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장 1-22절 새벽예배 설교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회개와 역사를 통해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광야에서도 버리지 않으시는 용서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 기갈을 해결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 복음적 메시지와 실천 적용을 담았습니다.

느헤미야 9장 1절-22절, 광야에서도 버리지 않으시는 은혜
서론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타국에서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린 둘째 아들은, 돼지 쥐엄 열매조차 먹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집을 떠올립니다. 그는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는 낮아진 마음과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아버지께로 발길을 돌립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아직 거리가 먼데도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의 과거를 묻지 않고 가장 좋은 옷과 가락지를 끼워주며 잔치를 베풉니다.
오늘 본문인 느헤미야 9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 돌아온 탕자와 같습니다. 그들은 굳은 마음을 제하고 굵은 베 옷을 입으며, 티끌을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허물까지 자복하며,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 새벽 주님 앞에 나온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배경과 본문 내용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절기를 지킨 후, 제 칠월 이십사 일에 다시 모였습니다. 이번 모임은 축제가 아닌 금식과 회개를 위한 엄숙한 성회였습니다.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했습니다. 낮 사분의 일은 율법책을 낭독하고,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단에 올라가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창조 때부터 아브라함의 소명, 출애굽, 그리고 광야 생활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합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 회고가 아니라, 배역하는 인간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대조하여 보여주는 신앙고백입니다.
첫째,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느헤미야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본문에서 백성들은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지으시고'(עשה)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창조적 주권을, '보존하시오니'(היה)는 생명을 지속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하나님이 단순히 세상을 만든 시계공(Deism)이 아니라, 지금도 만물을 붙드시고 통치하시는 주관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7장 16절에서도 히스기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라 고백하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문제보다 크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최근 뉴스에서는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로 인한 불안감이 자주 보도됩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기술 문명이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대안을 찾지만, 성경은 해답이 창조주께 돌아가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망망대해에서 배가 길을 잃었을 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엔진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북극성입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리는 변함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오늘 새벽, 내 인생을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고백합시다.
둘째, 용서하시는 하나님
느헤미야 9:17,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엘로아 셀리코트)라고 부릅니다. 원어적으로 '셀리코트'는 용서가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임을 강조하는 복수형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배역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19절). 이는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하나님"이라 선포하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주홍글씨'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 인터넷에 박제된 실수나 과오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세상은 용서에 인색하고, 한 번의 실패를 영원한 낙인으로 찍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덮으시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질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성령의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세상의 냉정한 평가보다 크신 하나님의 용서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본문 3 : 참된 양식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설교 본문의 핵심 주제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느헤미야 9장 15절과 20절은 하나님께서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시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셨으며,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가르치셨음을 회상합니다. 이 광야의 만나와 반석의 물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매일 내리는 만나를 먹어야 살 수 있었듯이, 오늘 우리는 영적인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섭취해야 영혼이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던 것은(21절)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보호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는 의의 옷이 되시며, 성령님을 통해 우리 삶을 세밀하게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 광야 같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살려 하면 지치고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영적 기갈을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또는 식사 시간마다 "주님, 육신의 양식뿐만 아니라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내 영혼을 채워 주소서"라고 짧게 고백하며, 매일 말씀 한 구절을 묵상하고 하루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느헤미야 9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했고, 끊임없이 반역했던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도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용서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광야에서 굶주리지 않게 만나를 주시고, 길을 잃지 않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광야처럼 척박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용서하시는 하나님,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함으로, 주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만나를 풍성히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밤에도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이 새벽 주님의 전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자복했던 것처럼, 우리도 숨겨진 죄와 허물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하옵소서. 오늘 하루 광야 같은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성령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회개의 영을 부어 주사 정결한 심령되게 하소서.
- 광야 같은 세상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소서.
-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만족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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