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장 새벽예배 설교문: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성경의 인명 목록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과 숨은 일꾼의 영성을 묵상하고 살펴 봅니다. 문지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성도들에게 전하는 깊은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세상은 몰라줘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충분하다는 복음적 진리로 성도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세요. 15분 설교 전문, 예화, 결단 기도가 포함된 목회 자료입니다.

느헤미야 11장 1절-36절,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서론: 지루한 명단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사랑
할렐루야, 이 고요한 새벽, 주님의 전을 찾으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새벽 공기가 차갑지만, 기도의 자리로 나오신 여러분의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따뜻한 온기가 감싸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펼쳐 든 느헤미야 11장은 성경을 읽을 때 흔히 '고비'라고 불리는 장입니다. 3절부터 끝절까지, 우리가 발음하기도 힘든 수많은 사람의 이름과 낯선 지명들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전화번호부나 인구 조사 기록처럼 건조하고 지루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경에 '우연히' 기록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긴 지면을 할애하여,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셨을까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또렷이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역사는 왕과 장군 같은 영웅들만 기록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이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 '숨은 일꾼'들의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오늘 이 명단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큰 위로를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화려하지 않아도 '꼭 필요한 자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한 사람들의 직분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11절의 '스라야' 같은 하나님의 전을 맡은 지도자도 있지만, 17절의 '맛다냐' 같은 인물도 나옵니다. 성경은 맛다냐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그는 대단한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공동체가 기도할 때 앞장서서 감사의 찬양을 시작하는 일, 즉 예배를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또 19절을 보십시오.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문지기가 무엇입니까? 하루 종일 성전 문 앞에 서서 문을 여닫고, 부정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감시하는 일입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다리도 아프고, 지루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기록하면서 느헤미야 같은 총독의 이름만 적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를 인도하는 자, 노래하는 자, 그리고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의 이름을 그들과 나란히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는 '작은 일'은 있어도 '천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강단에 선 목사나, 앞에서 찬양하는 인도자는 잘 기억합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추위에 떨며 봉사하는 분, 식당 구석에서 설거지하는 분, 아무도 없는 예배당을 청소하는 분들의 이름은 쉽게 잊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문지기 악굽의 수고를 안다. 감사 기도를 인도하는 맛다냐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오늘 여러분이 맡은 자리가 비록 화려해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성전 문을 여닫는 그 작은 손길 하나까지도 '거룩한 사명'으로 여기시고, 생명책에 기록하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충분합니다.
본문 22절과 23절을 보면 노래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대로 날마다 규정대로 양식을 공급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이 평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들의 삶은 '매일의 성실함'이 요구되는 삶이었습니다.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매일 새벽을 깨우는 것, 매주 주일을 지키는 것, 묵묵히 가정을 돌보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 어찌 보면 지루한 반복처럼 보입니다. 누가 박수 쳐주지 않는 외로운 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고마운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집니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나의 희생과 수고를 다 알아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섭섭하고, 때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라고 하셨습니다. 느헤미야 11장의 이 빼곡한 명단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이 사람들을 다 잊었지만,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영원한 책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다(God knows, that is enough)." 이것이 숨은 일꾼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성입니다. 사람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혹은 목사가 내 수고를 다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새벽 눈물을 아시고, 남몰래 흘린 땀방울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결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러나 가장 빛나는 별처럼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많은 이름들, 그들은 당시 예루살렘이라는 황폐한 도성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예루살렘은 다시 '거룩한 성'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지탱하는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몇몇 사람이 아니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섬기는 여러분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이 한 가지 사실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내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나의 작은 섬김도 크게 보신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가정이든, 일터든, 교회든—그곳에서 '하나님만 아시는 충성'을 드리십시오. 문지기면 어떻고, 노래하는 자면 어떻습니까? 주님이 나를 아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세상은 화려한 자를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한 자를 주목하십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그 존귀한 이름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느헤미야 11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나쳤던 수많은 이름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기억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나의 수고를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낙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성전 문지기 한 사람의 이름까지도 소중히 기록하신 주님의 마음을 봅니다.
오늘 새벽 주님 앞에 나온 이 귀한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이들의 수고를 주님은 다 아시는 줄 믿습니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인해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세상의 평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코람데오'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기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주님이 아시오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 이름 없이 주님만 섬기는 기쁨을 내 마음 속에 주소서.
- 보이지 않는 수고 주님이 갚아 주심을 믿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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