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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18 욥기 설교

욥기 9:5-24, 재판관 앞에서 의인인가 악인인가(찬257장) - 수요기도회

by OTFreak 2020.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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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9:5-24, 재판관 앞에서 의인인가 악인인가(찬257장) - 수요기도회

욥기 9:5-24, 개역개정

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7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14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15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욥기 9:5-24, 우리말

5 그분이 진노해 산들을 옮기고 뒤집으시더라도 그들은 알지 못한다네. 
6 그분은 땅을 그 자리에서 흔드시고 그 기둥을 떨게 하시며 
7 그분이 해에게 명령하시면 해가 뜨지 않으며 별빛까지도 봉인해 버리신다네. 
8 그분은 혼자 하늘을 펴시고 바다 물결을 밟으신다네. 
9 그분은 북두칠성과 삼성과 묘성과 비밀의 남쪽 방을 만드신 분, 
10 알 수 없는 큰일들을 하시는 분, 셀 수 없이 많은 기적을 보이시는 분 아닌가. 
11 그분이 내 곁을 지나가셔도 내가 보지 못하고 그분이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내가 깨닫지 못한다네. 
12 이보게, 그분이 빼앗아 가시면 누가 막겠는가? 그분께 ‘무엇 하시느냐?’고 누가 물을 수 있겠는가? 
13 하나님께서 진노를 억누르지 않으시면 라합을 돕는 무리들도 그분 아래 굴복한다네. 
14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분께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골라 그분과 논쟁하겠는가? 
15 내가 의인이었어도 그분께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내 재판자에게 간구할 뿐 아니겠나.
16 내가 그분을 불러 그분이 내게 응답하셨다 해도 나는 그분이 내 음성을 듣고 계시리라고 믿지 못하겠네. 
17 그분이 폭풍으로 나를 상하게 하시고 아무 이유 없이 내게 많은 상처를 내시니 말이네. 
18 숨 돌릴 틈도 없이 쓰라린 고통으로 나를 채우신다네. 
19 힘으로 하자니 그분은 힘이 세시고 재판으로 하자니 누가 그를 불러내 주겠는가? 
20 내가 아무리 나를 정당화해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할 것이요, 내가 아무리 스스로 온전하다 해도 내 입이 내 죄를 증명할 것이네. 
21 내가 온전하다 해도 내가 나 자신을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정말 싫을 뿐이네. 
22 모든 게 다 똑같은 게야.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던가? ‘그분은 온전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멸망시키신다’고 말일세. 
23 재앙이 갑자기 닥쳐 죽게 돼도 그분은 죄 없는 사람이 시험당하는 것을 비웃으실 것이네. 
24 이 땅이 악한 사람의 손에 떨어져도 그분은 그 땅의 재판관들의 얼굴을 가리실 것이네. 그분이 아니면 대체 누구겠는가?

재판관 앞에서 의인인가 악인인가

 

   사람은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성과 감정은 사람이 살아 있는 한 계속적으로 함께 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상황을 잘 헤쳐 나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완전히 감정에 사로 잡혀 일을 그르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왔을 때, 내 기도에 하나님께서 전혀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전혀 소용이 없고, 상황은 더 나빠지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은 보통 두 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실꺼야.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

혹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가 보다. 하나님은 없다"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아마 이 두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첫 번째 반응은 이성적 반응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 반응은 감정적인 반응입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놓고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포기하겠다, 혹은 화가 난다는 감정의 표현입니다.

   본문에서 욥은 두 번째, 감정적인 반응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9장의 1절부터 4절까지는, 모든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로울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의로우시다 라며 이성적인 신앙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들어와서는, 욥이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감정적인 분노와 답답함과 의심들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욥 9:16, 개역개정)
내가 그분을 불러 그분이 내게 응답하셨다 해도 나는 그분이 내 음성을 듣고 계시리라고 믿지 못하겠네.(욥 9:16, 우리말)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즉, 아무리 부르짖어도 백날 기도해도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모른 척하시는 무정한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못 믿겠다고 말합니다.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욥 9:22-23, 개역개정)
모든 게 다 똑같은 게야.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던가? ‘그분은 온전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멸망시키신다’고 말일세. 재앙이 갑자기 닥쳐 죽게 돼도 그분은 죄 없는 사람이 시험당하는 것을 비웃으실 것이네.(욥 9:22-23, 우리말)

   이 말들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알았는데, 지금보니 전혀 공의로우시지 않으신 분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무죄하며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내가 이 재난과 고통 속에서 괴로워 하는데도 하나님은 오히려 비웃고 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런 불공평한 일이 그대로 나에게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시겠는가 라며 24절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욱 불평 불만을 털어 놓고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 이유 없는 고난에 대한 욥의 이러한 감정적 반응,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평 불만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욥기는, 욥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적인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인이었던 그도 때로는 이성적인 믿음을 말하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불평을 하나님께 늘어 놓았음을 말합니다.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의인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모든 말과 행위에 대한 재판관으로 계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우리 모두가 섭니다. 믿음을 잘 지켰던 때도 있지만, 오늘 본문의 욥처럼 하나님 너무하시다 불평하며 하나님이 이러실 수 있느냐며 삿대질을 했을 때도 있는 우리가 감찰하시는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나 홀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면, 당연히 "유죄"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 옆에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개역개정)

   대언자란, 대신 말해 주는 분, 변호사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지만 연약하니 용서하여 달라고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대신 변호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인해 나의 변호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이 계속될 때, 욥과 같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일로 죄책감을 느끼고 신앙을 잃어 버리지 않길 예수님은 바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적극적으로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서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재판관 앞에서 죄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죄인인 나의 옆에는 변호해 주시고 대언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늘 이 밤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나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없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대언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가슴 속에 있는 것들, 이성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모두 솔직하게 쏟아 놓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주의 보혈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찬송가 257장을 찬양하며 기도회로 나아가겠습니다.

찬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_새찬송가악보_PPT.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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