어로 바꾼다면 새로워진다는 것이 아닐까?
  교회는 그동안 추구해왔던 성장주의 물질주의 번영주의의 껍질을 벗고 새로워 져야 한다. 그래야 산다. 교회에 주신 소명을 다시금 굳게 붙잡아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비춰야 한다. 고통 속에 썩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사도행전 2장으로부터 시작된 초대교회는 기존의 유대교회와는 확연히 다른 공동체였다. 새로운 교회의 출현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유대교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복음으로 새로워진 교회이다.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초월한 사랑의 신앙공동체이며 죄인들을 구원하는 은총의 통로였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세상경영 방식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 종이 되고자 자발적 섬김과 포기를 실천하는 공동체였다. 세상에 없던 새 길을 만들어 가는 공동체였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대면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껍질들을 벗어버리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희망의 길을 만들어 가야할 의무와 책무를 버리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복음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복음은 믿는 자들만이 소유하는 전유물이나 비밀스런 소식이 아니다. 복음은 언제나 공동체적이다. 복음은 믿는 자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복음은 세상의 법칙에 끌려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이제 시작되었다고 알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의와 정의의 법칙이, 공평과 사랑의 법칙이, 용서와 화해의 법칙이, 섬김과 희생의 법칙이 적용되는 나라에 그들을 동참시킨다.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하던 때 우리나라에 복음이 선포되었다. “이제 하나님이 이 나라를 다스리신다.” 우리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는 선포이다. 하나님 통치의 선포는 곧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일에 믿는 이들을 참여시켰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복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온 백성을 독립운동에 자발적으로 동참케 했다. 그 겨자씨 같은 작은 참여들이 마침내 대한독립을 이루어 내었다. 복음으로 세상의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세워진 것이다. 복음은 삐뚤어지고 뒤틀린 것을 바르게 한다. 복음은 믿는 이들만 이롭게 하지 않는다. 복음은 공동체를, 세상을 이롭게 한다.

 

Ⅴ. 단장(斷腸)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복음을 향한 열정

  제106회기 총회 주제는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이다. 복음으로 교회가 새로워지고, 복음으로 세상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비전을 담고 있다. 분명 주제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가슴에 타오르는 복음의 불덩어리 열정이다. 이 전방위적인 위기시대에 오직 복음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오직 복음으로 우리 교회를 일으키리라. 오직 복음으로 내 민족을 살리리라. 복음의 불덩어리가 되고자 하는 열정이 우리 가운데 필요한 때이다.
  진나라 때에 환온이라는 장수가 촉을 징벌하기 위해서 군사들이 배를 타고 양쯔강을 올라가고 있었다. 삼협이라는 협곡을 지날 때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는 울며 배를 쫓아 100여리를 따라온다. 한 계곡 바위에서 새끼가 있는 배 위로 몸을 날려 뛰어 들어왔다. 배에 오르는 순간 원숭이는 피를 토하고 죽는다. 병사들이 원숭이 배를 가르자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기 새끼를 구하기 위해 울부짖으며 100여리를 쫓아오는 사이 창자가 갈가리 찢겨졌던 것이다. 이것을 일러 “단장(斷腸)”곧 창자가 갈가리 끊어지는 아픔이라고 한다.
  ‘단장’을 표현하는 성경의 용어가 있다. “Compassion” 이라는 단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Passion”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고, 살 찢기시고, 못 박혀 돌아가신 그 고통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면, 복음을 믿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증거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당하는 고통을 마땅히 감당해야 된다. 그 사람이 바른 신앙인이요. 기독교인이다.

다시 한 번 더 복음으로

  총회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절절히 기도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새로워지기를 주님 앞에 다짐해야 한다. 사회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내 민족 교회, 조국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창자가 끊어지는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교회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젊은이들, 사랑하는 내 자녀들이 돌아오도록 울부짖는 어버이로서 단장의 기도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지금이야 말로 교회가 세워지고,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이 이 세상을, 역사를,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우리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한 애통의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의 몸이 갈가리 찢겨져도 이 교회가 살 수만 있다면 복음을 위해서 제물이 되고자 하는 헌신과 열정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한 기도를 주님은 반드시  들어주신다. 다시 한 번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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