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6편 새벽예배 설교문입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과 방백을 의지하지 말고, 야곱의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는 자가 누릴 복에 대해 전합니다.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묵상하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삶의 비결과 구체적인 실천 적용을 담았습니다.

시편 146편 1절-10절, 인생을 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
서론 : 인생을 의지했던 아사 왕의 실패
유다의 왕 아사는 재위 초기, 구스 사람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승리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 말년, 북이스라엘이 쳐들어왔을 때 그는 변했습니다. 성전의 은금을 꺼내어 이방 나라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 대신 '방백(군주)'을 의지한 것입니다.
선견자 하나니가 이를 책망하자 아사는 오히려 그를 옥에 가두고 백성을 학대했습니다. 결국 그는 발에 병이 났을 때조차 여호와께 구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의지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찾으시지만, 아사는 끝내 사람과 의술이라는 '인생의 힘'을 의지하다 무너졌습니다. 오늘 시편 146편은 바로 이러한 인간 의존의 허무함을 경고하며,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배경과 본문의 구성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는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끝나는 '할렐루야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포로 귀환 이후 성전 재건과 국가 회복의 과정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백성들은 페르시아의 고관들이나 인간적인 지도자들에게 기대를 걸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인은 눈에 보이는 권력자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영원한 통치자이심을 선포합니다.
이 시간 "오직 여호와를 소망으로 삼는 삶"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첫째, 헛된 인생,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라
시편 146:3-4,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시인은 '귀인(방백)'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귀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디브(נָדִיבּ)'은 고관, 지도자, 혹은 영향력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라고 규정합니다. '인생'으로 번역된 '아담(אָדָם)'은 '흙'에서 온 단어로, 인간의 본질적인 연약함과 유한함을 내포합니다. 그들의 호흡(רוּחַ, 루아흐)이 떠나면, 그들의 모든 계획과 사상은 즉시 사라집니다.
이사야 2장 22절에서도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권력은 코끝의 호흡처럼 위태롭습니다. 우리는 종종 유력한 사람, 소위 '라인'을 잘 타야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뉴스들을 보십시오.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기업 총수나 정치인들이 하루아침에 구속되거나 몰락하여 그들을 따르던 자들이 함께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봅니다. '낙하산 인사'가 줄이 끊어지면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영향력은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화려해 보이는 스펙과 인맥이라는 '썩은 동아줄'을 잡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들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둘째, 참된 복, 야곱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편 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인은 적극적으로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을 제시합니다. 바로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왜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아닌 야곱일까요? 야곱은 사기꾼 기질이 있었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으며, 늘 위기 속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격 없는 야곱을 택하셨고, 벧엘에서 그를 만나주셨으며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여기서 '도움'은 히브리어로 '에제르(עֵזֶר)'입니다. 이는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17장 7절은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바다와 그중의 만물을 지으신 전능자이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최근 경제 전망 기사들을 보면 '불확실성의 시대',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금리가 요동치고 부동산 시장이 불안할 때, 사람들은 자산(돈)을 도움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앞에서 화폐 가치도 흔들립니다. 우리의 진정한 '에제르'는 변동하는 경제 지표가 아니라, 야곱 같은 부족한 자도 끝까지 책임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뿐입니다. 그분께 소망(세베르)을 두는 자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 영원한 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
오늘 본문의 핵심 주제는 '약한 자를 돌보시며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7-9절에 나타난 억눌린 자를 정의로 다스리시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맹인의 눈을 여시는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이사야의 글을 인용해 자신의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시편 146편의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죄에 눌린 우리를 십자가 사랑으로 해방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같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통치하십니다.
이 복음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통치 방식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누구입니까? 오늘 하루, 우리 주변의 독거 어르신이나 도움이 필요한 환우, 혹은 마음이 상한 지체에게 따뜻한 안부 전화나 작은 반찬 한 가지라도 나누며 예수님의 '에제르(도움)'의 손길을 전해봅시다. 이것이 영원히 다스리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구체적인 삶의 예배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 146편은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을 보여줍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갈 인생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천지를 지으시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입니다. 세상의 방백들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습니다. 오직 야곱의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도움이시며 소망이십니다.
오늘 하루,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마십시오.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며 맹인의 눈을 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하나님을 나의 도움(에제르)으로 삼을 때, 주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과 승리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호흡이 끊어지면 사라질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야곱의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옵소서.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며, 오늘도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주님 손 꼭 붙잡고 세상 속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헛된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 두게 하소서.
- 경제적 위기와 삶의 문제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하소서.
-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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