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2장 1-26절 새벽예배 설교문입니다. 포로 귀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이 갖는 영적 의미를 살펴보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 예배의 회복,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다룹니다.

느헤미야 12장 1절-26절, 신실한 제사장들의 거룩한 헌신
서론
성경에는 수많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명단들 속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 말라기 3장 16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당신의 기념책에 기록해 두십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암흑기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를 회복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느헤미야 12장은 바로 그 영광스러운 이름들의 기록입니다. 세상의 역사책은 정복자와 권력자의 이름을 기록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는 예배자와 헌신자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이 새벽, 본문에 기록된 이름들이 단순한 과거의 명단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의 모델임을 깨닫고 우리의 이름 또한 하늘의 생명책에 빛나게 기록되기를 소망합니다.
배경과 본문
느헤미야 12장은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앞두고,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의 계보를 확인하는 중요한 장입니다. 앞선 11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안에 거주할 백성들을 결정했다면, 12장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을 나열합니다. 1차 포로 귀환을 이끌었던 스룹바벨 시대부터 느헤미야 시대까지 약 90년의 세월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영적 계보를 보여줍니다. 이는 성벽 재건이 단순한 건축 공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회복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첫째, 귀환한 제사장들의 거룩한 계보
본문 1절과 7절은 제사장들의 헌신에 대해 말씀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느헤미야 12: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여기서 '돌아왔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알라(עָלָה)'라는 단어의 맥락을 가집니다. 이는 물리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영적 상승을 의미합니다. 당시 바벨론은 안락한 삶이 보장된 곳이었지만, 이 제사장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선택했습니다. 원어적으로 '제사장(Kohen)'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며 거룩함을 지키는 자를 뜻합니다. 이들은 무너진 터 위에서 가장 먼저 예배의 제단을 쌓은 믿음의 선구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 에스라 2장에서도 이들의 명단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사람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기록하심으로 그들의 헌신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마치 전쟁기념관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명비와도 같습니다.
미국의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는 수만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지 모르나, 그 가족과 국가에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영웅들의 잊을 수 없는 기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념비에도 이처럼 편안함을 버리고 사명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의 이름이 새겨집니다. 오늘 새벽, 기도의 자리로 나온 여러분이 바로 이 시대의 영적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헌신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둘째, 찬양으로 섬기는 레위 사람들의 직임
본문 8절과 24절을 보면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느헤미야 12:24,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특히 24절의 '맞은편에 있어(נֶגֶד, 네게드)'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를 살려보면, 교대로 화답하며 찬양하는 조직적인 예배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찬양(הלל)'과 '감사(ידע)'는 레위인의 존재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즉흥적인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다윗의 명령대로' 행해진 철저한 순종과 질서 있는 섬김이었습니다. 역대상 25장에서 다윗이 수립한 찬양대의 전통이 포로기를 거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계승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릴레이 경주'와 비슷합니다. 앞선 주자가 바통을 떨어뜨리지 않고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어야 경기가 완성됩니다. 바벨론의 문화적 압박 속에서도 레위 사람들은 찬양의 바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단원이 바뀌어도 그들이 추구하는 소리의 본질과 지휘자에 대한 순종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에도 이런 영적 계승이 필요합니다. 부모 세대의 기도가 자녀 세대의 찬양으로 이어지고, 앞선 직분자의 헌신이 다음 세대의 섬김으로 연결될 때, 하나님의 성벽은 견고하게 서게 됩니다.
셋째,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많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명단은 결국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정표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죽음으로 인해 그 직분을 영원히 수행할 수 없었기에 대를 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보는 마침내 오실 영원한 대제사장을 예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3-24절은 명확하게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7:23-24,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느헤미야 시대의 제사장들은 율법을 따라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제물이 되시어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름들은 그림자요, 예수님은 실체이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의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혈통에 의한 레위인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거듭난 우리가 이 시대의 예배 담당자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입은 자로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삶의 현장이 곧 성전입니다. [실천 사항] 오늘 하루, 직장이나 가정에서 업무나 가사를 시작하기 직전에 "하나님, 이곳이 제가 섬겨야 할 성전입니다. 저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으니,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라고 짧게 기도하고 일과를 시작하십시오. 이것이 명단에 기록된 제사장들의 삶을 오늘에 되살리는 길입니다.

결론
느헤미야 12장의 긴 명단은 지루한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기라는 절망 속에서도 예배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셨고, 스룹바벨로부터 느헤미야에 이르기까지 신실한 종들을 통해 그 맥을 이어오셨습니다. 제사장들은 거룩함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은 찬양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세상의 화려한 전광판에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섬기는 그 자리에 있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가장 존귀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거룩한 자부심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헌신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격합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헛된 이름을 좇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 거룩한 이름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터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의 자리임을 깨닫고, 성실과 기도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만한 신실한 믿음과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기도의 바통, 찬양의 바통을 다음 세대에 잘 물려주게 하소서.
- 대한민국이 영적 침체를 벗어나 다시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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